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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내 문화예술을 기반에 두고 문화다양성을 확산하고자 하는 취지로 출발한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사업인 '무지개다리사업'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한 문화 교류의 정신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종로의 기록, 손의 기억' 프로그램은 지난 9월 22일부터 24일에 걸쳐 열린 '종로한복축제'와 더불어 전통문화를 조금 더 친근하게 인식하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우리 것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한복의 진정한 미를 체험하고, 한국의 바느질 문화를 배우기 위해 모인 8개국 종로무지개통신사의 일정에 동행해보았다.

한복의 고귀한 가치를 새기다

지난 9월 18일, 상촌재에는 국내 참가자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뉴질랜드, 베트남, 콜롬비아를 포함한 8개국의 종로무지개통신사가 한데 모였다. 한국의 대학에 진학해 유학생으로 살아가며 이곳의 언어와 생활에 점차 익숙해져가고 있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는 여전히 이들에게 낯선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오랜 시간을 이어오며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아름다움을 빛내온 전통문화의 숨결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한복계의 '어벤저스'라 할 수 있는 박정욱 한복 디자이너, 조경숙 한복 디자이너, 이혜미 한복 디자이너가 한뜻으로 뭉쳤다. 어벤저스의 만남이 성사되며 진행 과정도 활기를 띠었다. 10인의 종로무지개통신사들로부터 사전에 몸의 치수와 선호하는 색상에 대한 응답을 받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세 명의 디자이너는 각각 종로무지개통신사를 위한 맞춤형 한복을 준비했다.

한복 체험 및 바느질 수업에 참가한 그레첸 가족
 한복 체험 및 바느질 수업에 참가한 그레첸 가족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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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당일 날, 현장에 모인 세 명의 디자이너는 단순히 한복을 건네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바르게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부지런한 손길로 저고리의 매듭을 정리해주고,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며 심혈을 기울였다. 한복을 처음 입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참가자들을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특히 조경숙 디자이너는 참가자의 머리를 손수 땋아주는 등 한복에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링까지 완성해주며 높은 호응을 얻었다.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온 리디아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온 리디아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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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온 리디아는 "한복하면, 아무래도 치마와 저고리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댕기머리와 비녀를 꽂아 올린 머리도 연상된다. 한복샵에도 들러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체험해볼 수 있어 좋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정통 한복을 체험해볼 수 있어 좋다는 중국에서 온 이나
 정통 한복을 체험해볼 수 있어 좋다는 중국에서 온 이나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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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이나는 "중국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 시간에 한국 선생님이 가져온 한복을 입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촉감이 좋고, 색깔이 아름답다, 정통 한복을 제대로 체험해본 느낌이 들고, 마치 결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웃음 지었다. 또한 미국에서 온 제이엘은 곡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한복에 대해 극찬을 보냈다.

"다른 의상과 확연히 차별되는 것은 바로 이 곡선의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이 곡선으로 인해 우아한 자태가 한결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평소부터 한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미국에서 온 제이엘
 평소부터 한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미국에서 온 제이엘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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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엘의 남동생인 마이클은 직접 한복을 지어입고 싶다고 생각해왔을 정도로 한복에 매료됐다고 언급했다.

"오늘 한복을 처음으로 입어봤지만, 이전부터 직접 한복을 만들어 입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인터넷으로 부지런히 한복의 패턴을 검색해보면서 한복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도 했고요. 고유한 전통의 색을 살리되, 저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세상 하나뿐인 특별한 한복을 지어입고 싶어요. 단, 전통 한복보다는 조금 더 움직임이 편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성심성의껏 설명해주면서 원데이클래스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끈 이혜미 한복디자이너
 성심성의껏 설명해주면서 원데이클래스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끈 이혜미 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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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연잎찻상보 만들기' 수업을 맡은 이혜미 한복 디자이너는 수업에 앞서 한복 디자이너가 된 계기를 소개하고, 한복을 차려입은 무지개통신사와 한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저는 한복을 짓던 시어머니의 가업을 이어받아 2대째 한복을 만들고 있는데요. 한복을 더 많이 알리고, 좋은 이미지를 꽃피울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나갈 생각입니다.  오늘 한복을 처음 입어보시는 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단아하게 소화하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아직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앞으로 한복을 더 자주 접하신다면, 보다 친근하게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느질로 하나 된 화합의 시간

참가자들은 정성스럽게 준비된 다과를 먹으면서 서로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어 연잎찻상보 만들기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 내용에 대해 다소 생소하게 느끼는 참가자들을 위해 이혜미 디자이너는 맛깔 나는 설명을 덧붙이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동양권의 문화가 그렇듯이 한국도 일찍부터 차 문화가 발달했어요. 찻잔을 그냥 보관하지 않고, 예쁜 보자기를 덮어서 보관하는 문화도 그 때문에 생겨났죠. 오늘 만들 연잎찻상보는 연잎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보자기인데요. 연꽃은 늪이나 연못의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워낸다고 널리 알려져 있죠. 그런 의미에서 세속의 풍파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추구하는 불교의 기본 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런 깊은 뜻 이외에도 바느질 수업을 준비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요. 한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정신적으로는 조선 여인들의 명상 문화를 되새겨보기 위함입니다. 조선 시대 여인들은 친정을 떠나 먼 곳으로 시집을 가서 그리운 가족에 대한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바느질을 하며 명상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가족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을 그리는 순간이 많을 것 같은데요. 고국에 있는 가족을 떠올리고, 그 마음을 전한다는 염원을 담아 바느질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연잎찻상보를 만드는 뜻깊은 의미에 대해 듣고 이어진 수업 시간
 연잎찻상보를 만드는 뜻깊은 의미에 대해 듣고 이어진 수업 시간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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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찻상보의 의미와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모습
 연잎찻상보의 의미와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모습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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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녹색, 분홍색 중 원하는 색깔의 모시 다포를 고르고, 바늘을 받은 뒤 이혜미 디자이너의 설명에 따라 모두 열심히 찻상보 만들기에 돌입했다. 모시 천과 같은 색상의 실을 바늘에 꿴 참가자들은 둥근 원단에 초크로 잎맥을 그리고, 규방공예의 바느질 기법 중 하나인 '꼬집기' 기법에 따라 잎맥을 접어 손으로 꼬집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꼬집은 부분을 홈질로 촘촘하게 이으면서 참가자들은 사뭇 진지하게 실습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바깥 테두리를 접어서 홈질을 하면서 이들은 어렵지만,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이엘, 마이클 두 자녀와 함께 원데이 클래스를 찾은 미국의 그레첸
 제이엘, 마이클 두 자녀와 함께 원데이 클래스를 찾은 미국의 그레첸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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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엘, 마이클 두 자녀와 함께 온 어머니 그레첸은 능숙한 솜씨로 바느질을 하면서 흡사 미국의 퀼팅(누비질)과 유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와 상반되게 처음 하는 바느질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참가자들이 있을 때마다 이혜미 디자이너는 친절하게 시범을 보이면서 실습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독려했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바느질에 전념한 참가자들은 완성된 연잎찻상보를 보면서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제이엘은 "한복을 입고,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어 뜻 깊었다"고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이나는 "만드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완성품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며 "오늘 실습을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는 무지개통신사
 마지막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는 무지개통신사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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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이혜미 디자이너는 어려운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임해준 종로무지개통신사에게 감사 인사와 격려를 보내며 수업을 끝맺었다.

"오늘 수업을 통해 우리나라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한국에 대해, 더 나아가서는 우리 인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이해의 속도도 빠르고, 바느질 실력도 뛰어나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어요. 이 수업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국문화를 더욱 많이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념촬영을 위해 모인 이혜미, 조경숙 한복디자이너와 무지개통신사
 기념촬영을 위해 모인 이혜미, 조경숙 한복디자이너와 무지개통신사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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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밤 은은한 정취가 느껴지는 상촌재에서 종로무지개통신사는 기념 촬영을 마친 뒤,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직접 입고 감았던 한복의 아름다움과 바느질을 통해 새겨진 손의 기억은 오랜 시간 동안 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태그:#무지개다리사업, #종로의기록,손의기억, #종로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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