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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예전엔 '메이드 인 차이나' '짝퉁'이라는 단어가 많이 생각났겠지만, 최근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차기 최고강대국 후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이런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다소 거창하고, 앞으로 1학기 동안 북경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즐거운 에피소드와 성장하는 중국 속 사람들의 사는 모습,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각자 가진 사회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으악! 프랑스 친구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비명을 지르게 만든 정체는 다름 아닌 '김치찌개'. 한국과는 다소 다른 '맵다'의 기준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한류의 인기 덕분에 중국인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권의 친구들이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면서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친구들은 '불고기' 아니면 '비빔밥' 등을 외치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내가 추천하는 것은 '김치찌개'. 처음엔 순전히 "진짜 한국 음식은 매콤한 국물이지"라는 생각으로 추천했다. 외국 친구들 또한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크기 때문에 흔쾌히 나의 선택에 동의했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고 한 입, 두 입 후 들려오는 헉헉 소리는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김치찌개 먹고 비명 지른 프랑스 친구들

중국의 대표적인 매콤한 물고기 음식 카오위
 중국의 대표적인 매콤한 물고기 음식 카오위
ⓒ 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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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프랑스에는 매운 음식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물어보니 역시나 매운 음식이 없다고 한다. 마치 어렸을 때 늘 짜장면만 먹다가 처음으로 짬뽕을 도전해서 씩씩거리면서 먹는 초등학생, 김치도 너무 맵기 때문에 백김치를 먹는 유치원생을 보는 것 같았다. 그순간 깨달았다. 한국인의 혀는 매콤함이란 채찍으로 강력하게 단련된 '강철 혀'라는 것을.

재미있는 것은 친구들의 먹는 방식이었다. 국물이 매운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큰 접시에 여러 숟가락을 한데 섞으며 먹는 데 낯선 친구들은 젓가락으로 국물 속 건더기만 골라 먹었다.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고 가르쳐 준 후에 비로소 한국인들처럼 숟가락으로 퍼먹는 걸 보며, 문화 차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김치찌개는 대성공이었고, 외국 친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바닥까지 보이게 다 먹었다.

처음엔 "동양인이 유독 매운 걸 잘 먹나?"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 친구 중 한 명이 중국계 프랑스인이지만 그 친구 역시 매운 걸 못 먹는 걸 보면서 나의 근거 없는 논리는 순식간에 깨지고, 매운 것은 단지 적응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중국계 프랑스인 친구와 잉글랜드 친구는 한국 컵라면을 이것저것 자주 시도해보는데, 하루는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컵라면을 먹고 폭탄(BOMB)인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불닭볶음면의 사진이 떡하니 놓여있었고, 나는 한동안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대표적인 사천 요리인 마파두부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대표적인 사천 요리인 마파두부
ⓒ 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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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 시도해본 것은 '양념치킨'. 중국은 <별에서 온 그대> 속 여주인공 전지현이 치킨을 먹는 모습이 방영된 이후부터 치킨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치킨이라고 하면 한국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한국처럼 한 마리 단위를 정성스레 튀겨서 한 접시에 파는 나라는 유럽, 중국 어디에도 없다.

정말 어렸을 때 혹은 정말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이 아닌 이상 한국 사람 중에 양념치킨이 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친구와 코스타리카 친구 모두 양념치킨을 먹기 힘들어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나온 김치도 친구들에겐 '매운 외국 요리'였다. 그래서 현재 외국 친구들과 메뉴 선택을 할 때 약간 매운 음식이다 싶으면 늘 "좀 매울 텐데 괜찮겠어?" 묻는 게 생활화되었다.

매운 음식 최강자, 사천 지역 사람들

하지만 중국인들의 경우 예외가 있다. 바로 사천(쓰촨성)지역 사람들이다. 사천음식은 특유의 맵고 얼얼한(사천 대표 음식인 마라탕의 '마라'가 바로 얼얼하고 맵다는 의미이다) 향신료를 사용해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낙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끔 사천 지역 사람이 아니어도 매운 걸 잘 먹는 사람도 있지만, 사천 음식을 제외한 중국 음식들은 매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인들 또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훠궈(중국식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훠궈도 사천 음식이기 때문에 상당히 얼얼하게 맵다는 걸 알던 나는 '조금 매운 맛'을 시켰다. 하지만 조금 매운 맛도 심하게 매워서 굉장히 고생하고 있을 때 옆에서 한 가족이 '가장 매운 맛'을 시키는 광경을 보았다.

과연 잘 먹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가족은 신나게 국물까지 떠먹었고 가게를 나올 때 마주쳐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사천 지역 사람들이었다. "멕시코 고추가 맵다", "어디 향신료가 맵다"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지만, 여기 와서 본 가장 강력한 혀를 가진 사람들은 사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건을 겪은 후, 중국, 코스타리카, 프랑스 친구들과 맵지 않은 갈비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음식을 조금 먹은 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매운 찌개가 생각이 가끔 난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며 문화 전파원이 된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매운맛은 전 세계인이 좋아할 수 있는 "만국 공통문화"라는 사실에 미소가 나왔다.


태그:#북경, #매운음식, #사천, #김치찌개, #양념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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