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시대를 다루는 여러 방식이 있다. 소재와 인물, 사건에 대한 거리감과 상상력의 발휘 정도를 따져보면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관객에게 제시하며 공감을 이끌어내곤 했다. 이 기준에서 영화 <1987>는 매우 가까이 그리고 직접적이었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은 1987년 군부 독재세력에 의해 발생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이다. 이미 여러 다큐멘터리와 서적 등 관련 자료가 있지만 극영화로 그것도 1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대규모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건 처음이다.

어떤 고백들

영화는 아버지와 얽힌 사연으로 학생운동을 멀리하게 된 연희(김태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캐릭터가 실존 인물을 끌어왔다. 게다가 재야인사 이부영(김의성), 김정남(설경구) 등은 실명을 그대로 영화에서 언급한다. 박종철 열사가 당한 고문의 진실을 알리려는 여러 캐릭터들의 고군분투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찾아본 이들에겐 이미 익숙한 이야기기도 하다.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장준환 감독은 왜 2017년 이 두 열사의 이야기를 상업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1987년과 2017년이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 "행복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부조리함에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던 과거의 부채감" 등 부분적으로 그가 답을 하긴 했다.

나머진 당시 사건과 인물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와 영화 속 묘사로 유추해 볼 수 있다. <1987>의 큰 줄기는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를 두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과 덮으려고 하는 권력자, 그 하수인들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공산당을 때려잡는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대공수사처와 그 수장 박처장(김윤석), 그의 지시를 받든 검·경 인력을 중심으로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합리화했고, 신념을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재밌는 건 박 처장을 비롯해 치안본부장(우현), 대공수사처 유 과장(유승목) 등 가해자들을 비롯해 해당 사건을 쫓으며 보도하려 한 윤 기자(이희준) 등은 직책으로 처리하면서 재야인사와 유족은 실명 그대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감독은 아마도 이런 대조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과 별개로 <1987>을 채우고 있는 여러 화두 중 그 비중이 가장 커 보이는 건 바로 '당위성'이다. 권력자들은 마땅히 나라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일삼고, 취재하는 기자들은 기사에 보도지침이 어디 있냐며 정부의 지시를 묵살한다. 시위에 나서는 학생과 시민들은 국민의 권리를 침탈하는 독재 세력은 타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때문인지 지난 13일 언론에 최초 공개된 직후 평단과 기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반응 상당수는 자기고백이었다. 그 고백엔 어두운 시대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그때를 지나 이미 기성세대가 된 자신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다소 걱정스러운 자랑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등가치환

 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1987>이 다분히 그 사건과 인물에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헨즈헬드와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사용해 영화는 각 인물의 표정과 감정을 농밀하게 잡아냈다. 수상한 시대를 살아낸 이들이 피땀 흘리며 학대받고 분투하는 사건의 나열, 이를 억누르려는 권력자들과의 대비 등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교과서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우려를 낳는다.

그 우려의 정체가 뭘까. 장준환 감독은 30년의 시간을 둔 대한민국의 현재와 과거의 연관성을 언급했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

<1987>은 앞서 주요 사건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동시에 운동권에 회의적이었던 연희의 각성을 또 다른 줄기로 제시한다. 그 각성은 교도관 노조를 세우다 학대받은 자신의 가족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잘생긴 청년(강동원)의 자극을 통해 이뤄진다. 굳이 여기에 성별을 들이대 '맨스플레인(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의기양양하게 설명하는 태도)'으로 정의할 건 없지만 다분히 기성세대의 설명적 태도가 작용한 결과다.

즉, 계몽적이다. 사안을 대하는 진정성과 높은 영화적 밀도 등 <1987>이 여러 미덕을 지니고 있음에도 이 지점에선 특히 상업영화의 껍데기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게 각성한 연희가 30년이 지난 2017년 지금의 관객에게 과연 무엇을 시사할 수 있을까.

 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열사들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 사회의 방향성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운동하고 시위한 당시 청춘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를 <1987> 제작 과정에서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일방적인 제시가 아닌 또 다른 결의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2017년 촛불이 위대한 업적을 이뤄내지 않았나. 가르치는 태도가 아닌 세대 간 화해와 반성의 태도가 아쉽다.

많은 배우들이 열연했지만 강동원의 등장은 오히려 <1987>이 지닌 미덕의 감점 요소다. 다분히 흥행을 노린 상업적 선택으로 보이는데 이 잘생긴 청년과 연희, 이들에 얽힌 역사적 사건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럽지 않고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한 줄 평: 진정성과 반성이 항상 등가치환 되는 건 아니다 
평점 : ★★★☆(3.5/5)

영화 <1987> 관련 정보

연출 : 장준환
각본 : 김경찬
주연 :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제공 및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제작 : 우정필름
크랭크인 : 2017년 4월 20일
크랭크업 : 2017년 8월 27일
러닝타임 : 129분
상영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7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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