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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섹드립'과 '또래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학생들
 무분별한 '섹드립'과 '또래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학생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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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니애미"
"느금마 ㅇㅇ"
"빨랫대에 걸린 느금마 브라자 보고 ㅇㅇㅇ"

지난 8월 '갓건배'라는 여성 유튜버가 '남혐'을 했다며 살해예고 방송을 했던 김윤태, 그리고 이에 앞서 갓건배의 신상을 털고 욕을 퍼부었던 신태일은 패드립(패륜드립)을 즐겨 쓰는 유튜버다. 심지어 이들이 속해있는 BJ 모임의 이름은 '느금마 엔터테인먼트'였다. 이 모임에 속한 BJ들은 햄버거에 모기약 뿌려서 먹기, 초등학생 머리 때리기 등 엽기적인 행각과 반사회적인 욕설로 유명하다.

신태일은 80만, 김윤태는 45만의 유튜브 구독자를 갖고 있었다(현재는 계정 정지상태). 그만큼 영향력도 커서 이들의 말은 초등학생, 중학생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유행어가 됐다. 초등학생들이 '느금마 엔터테인먼트' 소속 BJ들의 욕설과 여성혐오적 언어를 그대로 따라 하는 영상을 보며 충격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학생들이 혐오 발언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을 해결하고자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발 벗고 나섰다. '디지털시대 우리를 물들인 차별과 혐오의 성문화 교육의 역할을 찾다'라는 주제로 11월과 12월에 걸쳐 세 차례 토론회를 열었다. 기자는 지난달 29일 교사·시민 토론회와 7일 정책 토론회에 참여했다. 전문가들이 조사하고 선생님들이 증언한 교실의 '혐오지수'는 생각보다 더 높았다.

아이들의 성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지난달 29일 김애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에서 몇몇 항목의 조사 결과를 보면 우려되는 지점이 많이 보인다. 중학교 3학생 664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여성·남성·성소수자 비하 표현이나 '패드립(패륜드립)'을 사용한 경험은 전체의 39.6%로 조사됐다.

여학생은 17.2%, 남학생은 61.1%로, 남학생이 압도적으로 비하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이들이 썼던 비하 표현의 종류를 조사해보니 여성비하표현은 47%였으나, 남성비하표현은 21.4%에 불과했다. 패드립은 87.4%, 성소수자 비하표현은 30.9%였다.

성교육 표준안의 일부 내용
 성교육 표준안의 일부 내용
ⓒ 백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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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압도적으로 높은 '패드립'에 대해서 김 연구위원은 "친구에게 수모를 겪게 하거나 당황스럽게 하고자 할 때, 그 친구의 엄마를 지칭하면서 성적으로 비하할 때 이런 단어를 쓴다. 주로 '여성-어머니'에 대한 '드립'에 집중돼있다"라고 밝혔다.

여학생과 남학생의 비하 표현 경험이 차이 나는 것에 대해서는 김 연구위원은 'SNS로 무엇을 하느냐' 물었을 때 '웃긴 글 또는 영상보기' 비율이 여성은 12.5%인 반면, 남성은 32.8%인 사실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재미있고 즐겁고 적나라한 표현을 쓰는 사람이 인기가 많고 재미있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웃긴 글이나 영상을 자주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문화에 젖어 든다"라고 강조했다.

조사 결과 학생들은 '섹드립'(섹스드립)이라고 불리는 야한 이야기, 성적 욕설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학생들의 74%는 성적인 이야기가 '언제나, 거의 즐거운 편'이라고 답했다. 김 연구의원은 "여학생이 화상채팅앱을 켜면 열에 여섯의 경우 남성의 성기를 보게 되고, 벗은 몸 사진을 보내달라는 위험한 요청에 직면하게 된다"면서 "디지털시대에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어떤 것이 위험한지 즐거운지 판단할 수 있는 교육 없이 성적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래 성폭력 피해 경험 조사 결과도 주목할 만 했다. 학생의 24%가 성적인 신체부위와 관련해 놀림이나 비하를 당한 적이 있으며, 21.4%는 친구가 자신의 속옷을 잡아당기거나 옷을 벗겼다고 답했다. 22.6%는 성적인 욕설을 들었으며 19.9%가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을 당했다.

특히 남학생들의 또래 성폭력 피해가 심각했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 (여 1.2%, 남 3.9%,), 성관계나 자위를 흉내 내거나 실제로 하기를 강요함(여 1.8%, 남 9.9%),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여 12.0%, 남 27.5%), 성적인 글·사진·동영상 등을 일방적으로 보냄(여 0.9%, 남 5.4%) 등을 보면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 비해 피해가 컸다.

김 연구위원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또래 성폭력 사안의 수위가 훨씬 높다. 이것은 남성의 또래 성문화라고 하는 게 얼마나 자유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나타낸다"라고 지적했다.

교사들에게도 거침없이 '성희롱적 발언'... "멘붕"

지닌달 29일 <디지털시대 우리를 물들인 차별과 혐오의 성문화, 교육의 역할을 찾다>토론회가 진행됐다.
 지닌달 29일 <디지털시대 우리를 물들인 차별과 혐오의 성문화, 교육의 역할을 찾다>토론회가 진행됐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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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은 김애라 연구위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용호 위례별초등학교 교사는 남성들 간의 또래 간 성폭력이 일어나는 시스템을 경계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들은 남성 사회 내의 약자에게 여성성을 투영하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이루어지는 성희롱과 성폭력을 흉내냄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간접경험 등은 사회로 나왔을 때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 특히 여성에게 그대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남 한울중학교 교사는 여성 교사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제가 여자이니까 때때로 난처하게 하려고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 국어시간에 합생어, 파생어 등을 가르치면 '불알은 뭐예요?'라고 물어보고, '방망이 깎던 노인'을 가르칠 때마다 '방망이 그려주세요'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스마트폰으로 음란물 시청하고 내용 공유하기', '여성 비하 발언이나 성희롱 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반톡이나 개인톡에 음란 사진이나 영상 보내기를 자랑스럽게 여기기' 등을 예시로 들며 "이런 행동을 볼 때마다 '멘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과 타인의 성적 권리를 존중하는 인권과 결합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라고 밝혔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센터)의 박현이 기획부장은 "파트너가 스킨십을 원치 않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강간해버려요'라고 답한다. 성적 발언들을 세게 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을 유발하고자 한다. 그게 성희롱인지도 모른다"면서 아하센터에 오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아이들이 사이버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게임이나 인터넷에서 채팅을 하는 과정에서 알몸이나 성기사진을 요구받거나 전송할 때 피해를 입은 사례가 센터에 접수되고 있고, 초등학생 저학년 사례까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아 시기 뽀로로 등을 보며 유튜브에 친근해진 아이들이 혐오 발언과 성적매체를 접하고 있다. 이런 (디지털시대의) 현상들을 학부모나 교사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주입식' 성교육은 의미 없어... 성평등을 위한 인권교육 필요해

2·3차 토론회에 나온 전문가, 교사 패널들은 하나 같이 현행 성교육 내용이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성'(sex)만을 가르쳤던 성교육에서 인권개념이 결합된 성(sexuality)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이들은 2015년 교육부 성교육표준안을 문제 삼았다. 김애라 연구위원은 "(성교육표준안은) 이성애주의와 이분법적인 성별 규범, 십대의 금욕적 태도를 강조했다. 성차별적인 성 역할과 성폭력을 오히려 정상화하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화할수 있는 것으로 치부한다"라고 분석했다. 이명남 교사 역시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성을 바라보며 유교적 가치를 주입하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사실 성평등 교육을 추진해오던 전문가들은 이전부터 포괄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도 성교육 프로그램이 성평등과 권리교육이 결합하는 포괄적인 성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성 권리'에 대해 설명하며 이를 보장하는 게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김애라 연구위원의 조사결과를 놓고 서울시 중고생 9개조가 토론을 했다. 그 결과를 차민지 학생이 발표한 것의 일부 내용
 김애라 연구위원의 조사결과를 놓고 서울시 중고생 9개조가 토론을 했다. 그 결과를 차민지 학생이 발표한 것의 일부 내용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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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권리는 성별·성적 지향과 같은 차이로 인한 차별을 중대한 것으로 인식하고 지양해나가기 위해 민주적으로 성숙한 사회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인 인권이다. 모든 인권이 평등하게 성적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 성 권리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성적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긍정할 것을 촉구한다."

토론회에 참여한 이들이 말하는 '새로운 성교육'에 페미니즘적 관점이 들어가야 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중학생·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탁경국 변호사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온통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여성을 성관계에 있어서 수동적 객체로 전락시키는 정보들로 가득차 있다"면서 "(김애라 연구위원의 조사에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지 묻는 문항에는 여학생의 57.6%, 남학생의 32.5%가 필요하다고 답했다"라고 밝혔다. 학교에서부터 여학생들이 성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인식이 더 강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여전히 여학생들의 성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에 맞춰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교사들도 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위례별초등학교 최현희 교사가 온라인영상매체 <닷페이스>를 통해 "여자아이들은 왜 운동장을 갖지 못하냐", "페미니즘으로 아이들의 비판적 사고능력을 길러낼 수 있다" 등의 발언을 해 큰 화제를 모았다.

최 교사를 공격하는 이들에 맞서 온라인 상에서 '#학교에 페미니즘',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등을 쓰는 해시태그 응원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등은 아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공유하는 여성혐오적 관점에 대해 지적하고, 성평등교육매뉴얼을 만드는 등 성평등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관련기사: "'앙 기모띠', 선생님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페미니즘 교사'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대두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성평등 교육은 교사 스스로와 학교 교육 환경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상혁 한성여자중학교 교사는 "아무리 훌륭한 성평등 정책이 만들어지더라도 교육과정에 삽입하고 공문을 통해 학교로 내려 보내는 탑다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주입식 방식이 아닌, 성평등과 성권리를 학교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강남역 살인사건의 현장을 방문하거나 교실 뒤편에 추모의 공간을 마련하며 공감과 애도의 행동을 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또 "성평등 교육은 교사의 교육적 판단과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인지적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성평등 교육에 대한 정부부처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시교육청과 토론회를 함께 주최한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평등 교육정책을 전담하는 부서가 20년 전 교육부에 만들어졌지만 10년을 넘기지 못한 채 자취를 감췄다"며 "성평등 교육 현실이 20년 전보다 후퇴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물론 여성가족부에도 성평등 교육정책 전담 부서가 없다.

대만, 미국은 법적으로 '성평등 교육' 명시... 디지털문화에 맞춘 교육 필요해

2017년 4월 21일,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시행을 약속한 서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성평등 정책 실현하겠습니다" 다짐한 문재인 2017년 4월 21일,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시행을 약속한 서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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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교육 시스템은 성평등 측면에서는 여전히 유엔의 지적을 받는 실정이다. 지난 8일 정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성평등 교육에 대한 이해와 국제동향'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교육 부문에서 시정권고를 받았다. '교육에서의 성평등 협약 준수 강화', '성별 고정관념 제거를 위한 모든 수준의 교과서 개정' '교사에 대한 의무적인 성인지 훈련을 도입하기 위한 조치 제도화' 등의 내용이다.

성평등 교육이 이뤄지는 국가 사례로 정 연구위원은 대만을 언급했다. 대만은 2004년 6월 '성평등 교육법'이 제정됐다. 교육부-자치단체-각급학교 성평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으로서, 성 형평성 있는 안전한 교내환경, 교직원 성평등 교육, 교육과정 개설에서의 성차별 금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정 연구위원은 "대만 정부가 미국의 교육수정법과 여성교육형평법을 참고하고 공부해서 만든 법으로서,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전했다.

SNS와 유튜브를 통해 습득하는 혐오 발언 문제에 대해선 아하 센터 박현이 기획부장이 독일의 사례를 설명하며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박 기획부장은 "미디어교육을 가장 잘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독일이다. 독일은 미디어에 대한 안전교육 매뉴얼을 만들어서 배포를 하는 '클릭 세이프'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독일의 교육정책에 따라 TV만 보거나 인터넷 접속만 하는 방치된 아이들 대상으로 교육자들이 개입을 해서, 부모들에게 미디어와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교육을 한다. 교사나 사회복지사에게도 철저하게 미디어교육을 하고 있다"며 "우리도 유브 등에 대한 매뉴얼과 교육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태그:#성평등, #성평등교육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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