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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 역사기행, 사랑과 모험, 평화운동까지의 결합에 처음에는 어색했던 분들도 이제 3개월여 나와 함께 마음으로 동행하면서 많이 이제는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구석구석 다 돌아보지 못하는 아쉬움과, 달리면서 만난 이 놀라운 세상을 피곤한 몸으로 다 적어내지 못하는 아쉬움은 늘 클 수밖에 없다.

문명의 배꼽 아나톨리아 반도, 오감만족 신비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터키, 땅 속에 묻혀있는 것이 대지 위에 서 있는 것보다 많은 전설의 나라를 지금 달리고 있다.

당초 예정되었던 토스와 변경된 코스
▲ 새로 변경된 코스 당초 예정되었던 토스와 변경된 코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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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카리아에서 원래 계획했던 헨덱과 뒤즈베를 거쳐 에르주름을 지나서 이란으로 넘어가는 고전적인 실크로드를 가는 대신 흑해 쪽으로 올라가서 흑해 연안을 따라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을 통과해서 이란으로 들어가 카스피 해 연안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에르주름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 지역으로 9월부터 눈이 내려서 내가 가는 지금은 너무 춥고 폭설을 만날 수 있다는 현지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사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이 동장군의 기습이다. 옛날 카라반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것이 마적떼라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동장군의 기습이다. 예정에 없던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두 나라를 더 지나고 거리가 좀 더 늘어나겠지만 안전하게 완주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카리아에서 흑해 연안에 처음 도착한 도시는 카라수. 거기까지 비를 맞고 54km를 달렸다. 비가 오면서 기온이 갑자기 많이 떨어졌다. 카라수에 도착하자 가로수가 야자수인 것을 보고 아곳의 기후가 아열대 기후라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다음날 악차코차까지 가는 동안에 하루 종일 눈비를 맞고 달렸으니 그야말로 동장군의 기습을 받았다. 단단하다고 믿던 나의 몸도 동장군 앞에서는 속일 수 없는 환갑의 몸에 불과했다.

결국 굴루찌에 와서 이틀을 감기몸살로 쉬어가는 창피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아직 본격적인 동장군의 기습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축나니 이젠 정말 앞으로 수도 없이 만날 동장군의 기습이 두렵기만 하다.

악차코차에 있는 이 모스크는 앵식이 독특하다.
▲ 아느 마을이나 마을 한가운데 모스크가 있다. 악차코차에 있는 이 모스크는 앵식이 독특하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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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는 다른 바다에 비해 염도가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외해와의 교류가 적으니 산소의 양이 절대 부족해 서식하는 생물체가 제한적이다. 바닥에는 죽은 박테리아가 쌓여 황하수소를 발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닷물을 검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흑해가 검게 보이질 않으니 터키어로 (karadeniz)라는 말이 검은 바다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kara는 북쪽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튀르크인의 오방색은 한국과 일치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도 동쪽은 푸른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붉은색, 북쪽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으로 상징했다.

어제는 사복경찰이 나를 세우고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오늘은 정복경찰이 또 불신검문을 한다. 그래도 다행히 고압적으로 대하진 않는다. 터키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정정이 불안한 것이 이런 사소한 일에서 엿보여져서 씁쓸하다. "터키는 인류문명의 야외 박물관"이라고 토인비 박사는 말했다. 터키는 지난 5000여년간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의 문명을 아우르는 문명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 히타이트 문명은 터키에서 발흥한 문명이다.

기원전 2000년경 인류가 아직 청동기 문명에 머무를 때 터키의 수도 앙카라 부근에는 인류 최초로 철을 만들어 사용했던 히타이트 문명이 일어났다. 철기문명은 고대국가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철제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확 바꾸어서 기병위주의 기사들이 벌판에서 벌이던 전쟁을 보병 위주의 일반 병사들이 성벽을 쌓고 하는 전쟁으로 바꿔놨다.

전쟁은 더 규모가 커졌고 잔인해졌다. 철재무기 앞에서 동검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철기문명은 이제 농기구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생기게 됐다.

터키의 찻집은 경로당과 같다. 나이 든 남자들만 모여서 차를 마시며 화투도 치고 이야기를 나눈다.
▲ 추운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뜨뜻한 차를 대접하는 사람들 터키의 찻집은 경로당과 같다. 나이 든 남자들만 모여서 차를 마시며 화투도 치고 이야기를 나눈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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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세기 터키의 '하투샤'라는 지역에 철재 무기와 전차로 무장한 히타이트는 금방 주위의 부족을 제압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히타이트는 바빌론을 제압하고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풍요로운 문화, 고유의 법전까지 갖추고 500년 가까이 발전하던 나라가 됐다.

그러다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 역사의 의문이 20세기 고고학적 발굴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적에는 성문을 지키는 사자상, 이륜 전차를 타고 반달형 칼과 철퇴를 메고 행진하는 군신상, 도끼를 들고 있는 전사상 등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발견된 점토판에는 인류 최초의 평화협정이 맺어진 전투 '카데시 전투' 내용이 수록됐다. 우리가 그렇게 목말라하는 '평화협정'의 역사는 이미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인류가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쉬운 문제다.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높은 온도의 불이 필요했다. 불에 바람을 넣으면 산소를 많이 공급받은 불은 더 거세계 타오른다. 이것을 풀무질이라고 한다. 불을 다루는 기술이 철기시대를 열었다. 히타이트는 당시 최첨단 기술인 제철 기술을 독점하고 완제품만 수출했다. 철의 가격은 금의 5배, 은의 40배나 되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1200년 도리아인의 공격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후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절대 강자가 없이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고르디온에 있었던 프리키아 왕국이다. 마이다스의 손으로 유명한 마이다스 왕의 나라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이다스 왕은 실존하는 인물인 셈이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손과 당나귀 같이 큰 귀를 가졌다는 바로 그 왕이다.

그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스승을 극진히 대접하여 황금의 손을 얻었지만 오히려 그런 능력이 그에게 고통이 됐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돼 버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됐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그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비파 소리를 저평가하여 당나귀 귀 같이 커다란 귀를 갖게 됐으니, 우리나라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설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터키에서 신라 경문왕의 이야기와 같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처음 만난 흑해는 검은 바다가 아니었다.
▲ 흑해 처음 만난 흑해는 검은 바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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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고고학자들은 고르디온 부근에서 80여 개의 커다란 무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 중 마이다스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가장 큰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의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2300년이나 견뎌온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는 외부의 공기가 닿는 순간 그대로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발굴 당시 왕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입은 채였으나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먼지가 돼 날아가고 앙상한 뼈들만 남아있었다.

마이다스 왕의 시신은 발굴 순간 먼지가 돼 바람에 날아갔어도 마이다스 왕의 황금 손이 주는 교훈은 현대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의 허상을 그대로 우리에게 고발한다. 먹는 음식도 손을 대는 순간 황금이 돼 버리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만지는 순간 황금이 돼 버리는 마이더스 왕의 저주받은 모습은 가끔 보는 드라마 속의 사랑도 돈으로 하고 결혼도 정략결혼을 하는 재벌들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서는 재벌2세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물질을 숭배하고 소유에 집착하느라 우리는 정작 사람답게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 지중해 바다의 펄떡거리는 고기처럼 첫 애인을 만나듯 가슴 뛰는 삶의 기쁨을 되찾으려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태그:#흑해, #마이다스 손, #히타이트 문명, #정신개벽, #철기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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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을 이용하여 달리며 여행한다. 달리며 자연과 소통하고 자신과 허심탄회한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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