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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통> 책 표지
 <보이지 않는 고통> 책 표지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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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통>은 캐런 메싱 캐나다 퀘벡대 명예교수가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해온 과정을 담은 회고록 형식의 책이다.

방사성 분진에 노출된 제련공장의 노동자, 야간근무나 교대근무로 건강이 악화되는 노동자, 좁은 기차 화장실을 1~2분 동안 청소하며 만성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청소노동자, 한 번에 7킬로그램의 그릇을 옮기며 성희롱까지 함께 견뎌야 하는 웨이트리스, 고객보다 '낮은 계급'으로서 하루 종일 서서 그들을 맞아야 하는 마트 계산원 노동자 등.

메싱 교수는 이들의 노동을 분석하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 그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와 더불어 제안해왔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는 대부분 외면 받거나 지원받지 못하면서 실패와 좌절을 겪었는데, 저자는 이를 '공감격차' 때문이라고 봤다.

공감격차는 '과학자나 정책결정권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일부 의사나 과학자들이 "외상과염(테니스엘보라고도 알려진 근골격계 질환)은 테니스를 두 시간쯤 쳐서 생긴 결과라고 자신 있게 진단한다. 하지만 반 년 동안 주 50시간씩 전선을 잡아당기고 벗겨내는 업무가 정확히 같은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감격차는 노동과 관련한 건강 연구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해석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게 한다. 공감격차가 클수록 노동으로 인한 위험과 건강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때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위험요인과 건강문제의 관련성을 추정할 때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은 위험요인이 건강문제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5퍼센트 미만일 때를 말하는데, 연구 결과(논문)에 '관련이 있다(위험하다)'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가 틀릴 확률이 5퍼센트 미만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 업무가 건강문제를 일으켰다는 95퍼센트를 증명해야만 노동자의 건강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책에 의하면 이 '5퍼센트'라는 비율의 근거는 그리 과학적이지 않으며, '과학적 엄밀함과 객관성'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대개 '주저하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관련이 없다'고 표현할 때보다 '관련이 있다'고 표현할 때 훨씬 더 엄격한 근거를 찾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결국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과 건강을 생각해보지 않은(공감격차가 큰) 과학자의 논문에서는 위험하다'는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연구에 근거한 정책은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외면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는 어느 국회의원의 발언은 정책 결정자가 노동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없는지, 그 공감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구제 받지 못할 것이라 여긴 노동자들, 특히 일자리가 소중한 저소득 노동자들은 아파도 산재신청을 못하게 만들고, 그들의 건강은 보호받지 못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공감격차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메싱 교수는 수십 년 간 '공감하는 과학자'로서 노동환경과 노동자 건강에 대한 연구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공감하는 과학자와 정책결정자들이 많아져 잘못된 노동환경이 개선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지나 님은 노무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펴내는 월간 <일터>에도 실린 글입니다.



보이지 않는 고통 -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느 과학자의 분투기

캐런 메싱 지음, 김인아 외 옮김, 동녘(2017)


태그:#보이지않는고통, #직업병, #산업재해, #여성노동자,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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