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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읽은 범우사 문고 <문주반생기>(1978년 4월 30일 초판)와 동국대학교 -문주반생기>(양주동전집, 1995년판)이다. 범우사 판은 가로줄쓰기, 동국대학교 판은 세로줄쓰기다.
 필자가 읽은 범우사 문고 <문주반생기>(1978년 4월 30일 초판)와 동국대학교 -문주반생기>(양주동전집, 1995년판)이다. 범우사 판은 가로줄쓰기, 동국대학교 판은 세로줄쓰기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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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만 해도 문방구 한쪽에 <샘터> 같은 잡지나 약간의 단행본들을 꽂아놓고 파는 작은 서점(?)들이 많았다. 내가 다닌 시골 중·고등학교 앞에도 그런 문방구 서점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내게 매우 매혹적인 곳이었다. 게다가 적은 돈으로 원하는 작품들을 맘껏 만날 수 있는 범우사와 삼중당 출판사 문고들을 주로 팔아 시시때때로 찾아들곤 했다.

청소년기에 정말 많은 문학 작품들을 읽었다. 양주동 쓴 <문주반생기>도 그 시절, 학교 앞 그 문방구 서점에서 구입해 읽은 책 중 하나다. 범우사 문고판으로 읽었다. <문주반생기>와 '양주동'이란 이름은 70~8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선생의 '면학의 서'란 수필 한편이 당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 우연히 묻힌 작품 중 널리 알릴 가치가 있는 책들을 주로 복간하고 있는 '최측의 농간' 인터뷰를 하던 중 <문주반생기> 복간에 대해 듣게 됐다. 학교 앞 문방구 서점에 대한 특별한 추억과, 언제든 다시 읽고 싶은 목록에 둘 정도로 인상 깊은 작품이라 복간소식이 솔깃했다.

멋도 모르고 "예, 예"만 연발하다가 칠판의 그림을 자세히 보니, 어렵슈, 어느덧 대정각은 상등(맞꼭지각은 서로 같음)이 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참으로 놀라고, 신기하고, 감격하였다. 옳거니, 일례로, 근대문명에 지각하여 어찌된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 "예, 예"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봐라, 어떻게 됐느냐?"의 망국을 당한 내 나라도 대개 시골뜨기 나 같은 무지의 과정의 소치였구나! 오냐, 우선 기하를 공부해야 하겠다! - <문주반생기>(최측의 농간 복간본) 75~76에서.

<문주반생기>
 <문주반생기>
ⓒ 최측의 농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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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복간 소식을 듣기 전까지 내가 읽은 <문주반생기>가 작품 전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더욱 기다려졌다. 재미있었던 기억의 책이라 읽지 못한 나머지가 궁금했다.

'조금 맛봤는데 너무나 맛이 있던 것이라 언제든 꼭, 다시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을 조만간 맘껏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정도로 복간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을 표현하면 될 것 같다.

햇수로 2년 동안 새로운 모습의 <문주반생기>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여름 내내 옥편 붙잡고 매달렸어요!", "한문이 워낙 많은 책이라 힘드네요! 예상은 했지만"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며칠 전 복간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을 붙잡고 특이한 제목이기도 해 왼쪽 페이지부터 시작한 글이라는 기억까지 있었던 '몇 어찌'란 글을 비롯하여,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들과 눈에 들어오는 부분 등을 우선 읽었다. 읽기 좋게 참 잘 나왔다. 오랜만에 각주 읽는 재미도 맘껏 느끼며 읽었다. 덕분에 올 겨울이 즐거울 것 같다.

내용에 앞서 밝힌 '일러두기'가 8쪽. 지난 수십 년 동안 읽었던 책 중 가장 긴 일러두기 내용들과, 참고했다는 수많은 사전들을 훑노라니 복간의 어려움이 피부로 와 닿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무려 2년 가까이의 작업을 거쳐 복간된 <문주반생기>, 짐작만으로도 지난하고 특별할 복간스토리일 것. 출판사 '최측의 농간' 신동혁 대표에 물었다.

-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책들이 많다. 그런데 왜 하필 <문주반생기>인가?
"그동안 절판되었으나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온 책들을 주로 복간해 왔다. 그런데 <문주반생기>는 좀 다른 욕심으로 복간한 것이다. 독자들이 현재 접할 수 있는 것은 범우사 문고판 <문주반생기>(1978.4. 30 초판)다. 그런데 20~30%만 발췌한 것이다. 게다가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바꾸고 한자음 표기만 덧붙이는 식으로 발췌하고 내용 편집은 거의 하지 않아 한문과 옛스러운 표현들이 많다. 그러니 읽기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글 전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동국대학교 출판부 <양주동 전집>(1995)인데, 접하기도 힘들뿐더러 읽기도 쉽지 않다. 오히려 범우사 문고판보다 읽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960년대 초판본을 그대로 옮긴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복간을 이야기했더니 반가워하며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은 책인데 기대 된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주로 50대 이상 분들이었다. <문주반생기>를 최근에 알았던 내게 그런 분들의 <문주반생기>에 대한 눈빛은 매우 인상 깊다. 그런 작품인데, 젊은 독자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작품 하나에서 본 여러 유형의 간극들. 그걸 좁혀 나누고 싶었다."

- 복간으로까지 이어진 <문주반생기>와의 만남이 궁금하다.
"2014년 여름, 우연히 웹에서 <고가연구>란 학술서의 '발문'을 읽게 됐다. <고가연구>는 양주동 선생이 향가 25수를 현대국어로 해독해놓은 성과를 집대성한 학술서다. 한자와 한글 고어 표기가 많고, 학술서라 내용 자체도 매우 전문적이고 난해해 온전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발문만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발문의 내용이 <문주반생기> 한 대목으로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주반생기>가 왈칵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범우사 문고판이다.

그런데 너무 아쉬웠다. 너무 흥미로운 글들인데, 일부만 발췌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온전한 모습이 궁금했다. 그래서 초판을 수소문했는데, 대부분의 도서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소장한 곳을 겨우 찾았는데 대출 불가로 분류된 책이라 착잡했다. 와중에 동국대학교 출판부에서 1995년에 <양주동전집>을 발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마저 이미 품절. 그래서 다시 헤맨 끝에 만나게 됐고 읽게 됐는데... 글자도 표현도 어려웠지만 무척 시원하고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의 글이었다. 한바탕 혼을 쏙 빼놓는 놀이판에서 실컷 놀다 온 기분이랄까?"

<문주반생기> 서지정보다. 내가 청소년기에 읽은 범우사판과, 동국대학교 1995년판, 동국대학교 판에 실린 1960년 판 서지정보다. 인생잡기는 문주반생기와 함께 한책으로 출간됐다.
 <문주반생기> 서지정보다. 내가 청소년기에 읽은 범우사판과, 동국대학교 1995년판, 동국대학교 판에 실린 1960년 판 서지정보다. 인생잡기는 문주반생기와 함께 한책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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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출판부 세로쓰기<문주반생기> 목차. 목차부터 접근이 쉽지 않다. 청소년기에 세로쓰기와 가로쓰기 책을 함께 읽었다.
 동국대학교 출판부 세로쓰기<문주반생기> 목차. 목차부터 접근이 쉽지 않다. 청소년기에 세로쓰기와 가로쓰기 책을 함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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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동(1903~1977) 쓴 <문주반생기>는 어떤 책인가?
"범우사 문고판에 있는 것처럼, 양주동 선생은 이상보 선생(국문학자, 수필가)이 문학적 국보라고 평할 정도로 매우 독보적이며 개성 있는 글쓰기를 한 지식인이다. 아는 것도, 사고 범위도 방대했던 분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술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모아놓은 정도의 책'으로 알려지기도 해 아쉽다. 술과 관련한 다양한 일화들이 해학적으로, 때로는 애상 속에 그려져 있지만, 그런 일화들만 주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문주반생기>의 가치도, <문주반생기> 속 다른 많은 빛나는 부분들도 놓치고 말 것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소년으로서 한문 교육에 이어 신식학문을 공부했다. 당대 지식인들과 함께 했던 격렬하고 유쾌했던 만남과 이별의 순간들, 일제강점기 속에서 자행된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만행에 대한 보고와 분개, 서구의 앞선 문명에 무지했던 조국과 스스로에 대한 충격과 반성, 갖은 풍파 속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신문물을 체득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했던 한 실존자의 의지가, 이 책 속에 해학적인 필치로 담겨 있다. 우리 근현대의 풍경들이 만화경처럼 펼쳐져 있고, 양주동 선생의 천재적이고 치열한 학문과 예술에의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니 단순한 수필집으로 그치지 않는다. 문학사에 중요한 책이다. 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은 책이다."

- <문주반생기>를 통해 본 양주동 선생, 어떤 분인가?
"선생은 유년기에 이미 부모를 모두 잃고, 사실상 고아가 된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라는 지난한 역경의 시간을, 늘 빈궁에 시달리면서도 위트과 유머를 잃지 않고 유쾌하게 살다간 분인 것 같다. 한문은 물론 일본어, 영어, 불어에도 능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넓이와 깊이가 남달랐던 그가 당대 조선인들은 무관심하였던 향가 25수의 해독을 일본인 학자(오구라 신페이)가 처음 시도한 데에 자극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향가 25수의 해독을 이룩해냈다는 업적은 워낙 유명하다. 5세 때 이미 <사서삼경>을 줄줄 외웠으며, 약관의 나이에 유수의 동양고전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던 그를 두고 걸어 다니는 고전아카이브가 따로 없었다는 증언도 전하는데, 복간하며 뜬소문이 아니고 부족한 평가라고 생각했다. 현대인들에게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 영인본을 보니 세로줄에 한자투성이, 복간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출간을 위한 준비는 2016년 상반기부터였다. 미국에 있는 후손과 저작권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초고를 제작하는 작업, 초고 제작 후에는 새로운 편집원칙을 세우는 작업, 세워진 원칙에 부합하도록 전체원고의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 설계도를 바탕으로 초고를 새롭게 정서하는 작업을 거쳤다.

더 많은 이들과 재미있고 깊이도 있는 이 책의 전문을 공유해보고자 시작한 기획이라 어떤 방식으로든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책과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원문이나, 원문이 품고 있는 것들이나 글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독자들이, 특히 <문주반생기>를 잘 모르는 젊은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초판에 없던 1,996개에 이르는 각주를 선택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각주를 넣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영인본에는 한자 단어와 한자 자체로 섞여 있다. 한문 해석 과정도 힘들었다. 한문은 음은 같지만 글자에 따라 뜻이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1960년대 이전에 쓰인 글들이라 지금은 쓰지 않거나, 뜻이 달라진 표현이나 단어도 많다.

풍습도 많이 달라졌다. 그와 같은 것들을 참고해 제대로 본문에 해석하거나, 각주로 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옥편을 비롯한 여러 사전과 책들을 붙잡고 치열하게 씨름했다. 정말 어렵게 복간했는데, 첫선을 본 분들마다 읽기 쉽게 잘 나온 것 같다는 반응이라 기분 좋다. 출판 입장을 떠나 순수한 독자로 어서 빨리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 복간된 책, 누구나 읽기 쉽게 잘 나온 것 같다. 올 겨울, 몇 편씩 읽을 생각이다. 덕분에 올 겨울이 즐거울 것 같다. 특히 재미있거나, 인상 깊거나 한 글은?
"저자가 신식학교에서 '맞꼭지각은 서로 같다'는 수학 명제를 배우는 과정에서 서구의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에 무지했던 조국의 현실과, 자신의 무지를 한탄하고 큰 뜻을 품기 시작하는 장면이 역시 인상 깊다(위 인용). 스승의 집 방에 소변을 본 사람이 누구인지 벗과 함께 심각하게 쟁론하는 '용두리 춘사'의 일화, 영어 문법책에 나오는 '3인칭'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학세대인 저자가 한자의 뜻을 통해 이리저리 궁리해보는 대목, 고향 마을의 또래 소녀에게 밤마다 몰래 만나 달빛 아래 한글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일화 또한 인상에 남는다. 그런데 사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일화들이 가득한 책이다."

- <문주반생기> 이후 염두에 두고 있는 책이 있다면?
"박서원 시인의 첫 시집 <아무도 없어요>를 복간했을 때, 기대 이상의 성원을 받았다. 전집을 묻는 사람들도 좀 많았다. 그래서 단행본 시집 5권 분량에 실려 있는 모든 작품들을 한데 모은 <박서원 시전집>을 현재 진행 중이다. 모든 작품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시인의 모든 시를 한꺼번에 접하는 동시에, 시 세계를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1995년에 출간된 양주동전집 중 한권인 <문주반생기>, 아마도 내용은 물론 제목의 독특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몇 어찌' 들어가는 부분이다.세로쓰기와 가로쓰기 둘다 경험했다. 많은 한국문학작품들과 세계문학작품들을 세로쓰기로 읽었다.
 1995년에 출간된 양주동전집 중 한권인 <문주반생기>, 아마도 내용은 물론 제목의 독특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몇 어찌' 들어가는 부분이다.세로쓰기와 가로쓰기 둘다 경험했다. 많은 한국문학작품들과 세계문학작품들을 세로쓰기로 읽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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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1995년 출간본과 범우사 문고, 최측의 농간 복간본을 펼쳐본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가로쓰기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1995년에 세로쓰기로 출간된 동국대학교 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상태의 복간이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해 이번 복간이 더욱 귀하게 와 닿는다.
 동국대학교 1995년 출간본과 범우사 문고, 최측의 농간 복간본을 펼쳐본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가로쓰기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1995년에 세로쓰기로 출간된 동국대학교 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상태의 복간이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해 이번 복간이 더욱 귀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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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문주반생기>(양주동)ㅣ최측의 농간 ㅣ2017.1.6 ㅣ22000원.



문주반생기

양주동 지음, 최측의농간(2017)


태그:#문주반생기, #양주동(무애 양주동), #면학의 서, #최측의 농간, #박서원시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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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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