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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기자, 이영광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기자, 이영광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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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금기자가 있다. 그는 온 몸에 하얀 소금을 뒤집어쓰고 취재한다. 바닷물이 만든 여느 소금과는 다르다. 짠맛이 아니라 쓴맛이 난다. 땀이 빚은 결정체여서 그렇다. 그는 땀으로 기사를 쓴다.

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기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땀으로 기사를 쓰는 소금기자 '이영광' 시민기자
 땀으로 기사를 쓰는 소금기자 '이영광' 시민기자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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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1급, 갓 태어난 그를 의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서른 중반을 넘었는데도 그렇다. 입을 벌려 말하면 소리가 샜다. 젓가락으론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땅을 딛고 일어섰을 때부터 가느다란 두 다리는 떨렸다.

그래서다. 까치발로 걸어서 현장에 간다. 근육이 굳어서다. 기능을 잃는 신경세포는 걸음걸이를 위태롭게 했다. 온 몸에 힘을 줘야 걸을 수 있다. 주먹 쥔 손은 펴지지 않아 난간 손잡이를 잡을 수 없다. 넘어지지 않으려 비지땀을 흘린다.

그는 인터뷰 전문기자다. 불편한 몸이 장애는 아니었다.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굴복하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 뜨거운 인물들을 만나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린다.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약 400여 명의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나 인터뷰 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480분간 땀 흘리며, 버스를 타고 전주와 서울을 오간다. 책상 앞에서 씨름하며, 2만 8800초간 녹취록을 풀어 기사를 쓴다.

세상에 이런 기자는 없다. 아니, 이렇게 특별한 기자는 없다. 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 기자. 그는 이영광(36)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강력한 만남, 고통스런 기억

우리사회 뜨거운 인물들에게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이영광 시민기자
 우리사회 뜨거운 인물들에게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이영광 시민기자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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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2015년 어느 봄, 서울 광화문역 1번 출구 대합실이었다. 전철이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계단으로 쏟아져 나왔다. 빈틈이 안 보였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무리 사이를 눈으로 헤집으며 사람을 찾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눈동자를 굴렸는데, 찾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휩쓸고 간 텅 빈 계단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였다. 누군가 힘겹게 홀로 계단을 올라왔다. 이영광 시민기자였다.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 만남은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날은 따로 있단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

그는 화가 났다. 문화방송 MBC는 사실이 아닌 정보를 내보냈다. '채널 11번'은 그의 집에선 특별한 숫자였다. 어릴 적부터 그의 집 거실에 있는 TV는 늘 MBC에 고정돼 있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가슴에 '찌릿' 전기가 흘렀다.

기레기, 쓰레기와 기자를 합성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 후 언론인을 부르는 고유명사가 됐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어로 오르고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등장할 때마다 그는 얼굴이 화끈 거렸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니지만, 부끄러웠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언론인들이 욕을 많이 먹었잖아요. 그때 단원고 3학년 재학생이 쓴 글을 봤는데, 얼굴을 못 들겠더라고요. 사람들이 보기엔 '시민기자'나 '직업 기자'가 별반 다르지 않잖아요. 언론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가 기억하는 단원고 3학년 재학생이 쓴 편지는 이렇다.

"대한민국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분들께

제가 이렇게 기자분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들과 제가 직접 보고 들으며 느낀 점에 대해 몇 글자 간략히 적어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올해 들어서 장래희망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장래희망이 바로 여러분들과 같은 일을 직업 삼는 기자였거든요.

저의 꿈이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신념을 뒤로 한 채, 가만히 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가장 먼저 특보를 입수해내고 국민에게 알려주는 게 의무입니다. 하지만 그저 업적을 쌓아 공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앞 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정말 부끄럽고 경멸스럽고 마지막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세월호'를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직업 기자가 아니란 이유로 시민기자란 핑계로 외면했던 일을 정면으로 똑바로 대하게 했다. 언론의 민낯을 드러내고자 생애 첫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했다.

언론 참사를 기록하다

주진우 사사in 기자와 이영광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인터뷰룰 진행하고 있다.
 주진우 사사in 기자와 이영광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인터뷰룰 진행하고 있다.
ⓒ 시사IN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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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렸다. 일주일에 한 명씩 하던 인터뷰를 2~3명으로 늘렸다. 변죽만 올리던 기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기획기사의 말머리는 이렇게 썼다.

'세월호 침몰 언론보도에 대해 학계와 언론노조, 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보도를 모니터 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그리고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언론보도의 문제를 듣는 인터뷰를 기획시리즈로 준비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터뷰 한두 건 늘어난 게 뭐 대수냐고. 하지만 그에겐 이게 별일이 아니다. 이른 아침 전주에서 서울까지 왕복 6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중노동이다. 열 손가락이 아니라 네 손가락으로 7~8시간씩 녹취록을 풀어야 하는 생고생이다. 단순히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그의 기사엔 해직언론인의 이야기가 있고 파업언론인들의 말이 있다. 언론인의 눈으로 언론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다. 이명박근혜 9년, 수많은 언론인들이 거리로 내쫓기고 길 위에 섰다. 공영방송은 처참히 무너졌다. 언론 참사였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그의 글엔 '기레기'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은 언론인이 등장한다. 언론을 바로 세우는 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호주머니를 떨고 시간을 들여 고생길에 나섰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름도 없는 시민기자"가 기자를 만나고 PD를 인터뷰했다. 교수를 찾아가고 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쓴 기사가 지난 2009년부터 400여 편을 넘는다. 

"언론 자유 없이 민주주의가 잘 돌아갈 수 없다고 봐요. 어떤 권력이든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견제해야죠. 스스로 잘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언론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직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2012년 MBC 파업이 이를 잘 보여주죠. 이때부터 파업하는 언론인, 해직 언론인을 만나고 언론자유를 끊임없이 인터뷰 주제로 잡았죠."

언론 참사를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맨 땅에 헤딩하는 일이었다. 인터뷰 섭외를 위해 연락을 하면, 답변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듣도 보도 못한" 그와 선뜻 만나줄 이는 없었다. 굳은 손가락으로 끈질기게 SNS로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로 글을 썼다. 몇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마다 짐을 꾸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터뷰는 섭외가 가장 중요한데, 이게 어려웠어요. 인맥도 없어 홀로 이어가기 힘들었죠. 그러다 지난 2012년 MBC가 파업하면서 이용마 기자를 만났어요. 무작정 노조 사무실에 전화해 파업기자를 인터뷰 하고 싶다고 했더니, 연결시켜줬죠. 그때 전화를 받았던 이가 이용마 기자였어요. 당시 홍보국장을 지냈는데, '인터뷰 할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해주겠다'고 했죠. 이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어요. 지난 9월 MBC 총파업 때도 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기사로 풀어냈죠."

운명 같은 만남, 기자를 만났다

이영광 시민기자와 변상욱 CBS 기자. 5년 전 변상욱 기자를 인터뷰한 것이 이영광 시민기자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시작이 되었다.
 이영광 시민기자와 변상욱 CBS 기자. 5년 전 변상욱 기자를 인터뷰한 것이 이영광 시민기자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시작이 되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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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가 아니다. 운명(?) 같은 만남은 또 있다. 아니, 사실 인터뷰 전문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이 사람의 영향이 크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인물. 이 사람은 CBS 변상욱 대기자다.

꿈이 기자는 아니었다. 그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신학대에 입학해서야 알았다. 목사는 갈 길이 아니었다. 9급 공무원에 도전했다. 빨리 포기하는 게 좋은 것도 있단 걸 알았다. 주변에서 "글을 잘 쓴다"는 소리에 방송작가를 꿈꿨다. 그가 사는 전주에는 방송아카데미도 없고 한 달에 60만원씩 낼 학원비도 없었다. 그때 CBS 변상욱 대기자를 만났다.

"지난 2008년 5월에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시작됐는데 애청자였어요. 여기에 초반에 변상욱 대기자가 '취재수첩' 코너를 맡아 매일 출연했죠. 당시 싸이월드가 유행했는데, 우연히 변상욱 대기자의 미니홈피를 알게 됐어요. 호기심으로 방명록에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고 썼는데, 댓글로 시간되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죠. 꿈만 같았어요."

그에겐 기적이었다. "유명한 사람"을 만나는 게 꿈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살다보니 몸도 마음도 움츠린 삶이었다. 뇌성마비 1급은 언제나 놀림감이었지 부러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누군가 그를 알아봐주길 바랐다. 대리만족, 유명인을 만나면 이런 기분이 들었다.

무턱대고 변상욱 대기자를 인터뷰했다. 인터넷을 뒤져 처음으로 인터뷰 기사를 찾아봤다. "1시간이면, 질문 12개는 뽑아야 한다"는 변상욱 기자의 말에, 여기저기 자료조사를 해 A4용지 한 장에 질문을 적었다. 이걸 들고 찾아가 변상욱 대기자를 만났다. 팬심을 위장한 생애 첫 인터뷰였다.

"지금 보면, 낯부끄러운 인터뷰였고 졸작인 기사죠.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생각이 안 나는데, 이 말은 잊히지 않는다. '기자는 연필이다. 계속 깎아야 한다' 날카로운 질문을 하기 위해선 자신을 끊임없이 다져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었죠. 지금은 나의 신념이 됐어요."

강렬한(?)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시민기자를 업으로 삼았다. 먹고 사는 일로 인터뷰 전문기자를 택했다. 벌이는 시원찮으나 가슴이 뛰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존재감을 알리기엔 이만한 일이 없었다.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다. 그의 하루는 인터뷰로 채워진다. 일주일 일정도 단순하다. 월요일이나 화요일 인터뷰를 한다. 보통 하루에 3명씩 1시간가량 이야기를 한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녹취를 풀고 기사를 쓰는 날이다. 가장 고된 작업을 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1시간 대화를 푸는 데 7~8시간이 걸린다. 굳은 손으로 컴퓨터 자판기를 치니 속도가 더디다. 금요일과 주말엔 다시 인터뷰를 잡고 질문지를 만든다. 이렇게 3~4년을 해왔다.

시큼한 땀냄새, 땀으로 기사를 쓴다

이영광 시민기자가 27일 오후 자신의 200번째 인터뷰로 국민의명령 문성근 대표를 인터뷰하고 있다.
 이영광 시민기자가 27일 오후 자신의 200번째 인터뷰로 국민의명령 문성근 대표를 인터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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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점심 무렵, 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인터뷰 하려고 서울 왔는데, 같이 밥 먹어요."

수화기 너머로 애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온 몸에 힘을 줘 말하는 그가 눈앞에 선했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말하는데도 소리가 샜다. 말을 듣지 않는 근육이 발음을 어눌하게 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지하철역에서 그를 만났다. 불편한 다리로 계단을 올라왔다. 난간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위태로워 보였다. 느리게 한 발짝 걸음을 옮기는 그의 등 뒤로 한 무리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이내 앞질러 계단을 올랐다. 그가 눈앞에 서자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그가 말했다.

"오늘은 3명 인터뷰해요. 오전에 여의도에서 김은곤 KBS PD (인터뷰)했고, 오후에는 <MBC 시선집중> 새 진행 맡은 변창립 아나운서랑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만든 백승우 감독 만나요."

입에서 단내가 났다.

그는 내게 소금 같은 존재다. 한 겨울 바닷물이 얼지 않는 건, 3%의 소금이 있어서다. 그의 험난한 취재도 그렇다. 온 몸으로 이 땅의 모든 직업기자에게 이렇게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기자란 무엇인가?'

한 겨울, 그가 오늘도 차디찬 바람을 뚫고 인터뷰에 나섰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니다.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그의 거침없는 돌직구를 응원한다면, 아래 영상을 봐주길 바란다. 인터뷰 현장에 가는 그를 촬영한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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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기자, 이영광 시민기자. 그는 매월 1만원씩 자발적 구독료를 납부하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입니다. 제 2, 제 3의 이영광 시민기자가 나타날 수 있도록 오마이뉴스의 힘이 돼주세요. 휴대폰 010-3270-3828로 전화주시고 "후원합니다"라고 말해주세요. 오마이뉴스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드립니다. 직접 인터넷으로 가입하고자 하신다면, 링크(http://omn.kr/5gcd)를 클릭해주세요.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기자를 지원합니다.



태그:#시민기자, #이영광, #시민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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