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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티브로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해고자 복직과 고용승계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티브로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해고자 복직과 고용승계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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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는 1년마다 임금협약, 2년마다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이렇게 배웠다. 그런데 내가 활동하는 노동조합은 1년에 두 번 이상 임단협을 맺는다. 조합원들이 하청사업장에서 일하고, 원청이 하청을 6개월, 1년 단위로 바꾸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7년 동안 5번이나 소속이 바뀐 조합원도 있다. 그럴 때마다 노동조합은 새 업체와 또 임단협을 맺는다. 비정상적 상황으로 보이겠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건 운이 좋은 경우다.

이게 다 '외주화' 때문이다. '진짜 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원청은 외주화를 통해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피하고 하청 '바지사장'들은 중간에서 도급비를 챙긴다. 그러는 사이 우리 조합원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매년 신입사원이 된다. 원청은 "협력사 정규직"이라고 주장하지만 거짓말이다. 이론의 여지 없이 "1년 계약직"이다. 원청이 주기적으로 하청을 평가해 실적이 저조한 업체를 갈아치우기 때문이다.

원청과 하청은 사다리 같은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실적을 올리라고 한다. 방송통신업계는 이렇게 굴러간다. 이들은 케이블방송, IPTV, 초고속인터넷, 사물인터넷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노동자들을 '권리 없는 노동자'로 만든다. 독자(이자 고객) 여러분이 만나는 케이블기사, 인터넷기사는 대부분 하루하루 상품별 포인트를 쌓아 월급을 만들어낸다.

이런 현실을 바꿔보려고 노동조합을 한다. 그런데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노조, 그것도 민주노조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이게 다 '외주화'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이 상시지속업무를 외주화하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외주화는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교섭력을 낮추고, 파업까지 무력화할 수 있는 만능열쇠다. 노조 효과도 없앨 수 있고, 노조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노조 깨기, 참 쉽다. 희망연대노조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다. 조합원이 많은 업체는 계약해지하고 선별고용하면 된다(2014년 씨앤앰, 2016년 티브로드). 노조가 파업할라치면 원청이 직접 센터를 차리고(2014년 티브로드), 노조 없는 업체로 돌려막으면 된다(2017년 LG유플러스). 고용안정을 흔들고, 장기투쟁을 유도하고, 비조합원에게 일감을 몰아주면 조합원들이 불안하고 지쳐 떨어져 나간다(2014~2015년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전용주 딜라이브(전 씨앤앰) 대표이사, 희망연대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9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대표실에서 딜라이브 케이블방송 외주업체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본사 정규직 전환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 딜라이브(전 씨앤앰) 간접고용 문제 해결한 을지로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전용주 딜라이브(전 씨앤앰) 대표이사, 희망연대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9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대표실에서 딜라이브 케이블방송 외주업체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본사 정규직 전환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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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 출생신고, 입사하면 노조가입"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진짜 사장인 재벌 대기업에게 사용자 책임을 물어왔다. 정부에 제도개선도 요구해왔다. 성과도 있었다. 딜라이브(옛 씨앤앰)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직접고용 정규직화했다. 다산콜센터는 서울시 재단이 됐고, SK브로드밴드는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사용자 책임을 강화했다. 정부는 유료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항목에 '노동'을 신설하고 비정규직 고용안정과 협력업체 상생방안 등을 재허가 조건으로 내걸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사업자와 일부 제도가 전진했다.

분위기도 바뀌었다.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99%'와 '을'이 서로의 사연을 공감하고 서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회가 됐다. 현장에서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활발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사업장이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는 노조 가입률을 30%까지 끌어올리고, 노조 설립과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엄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사회 노동의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상황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노조를 만들고 지키는 일이 지금도 기적과 같다. 우리 사회가 지금 당장 요구해야 할 것이 바로 '노조 할 권리'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바람대로, 사회의 요구대로, 정부의 선언대로, 노조 할 권리를 강화하려면 노조를 방해하는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바로 가장 근본적인 부당노동행위인 '외주화'를 없애는 것이다.

상식이다. 사용자는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고 정규직화해야 한다. 그래야 "태어나면 출생신고, 입사하면 노조가입"이라는 구호가 현실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일, 우리들의 현장은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 것이다. 지금 당장, 노조 할 권리를 쟁취하자! 지금 당장, 비정규직을 철폐하자! 지금 당장, 외주화를 폐기하자! 이게 재벌개혁이고 촛불혁명 아닐까.

[노조하기 좋은 세상] 기획 살펴보기
실적 압박에 허위 계약까지, 우린 '벼랑 끝'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장준씨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지역본부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입니다.



태그:#노조, #희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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