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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유행인 구스다운 패딩을 하나 살까 마음먹었다가 피터 싱어 교수의 <더 나은 세상>을 읽은 후 다운 패딩에 대한 욕망을 접었다. 그런데도 어렴풋이 남아있던 나의 욕망에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마침표를 찍게 해 준 책이 있다. 바로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책공장더불어 펴냄)이다.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책 표지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책 표지
ⓒ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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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8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주 연안에서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의 돌고래쇼에 이용되어 온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그의 고향 제주 바다로 돌려보냈다. 자유롭게 살고 있던 제돌이가 아무 잘못도 없이 어느 순간 동물원에 갇힌 채 인간의 눈요깃거리로 전락했다 힘겹게 풀려난 순간이었다.

이처럼 동물이 인간에게 희생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먹는 음식은 물론 다운패딩과 같은 의복, 취미, 장신구, 로데오, 경마, 경견, 투우, 투견, 서커스, 동물원, 사냥, 밀렵, 오락, 실험, 과학 연구 등으로. 이 같은 방식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동물의 희생 중에서도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동물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잘 모른다.

앤서니 J. 노첼라 2세, 콜린 설터, 주디 K. C. 벤틀리가 엮은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는 수천 년 동안 '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온 동물들의 실상'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책은 우리의 집단적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동물들의 참상을 집중 조명하고, 어떻게 하면 소극적 평화를 이뤄내 적극적 평화의 토대로 삼을 것인가, 라는 미래 가능성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동물권단체 애니멀 에이드(Animal Aid) 디렉터인 앤드류 타일러는 머리글에서 "진보는 동물, '타자'의 죽음과 고통을 거부할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라고 썼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의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생명이 소중하듯 모든 생명 가진 것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을 대신해 죽어도 좋은 생명이란 이 세상에 없다.

자살 폭탄 테러범이 된 개

수천 년 동안 동물은 전쟁수행의 필수 요소였다. 운송장비로 기능하는 직접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의미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온 것이다. 전쟁 중에 다른 동물을 이용하는 온갖 방법으로 치자면 인간의 상상력은 거의 한계가 없어 보인다고 저자가 말할 만큼 인간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철저히 동물들을 이용해왔다.

고대에는 코끼리 부대가 위엄을 떨쳤다. 피로스 전쟁에서 로마는 코끼리 부대를 막기 위해 돼지 몸에 타르를 바른 뒤 불을 붙여 코끼리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더욱 지능적이다. 개의 등에 폭탄을 실어 적의 탱크 밑으로 뛰어들게 훈련시켰다. 이른바 개가 자살 폭탄 테러범이 되는 것이다.

개 뿐만이 아니다. 당나귀, 낙타, 노새 역시 자살 폭탄 테러범으로 훈련받는다. 돌고래는 해양 속 기뢰 탐지에 이용되고, 양은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서 지뢰 제거용으로 이용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말과 당나귀와 노새만 800만 마리가 죽었다고 한다. 포유류, 조류는 물론 심지어 곤충에 이르기까지 각종 동물들이 이처럼 전쟁에서 희생당한다.

그런데 이렇게 실컷 이용당하다 정작 전쟁이 끝나면 살아남은 동물은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본국으로 데려오는 비용, 검역 등의 문제로 결국 살아남은 동물들은 몰살되거나 잡아먹히거나 혹은 현지에 버려진다는 것이다. 전쟁 맥락에서 동물은 그저 살아 숨 쉬는, 특정 임무를 달성하도록 사육되고 훈련되는 한낱 도구로만 여겨지고 취급되어 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생체 훈련에 동물 이용 말아야...

전쟁 중일 때만이 아니다. 정보공개법을 통해 미군과 민간 훈련 하청업체로부터 입수한 기록과 내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군대는 생체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동물을 불에 태우고,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볼트 절단기로 뼈를 부러뜨리고, 심지어 정원용 전지 가위로 사지를 자르기까지 한다. 오직 생체 훈련에만 사용되고 죽는 돼지와 염소의 숫자가 매년 9천 마리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런데 군대에서 동물을 이용한 이런 생체 훈련이 꼭 필요할까? 많은 미군 기지들은 생체 훈련에서 동물을 대체할 것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 일부 미군기지와 민간 업체들은 동물을 트라우마 훈련에 이용하는 것을 완전히 폐기하고 이를 시뮬레이터나 해부용 시체를 비롯한 그 밖의 비동물 방법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 의료 훈련 전문가들 역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 전투 훈련에 적절하지 않다고 표명했으며, 국립 수도권 지역 시뮬레이션 센터(National Capital Area Simulation Center)의 앨런 류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 실험실은 의료 훈련에) 실제로 탁월한 방법은 아닙니다. 동물은 사람과 해부학 구조가 명백히 다르니까요. 동물로 훈련하고 나면 염소와 돼지를 구조하는 실력은 출중해지겠죠. 하지만 그런 훈련생은 아직 한 번도 사람을 구조해 본적이 없는 겁니다." (본문 94쪽)

무지에서 벗어나야...

그런데 문제는 우리 중 대다수가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겪는 고통과 고초, 살해에 대해 전략적이고 의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이다. 이 무지는 인간에게 명백하게 이득이 되고, 무지의 밑바닥에 이득이 깔려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는 이러한 인식론적 무지에 대해 "증거가 이렇게나 많은데도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나 아는 것이 적은지에 대한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동물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종차별이고 인간 쇼비니즘에 바탕을 둔 폭력이라고 말한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도 동물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과 똑같은 관점에서 종차별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다른 모든 존재는 희생시켜도 된다는 식의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의 핵심 전제는 평화로운 세계의 전망은 완전한 해방이 이루어진 세계에 있다는 점이다. 완전한 해방이 이루어진 세계란, 어떤 존재의 젠더, 능력, 섹슈얼리티, 신체, 지적 능력, 종(種)이 그가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이용되지 않는 세계이다. 물론 인간중심주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더러는 불가능하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익을 모든 종과 생태계를 포함하는 모두의 이익 속에 둘 수 있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동물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오히려 모든 종이 뒤얽혀 살아가는 생태계라는 혼합체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는 전쟁에서 동물의 희생에 대한 단순한 고발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긴밀하게 연결된 군⋅동물 산업 복합체를 해체하고​ 어떻게 평화를 구현해야 하는지에 여러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이야기, 그리고 전쟁 속 동물 착취의 역사에서부터 평화 수업까지 많은 의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갑작스레 찾아든 한파에 날이 매우 춥다. 여우 퍼, 라쿤 퍼, 다운 패딩이 생각나지만, 마하트마 간디의 말로 추위를 녹이고 싶다.

"양의 목숨도 인간의 목숨처럼 소중하다. 그러니 인간의 몸을 위해 양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힘없는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인간에게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앤서니 J.노첼라 2세, 콜린 설터, 주디 K.C 벤틀리 엮음, 곽성혜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324쪽, 2017년 11월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 고대부터 현대 최첨단 무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동물 착취의 역사

앤서니 J. 노첼라 2세 외 지음, 곽성혜 옮김, 책공장더불어(2017)


태그:#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종차별주의, #인간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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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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