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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정에 흠이 약간 있을 뿐인데, 왜 통신사는 차라리 새로 사는 게 낫다고 말하는 걸까? 몇 번 떨어뜨린 적이 있긴 해도 고장 난 것도 아닌데, 왜 바꾸라고 할까? 그런 권유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골동품이 될 때까지 쓰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왜 핸드폰은 1~2년만 되면 점점 느려지고 불편해질까? 한두 푼도 아닌데 말이다. 이쯤 되면 음모 이론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혹시 2년 약정이라는 게 제품 수명은 아닐까? 그동안만 쓸 수 있도록 제품을 설계해서 신제품이 출시되면 교체하도록 유도하는 건 아닐까?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고의로 기능이 멈추거나 쓸모없도록 제품을 설계하는 건 아닐까?" 

"원하는 부품만 교체 수리하고, 겉모양이 맘에 안 들면 살짝 외형만 교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날로그 시대 TV나 냉장고처럼 십 년 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업그레이드와 서비스만 편리하게 제공하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디 핸드폰뿐이랴.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던 시대에는 오랫동안 튼튼하고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는 물건도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요즘은 왜 더 자주 버리거나 바꿔야 하는 물건들로 넘쳐날까? 기술이 좋아졌으면 더 오래 쓰고 불편이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질문은 유독 까칠하고 짠내 나는 소비자만의 몫일까? 아닐 것이다. 

제조업체들이 멀쩡한 제품을 마치 고물 취급하며 최신 모델을 권하는 속내야 빤하다. 고객들이 신제품을 구매해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제조사 입장에서야 수익을 늘리겠다는 거지만, 얇아진 지갑은 고객 몫이라는 게 문제다.

또 다른 질문 하나, 자동차, 집 등은 꼭 사야 할까? 내 소유가 아니더라도 불편함이 없이 확보할 수는 없을까?

<순환경제 시대가 온다> 피터 레이시, 제이콥 뤼비스트 지음, 최경남 옮김. 전략시티 출판
 <순환경제 시대가 온다> 피터 레이시, 제이콥 뤼비스트 지음, 최경남 옮김. 전략시티 출판
ⓒ 전략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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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 시대가 온다>는 이러한 질문들에 명쾌하게 답을 한다. 왜 제조업체들이 자주 버릴 수 있는 제품 생산에 집중하는지에 대해 답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생산, 소비 방식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며, 지속가능하고 엄청난 기회를 제공해 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그것은 순환경제다.

컨설팅기업인 액센추어는 '어떻게 하면 폐기물을 부로 전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이슈를 이 책에서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현재 성장 모델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기업과 사회, 고객의 역할이 무엇인지 살핀다. 

오늘날 세계는 부정적 발자국을 남기는 희소 자원의 채취와 소비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더불어 화석 연료와 금속, 광물 등의 채취와 소비 과정에서의 환경 파괴로 기후변화와 공해가 야기한 긴박한 재앙을 인식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의 성장 엔진으로는 세계 환경, 경제, 사회의 복잡한 요구에 부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액센추어는 폐기물이라는 개념 대신 모든 것에 가치가 있다는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연구에 의하면, 2030년까지 현재의 폐기물을 경제적인 부로 바꾼다면 그 보상은 무려 4조 5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폐기물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용되지 않은 막대한 자원이며, 제품이며, 자산이 된다." -20쪽

이 책은 순환경제가 지금의 경제성장 모델을 대체할 유일한 이유와 한정된 자원과 화석 연류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속 성장을 도모할 방식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순환 공급망 모델, 회수/재활용 모델, 제품 수명 연장 모델, 공유 플랫폼 모델, PassS 비즈니스 모델 등을 하나씩 쉽게 설명하며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한 부분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오늘날 화석 경제가 가져온 결과인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 재앙을 생각하면 '비지니스'라는 단어는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악의 축'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컨설팅업체가 지난 250년간 지구촌을 지배했던 선형 성장 모델을 대체할 이론을 내놓는 것이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의 하나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순환경제를 지금까지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것 또한 의심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절제된 번영과 유익한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최적의 엔진이 비즈니스라는 아이러니를 피할 도리가 없다. 만일 인간 가치와 연관된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구하며, "우리가 얻는 모든 것에 대해 얼마나 내놓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제시하는 대안이라면 새겨들어야 한다. 어쩌면 "적게 내놓고도 얼마나 많이 얻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세계에서 이런 논의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250년 넘게 유용했던 현재의 성장 모델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의 중요성은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제때에 이르지 못하면, 인류의 생태발자국이 통제력을 상실하게 될 거라고 경고한 것이다

"훨씬 많아진 세계 인구의 급격한 수요 증가, 기업의 환경 발자국 감소에 대한 고객과 정책의 요구, 심화되는 자원 희소성, 더 이상 제어가 안 되는 폐기물, 기후 변화 등 이 모두가 총체적으로 선형경제 모델에 대한 사망 기사를 쓰고 있다. 이는 역으로 순환경제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 373쪽

액센추어는 순환경제를 언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은 없다고 말한다. 이미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업그레이드, 부가상품, 제품 회수까지 포함한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해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 자원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과 고품질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유를 통한 편리성의 증대, 더 낮은 가격,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 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발맞추고 있다. 중국에서는 재활용 종이 비율이 1992년의 20% 수준에서 2011년에는 70%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우버 택시나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플랫폼 스타트업들을 탄생시켰다. 이 모든 것이 순환경제 시대가 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들이다.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기보다 재활용과 제품 수명 연장에 골몰하고, 공유와 순환 공급망이 확대되면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더욱이 인공지능AI 시대가 아닌가! 이에 대해 액센추어가 제시하는 대안은 근로세를 낮추라는 것이다. 천연자원은 점차 희소해지고 있지만, 인구는 점차 증가하면서 활용 가능한 노동 인구가 양산되고 있다.

"자원 사용에 대한 세금은 올리고, 노동에 대한 세금은 낮춤으로써 정부는 기업들에게 고용을 촉진하는 한편 천원자원의 사용은 최소화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세제 변화를 통해 '이중 배당'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즉, 고용은 더욱 매력적인 방안이 되어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을 신장시키고 제조, 수리, 서비스, 보수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재사용이 되지 않는 신규 자원의 비용 효율성이 떨어지게 되면서 기업들은 이러한 자원들을 보다 생산적으로 사용해야 할 동기를 강하게 가지게 될 것이다." - 338쪽

이 시대에 청년 실업률을 고민하면서도 정부가 과세 방식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모순이다. 경제서적이 최소한의 고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남기라고 말하기는 쉽다. 반면, 최대한의 고용으로 수익을 남기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순환경제 시대가 온다 - 250년간 세계를 뒤흔들 대격변이 시작되었다!

피터 레이시.제이콥 뤼비스트 지음, 최경남 옮김, 전략시티(2017)


태그:#순환경제, #세계경제포럼, #재활용,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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