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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어제 옛날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유서 깊은 온양관광호텔에서 '자서전 쓰기' 특강을 하고서 오늘은 모처럼 여유 있는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른 저녁을 먹고 아내와 산책을 나갔다가 기분 잡치는 행태를 목격했다!…"

그런데 내가 애초 생각했던 첫 문장은 이랬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목격했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기는 하더라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그런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가. 나의 페이스북 글을 더 읽고 싶도록 마음을 이끄는 첫 문장은 어느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첫 문장을 읽어보면 느낌이 각각 다를 것이다. 앞의 문장은 문제의 사건이 '망중한 중에 만난 어떤 일'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듯싶고, 나중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궁금해서 글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페이스북에서 내가 앞의 문장을 선택했던 것은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라기보다는 나름 친구(페친)들과 소통하는 SNS라는 점과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일요일이라는 시간적 상황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페친들에게 덜 자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아내는 나중의 것이 좋다고 했다. 사연들이 넘치고 넘치는 페이스북이라면 스치는 순간에 페친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여기서 어느 것이 좋으냐의 가치판단은 크게 의미가 없겠지만, 지금 이 글에서 말하려는 '첫 문장 쓰기'와 관련해서는 생각해볼 사항들이 많다.

하지만 어쩌랴. 첫 문장을 쓰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첫 문장을 쓰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 조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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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종이 매체가 아니라서 부담 없이) 나머지 전문을 인용한다. 

"어떤 사람이 혼자 큰소리로 떠들고 있기에 누가 전화로 싸우는가 싶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팔짱 낀 젊은이가 침 튀기며 내려다보며 떠들고 있었고, 경비원 아저씨께서 노란색 '주차금지' 스티커를 열심히 떼고 계셨다. 젊은이가 함께 떼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 젊은이가 떠드는 소리로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 아파트 상가와 관련 있는 자이므로 당연히(?) 차를 주차했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경비원 아저씨는 주차스티커가 없고 경비실에 들러 신고하지 않은 차라서 아파트 관리 지침에 따라 주차금지 스티커를 붙였을 터인데…. 이 상황에서 누가 잘못한 건가. 뻔하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이 되레 큰소리로 아버지뻘 되는 분을 꾸짖는 형국이었다. 헐~~! 보다 못해 개입하려고 하니, 아내가 극구 말린다. 그래서 저주라고 퍼붓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이런다.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추호라도 그런 생각 하지 마라. 그렇구나! 내일 아우와 교대(병간호)해야 하는구나. 마음이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이로다!"

글쓰기에서 첫 문장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흔한 말로 '시작이 반'이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첫 문장을 쓰고 나면 나머지 부분을 일사천리로 진행되곤 했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초보자라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그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첫 문장과 함께 돌은 굴러가기 시작한다. 첫 문장은 약속이요 방향물질이자, 수수께끼이며 번갯불이다. 한마디로 뒤이어 나오는 전체 수프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 각 지게 썰어놓은 재료이다."

이 글은 독일의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Thomas Brussig)가 한 말이다.(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에 인용한 것을 재인용함). 첫 문장의 중요성과 의미를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자, 보자. 첫 문장이 어떤 역할을 하며 왜 중요한지를.

우선 첫 문장은 글의 시작을 의미한다.

뭐든 시작이 있게 마련인데 그 시작이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음의 이어지는 글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것이 독자들이다. 사람도 첫 인상이 좋아야 호감을 얻고 계속된 만남을 이어갈 수 있듯 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첫 문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글을 읽도록 이끌어주는 유도문(誘導文)이라고 한다.

둘째, 첫 문장은 글의 방향을 암시한다.

첫 문장은 독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를 직간접적으로 암시한다. 뒤에 나올 얘기들에 대해 전혀 예상할 수 없다면 많은 독자들은 인내심을 발휘해 끝까지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 무슨 얘기가 펼쳐질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독자가 쉽게 눈치 채지 못하게 행간 사이에 숨겨 놓기도 한다.(아무리 꽁꽁 숨겨놔도 눈 밝은 독자는 다 알아챈다.)

셋째, 글 전체를 요약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모든 글의 첫 문장이 그 글을 요약하지는 않겠지만 요즘 같은 바쁜 시대에는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미덕이다. 그래서 본문을 읽지 않더라도 첫 문장(리드문)만 읽고도 대략의 의미를 알아채게 쓰는 것이 좋다. 다만 첫 문장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할 때는 당연히 본문까지 읽으면 된다.

대표적인 예가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의 기사이다. 기사는 '속보'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첫 문장에 요약하고, 본문도 중요한 내용을 순서대로 배치해 독자로 하여금 재빠르게 필요한 만큼 정보를 취할 수 있게 한다.

이밖에도 첫 문장의 역할이 더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에 첫 문장 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생각을 깊게 하다보면 '장고 끝에 악수'라며 그냥 쓰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맞다. 그냥 쓰는 것이 상책일 수 있다. 문제는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는 반드시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어렵게 와 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첫 문장을 쓰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 다음엔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몇 가지 유형을 갖고 설명해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태그:#글쓰기,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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