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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슈퍼 앞에는 구두수선점이 있다. 한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는 꽤 무뚝뚝해 보이지만 일하는 품새는 아직까지는 날렵해 보인다. 아저씨에게는 대략 70대 중반의 할아버지 단짝이 있다. 그분은 무엇을 하시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매일 출근하시는 것으로 보아 근방 건물 관리를 하시는 분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항상 일찍 나오시는 할아버지는 건물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둣방 아저씨를 기다리신다. 구둣방 앞을 지날 때마다 혹시 구둣방 아저씨가 나이든 할아버지를 구박하는 건 아닌지 관찰하곤 했는데, 두 분이 자주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침, 두 분이 작은 박스를 테이블 삼아 깔고 컵라면과 찬밥, 그리고 깻잎 반찬에 아침을 먹고 계셨다. 두 분의 단출한 아침 밥상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을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지나가면서 깍두기 반찬에 식사하시는 것도, 짜장면을 시켜서 드시는 모습도 봤다. 어느 날에는 모닝 다과를 하기도 하시고(과일을 깎는 건 늘 구두수선 아저씨다), 커피 타임을 갖기도 하신다.

분명 운치 있고 다정한 풍경인데, 실상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꾸역꾸역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아주 간혹 봤을 뿐, 각자 일을 하거나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하신다.

두 분이 '누가 누가 무뚝뚝한가' 경쟁이라도 하듯 말이 없어 보이지만, 어쩐지 그분들 나름의 끈끈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우정이 느껴졌다. 오래 두 분을 감시하듯 지켜보면서 참 다행이다 했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서. 하나가 아니라 둘이어서.

구둣방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박스 밥상'

그런데 구둣방 아저씨와 정체 모를 할아버지 듀오를 보면서 왠지 부러웠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 박스 밥상이. 함께 밥을 먹는 친구가.
 그런데 구둣방 아저씨와 정체 모를 할아버지 듀오를 보면서 왠지 부러웠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 박스 밥상이. 함께 밥을 먹는 친구가.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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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밥'이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혼밥을 자주 했다.  혼자 취재를 다니다 보면 혼밥을 해야 할 때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혼으로 독립을 하고 나서는 더 했다.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혼밥에 익숙해졌는데, 불쌍해 보일까봐 혹은 어색해서 혼밥을 못한다는 사람도 꽤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혼밥과 혼술이 대세라고 한다. 통계청의 '2016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1인가구가 2015년에 이어 2년째 우리나라 가구원 구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제 우리나라의 대표 가구원수가 된 셈이다.

자연히 혼밥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인 가구가 아니어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혼자 먹는 경우도 많다. 나도 불편한 사람과 먹느니 혼자 먹는 게 편하고, 시간이나 돈을 아껴야 할 땐 주저하지 않고 혼밥을 택한다.

그런데 구둣방 아저씨와 정체 모를 할아버지 듀오를 보면서 왠지 부러웠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 박스 밥상이. 함께 밥을 먹는 친구가.

'어쩌면 나는 경제성, 효용성이라는 것에 메어서 혼자 하는 것에 너무 많은 부분을 허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들기 전까지 나는 혼자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필요나 편의에 의해 혼자를 선택하다 보니 함께하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져 버렸다. 조금 불편하다 싶으면 혼자 먹고, 그러면서 또 외롭다고 하는 모순의 사이클을 계속 쳇바퀴처럼 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독거노인 되는 거 아닌가'

마흔 중반을 넘으면서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 안에서 사람을 골라 만나게 되고, 친한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요즘, 심심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주기가 점점 빨라진다. 친한 사람들이 결혼하면서 조금씩 멀어지기도 했고, 새롭게 관계를 맺는 건 버거워지다 보니 관계의 폭이 엄청나게 좁아졌다.

'절친'이라 불렀던 사람들이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졌고 나도 누군가들한테 지워졌다. 명절 연휴나 생일, 징검다리 연휴 등 약속 잡기 바빴던 전성시대가 저물면서 점점 혼자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사실 난 혼자도 잘 노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고 '어쩌다'여야 달콤하지 일상이 되면 말이 달라진다. 텅 빈 시간을 혼자 메우는 건 버거우리만치 심심하고 외로웠다. 20, 30대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독거노인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고민이 돼서 한 수녀님께 "점점 친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는 부담스러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같이 밥을 먹으세요."

밥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 되어준다. 같이 할수록, 많이 나눌수록 더 단단해지는 끈. 생각해 보면, 내가 힘들 때에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밥 먹자"는 말이었다.

'힘들 때 더 잘 먹어야 한다'면서 맛있는 식당으로 데려가서 천천히 오래 많이 먹으라고 했던 선배. 당신이 먹어보고 맛있는 것은 내 접시에 올려주신 선생님. 배가 든든해야 뱃심이 생겨서 일도 잘한다며 숟가락 위에 소고기를 얹어 주던 친구.

배 속 두둑해서 돌아오는 길이면,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지던 삶이 견딜만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좋은 삶이다'라고.

타인은 때로 부담과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가 편하고 혼자 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는 '함께'와 균형을 이룰 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하는 영혼 없는 인사말 말고 진짜 "밥 먹자"는 말을 한 지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함께 밥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핸드폰에 적힌 이름과 번호를 보니 적지 않다. 오늘은 그 중 가장 반갑게 느껴지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태그:#비혼, #혼밥, #1인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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