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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KAL858기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 행사에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행사장 무대 위에 걸린 현수막의 맨 위에는 "역사의 증인 김현희 나오세요"라는 글귀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KAL858기 가족회, 천주교 인권위원회, 국회의원 인재근이 주최한 이 행사는 신성국 신부의 인사말에 이어 제1부 순서인 '진실의 길'이 진행되었다. 여러 명 발표자들이 무대의 연단에 나란히 앉아서 차례로 발표를 하는 형식이었다.

먼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통일위원장인 채희준 변호사가 '김현희 수사와 재판 기록 검토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어서 'KAL 858기 가족회'의 임옥순 부회장이 '내가 만난 KAL 858기사건'을 발표했는데, 그는 여러 번 눈물을 닦았다. 30년 동안 이어지는 눈물이었다.

세 번째 발표자는 KBS 류지열 PD였다. 그는 'KAL858기사건 진실 추적기'를 발표하면서 여러 가지 영상을 무대에 띄우기도 했다. 과거 자신이 만든 방송 제작물의 주요 부분들을 소개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 발표자는 KAL858기사건 연구자인 박강성주 박사의 '진실화해위로 날아간 KAL858기'였다.

30년 동안 추모제 참석을 피하고 있는 김현희

11월 29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KAL858기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의 제1부 ‘진실의 길’에 함께 하고 있는 발표자들
▲ ‘KAL858기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 의 한 장면 11월 29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KAL858기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의 제1부 ‘진실의 길’에 함께 하고 있는 발표자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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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4번째 발표자로 선정되어 공개 초청을 받은 사람은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였다. 그가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김현희'라는 명패도 놓여 있었다. 사회자는 김현희를 소개하면서 "오늘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표자"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현희는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의 자리는 그냥 빈 채로 남아 있었다. 'KAL858기 가족회'와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매년 추모제 행사를 열 때마다 김현희를 초청했다. 그의 정확한 주소를 알 수 없어 초대장을 보내지 못하는 대신 공개적으로 초청을 하곤 했다. 하지만 김현희는 KAL858기 유족들의 피맺힌 절규와도 같은 간절한 초대를 유령인 듯 무시하기만 했다. 

제2부 행사는 '추모제'였다. 'KAL858기 가족회' 김호순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후원회 윤원일 대표의 추모사가 있었다. 그리고 추모곡 연주와 함께 모든 참석자들의 '헌화'가 진행되었다.

올해의 추모제 행사는 신성국 신부의 저서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의 출판기념회를 겸하는 것이기도 했다.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2003년부터 'KAL858기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신성국 신부가 KAL858기 폭파사건의 진상―그 '판도라 상자'를 명확히 열어 보이는 책이었다.

'진실은 스스로 말할 수 없습니다/판도라의 상자 KAL858', '판도라의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나', '밝혀진 사실, 그리고 남은 진실'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내용들은 KAL858기 사건의 본질과 유령과도 같은 김현희의 정체를 고스란히 적시해내고 있다. 또 이 책에는 박강성주 박사의 'KAL858기사건 30년, 연구자의 운명', 채희준 변호사의 '김현희 수사와 재판기록 검토 보고서', 홍강철 탈북 북한전문가의 '김현희의 실체를 고발한다'와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30년의 길'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비극의 근원, '분단 이용'의 마수들

11월 29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KAL858기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의 제1부 ‘진실의 길’에서 KBS 류지열 PD가 ‘KAL858기사건 진실 추적기’를 발표하고 있다.
▲ ‘KAL858기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 의 한 장면 11월 29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KAL858기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의 제1부 ‘진실의 길’에서 KBS 류지열 PD가 ‘KAL858기사건 진실 추적기’를 발표하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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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국 신부는 말한다.

"김현희가 이 책을 읽고 진실과 사실이 아닌 내용들이 있다면 떳떳이 내 앞에 나타나서 그 점을 적시해주기 바란다. 혼자 일방적으로 TV에 나가 자기 말만 하지 말고 나와 공개 토론을 하기 바란다. 그리고 내 책에 김현희 명예훼손의 혐의가 있다면 고소를 하기 바란다. 법정에서라도 진위를 가리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신성국 신부의 오랜 노고의 소산인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속에는 KAL858기 폭파사건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115명 희생자들의 원혼이 담겨 있다. 그리고 수많은 유족들의 30년 눈물이 흐르고 있다.

또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살인마들의 검은 그림자도 얼비쳐 있다. 그 살인마들이 광주에서 자행한 시민 학살 만행도 내포되어 있다.

1987년의 KAL958기 폭파사건은 1980년 5월의 광주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셈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로부터 1987년의 KAL858기 폭파사건이 파생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분단'에 있다. 남한의 권력층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북한이 존재함으로써 남한의 권력자들은 시시때때로 북한을 이용하거나 핑계 삼곤 한다. 그 질곡으로부터 1980년 5월의 광주 만행과 1987년의 KAL858기 폭파에 이어 2010년의 천안함 사건이 파생했다. 뿐만 아니라 2014년의 세월호 침몰도 '음모'와 '기획'의 혐의를 온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적대적 공생 관계'로 표현되는 이 분단의 질곡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인식을 지니지 못하고 1987년의 KAL기 폭파사건 등을 망각하거나 진상 규명을 포기한다면 그런 사건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나 자신도 피해자가 되고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KAL858기, #김현희, #신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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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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