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스터

포스터 ⓒ 이수C&E


흔한 액션영화에 대한 착각 중 하나는, 주인공이 싸워아할 적이 외부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의에 빠진 주인공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인과응보의 이야기. 그 어떤 극악무도의 악당일지라도, 액션영화의 주인공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의지를 잃지 않고 외부의 적을 무찌른다. 좀처럼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액션장면에 더해 주인공이 전하는 드라마틱한 승전보는 직전적인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좋은 액션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직선적인 영화 장르 한계에도 불구하고, 좀더 고도화된 플롯을 통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힌다. 흔히 여기서 사용되는 방법이 주인공 내면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플롯을 다중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을 움직이는 것은 외부의 적 테러범뿐이 아니다. 그를 본질적으로 앞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테러범이 아닌 내면에 존재하는 '나를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주인공이 싸워야 할 적은 외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가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는 동시에 내면의 딜레마와도 대결한다.

성장의 과정 보여주는 주인공 '미치랩'

 복수심으로 가득찬 미치랩

복수심으로 가득찬 미치랩 ⓒ 이수C&E


<어쌔신 : 더 비기닝>의 주인공 미치랩은 무차별 총격 테러로 인해 약혼녀를 잃는다. 그후 복수심에 가득차고 CIA 신입요원으로 발탁된다. 액션영화의 공식처럼 그가 해결해야 할 외부의 적은 약혼녀를 살해한 테러범이다. 좋은 액션영화가 되기 위해 이제 하나가 더 필요하다. 플롯을 고도화할 내면의 딜레마.

CIA 신입요원으로 뽑히기 위해 미치랩은 '스탠 헐리'라는 교관에게 훈련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미치는 치명적 약점을 노출한다. 자신의 개인적 복수심을 임무에 대입시키는 것. 미치랩은 그 누구보다도 대범하고 용기있는 요원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약혼녀를 잃은 그날을 떠올리며 감정조절에 실패한다.

이제 <어쌔신 : 더 비기닝>에는 두가지 플롯이 존재한다. 세계를 혼돈에 빠뜨릴 테러범을 무찌름과 동시에 주인공 개인적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것. 즉 개인의 복수심을 통제하고 타인을 위한 CIA 요원으로 변화하는 미치랩의 모습이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점일 것이다.

 훈련받는 주인공

훈련받는 주인공 ⓒ 이수C&E


대부분의 장르영화가 그렇듯, 다양한 장애물이 그를 가로 막지만 미치랩은 그 성장의 과정을 성실히 이행한다. 심지어 그가 쫓던 악당이 사사로운 복수심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비효과가 더욱 크다.

내면의 복수심으로 가득찬 테러범과 내면의 적을 이겨낸 주인공 미치랩과의 대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미치랩은 미 군함으로 달리는 핵폭탄 보트를 획득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더 큰 문제가 등장한다. 보트를 돌려 미군함과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느냐, 아니면 보트를 놔두고 헬기에 올라타느냐.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치랩은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보트를 돌린다. 하지만 여기서 주인공이 죽으면 그것이 액션영화더냐. CIA 책임자의 묵인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르쳤던 교관 '스탠 헐리'는 끝가지 묘수를 고안해내고 미치랩은 수만 명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지켜낸다.

주인공 움직이는 '개연적인 동기' 부족이 아쉬웠다
 헬기에 올라타는 주인공

헬기에 올라타는 주인공 ⓒ 이수C&E


입체적인 플롯에 더해 곳곳에 등장하는 상징은 영화 구조를 풍성하게 만들지만, 어째서인지 영화는 기대감만큼의 재미를 관객에 선사하지 못한다. 첫번째 이유는 영화가 선택한 결말의 따분함이다. 앞서 말했듯 미치랩이 해결해야 할 내면의 과제는 개인적인 감정을 통제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개인적 차원에서 그 이야기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주제를 확연한다. 미군 군함들을 향해 돌진하는 핵폭탄 보트. 그것을 탈취해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주인공. 그리고 안타깝지만 해군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 결정을 용인하는 CIA 책임자. 만약 이 바로 앞 장면만 없었다면, 그 책임자의 용인만 없었더라면 영화는 훨씬 세련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용인하는 장면을 삽입해 주인공 내면의 딜레마를 공동체주의란 대의로 뭉개버렸다. 외부의 적만큼 힘겹게 싸워 온 내면의 딜레마이기에, 그것이 이념 혹은 공리적 선택이라는 당위에 연소될 때 영화의 주제는 한순간에 따분해져 버렸다.

무조건적으로 이타적인 모범적 영웅 이야기라면 애초에 내면적 딜레마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관객들이 원하는 건 따분해질대로 따분해진 도덕이나 윤리관 전시가 아니다. 주인공을 움직이는 개연적인 동기와 합당한 이유만 있다면, 그것이 조금 이기적이고 기행적으로 보여도 눈감아줄 수 있는 시대이다. 그 외에도 미국 중심적인 선악 구분. 소재로 등장한 플라토늄과 핵폭탄, 암묵적으로 깔린 국가주의적 시선 등이 영화를 오래된 첩보영화처럼 보이게 하였다.

 임무중인 미치랩

임무중인 미치랩 ⓒ 이수C&E


오래된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딜런 오브라이언이나 마이클 키튼이 보여주는 연기의 완성도는 꽤난 볼 만하다. 특히나 내면적 딜레마를 표현해가며 성장하는 미치랩(마블 오브라이언)의 모습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영화 제목에 '더 비기닝'이란 단어를 붙인 만큼, 앞으로 첩보요원 미치랩의 활약이 더욱더 기대된다. 아니, 그가 첩보요원으로서 성숙해가면서 농익어 갈 내면적 고뇌와 고민,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더욱 고대된다.

어쌔신 : 더비기닝 딜런 오브라이언 마이클 키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