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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김신영의 '바람'이란 곡을 편곡 중이다. 며칠을 붙잡고 있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소설처럼 노래에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있기 마련인데, 이 곡은 발단에서 전개로 넘어가다 바로 결말이다. 화가 나서 화를 낸 게 아니라 화내고 싶어서 화낸 것처럼, 없는 위기가 마치 엄청난 위기처럼 들리도록 만들어야 하는 게 내게 주어진 숙제다. 그보다 신영 이 친구랑 얘기 좀 하고 싶다. 편곡이 쉽지 않다고 토로하며, 음악가의 세심함에 상처를 주지 않게, 곡을 다듬어 달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지난 3월 19일 아침, 시속 109km로 질주하는 차가 있었다. 한미 합동 훈련 기간에 홍대로 이탈한 대한민국 육군 장아무개 중사. 그는 밤새 클럽을 전전하다가 아침이 다 돼서 한 여성과 함께 차에 올랐다. "누나 나 베스트 드라이버야"라는 말이 블랙박스에 기록돼 있었다.

얼마 못 가 신호위반에 걸렸고 그는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 시속 109km. 마치 방해물 따위 모조리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 액션처럼, 교차로를 조용히 지나던 김신영의 오토바이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갔다. 추격전은 어느 골목길 벽을 들이받는 것으로 끝이 났고, 남겨진 길바닥에는 어느 부품인지 가늠할 수 없는 파편들과 완성되지 못한 채 부서진 꿈의 조각들이, 한 싱어송라이터의 신체 주변으로 흩어져 있었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그의 신발 한 짝은 끝내 찾지 못했다.

군무이탈, 음주운전, 신호위반 도주, 뺑소니 사망사고. 공무집행 방해. 눈에 보이는 것만 늘어놔도 죄질이 복잡해 판례가 없을 정도였다. 군사법원과 일반법원을 오가던 끝에 결국 가해자는 8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를 했다. 다 썩은 지푸라기라도 급한 그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을 리 없다. 음주운전으로 인사사고를 일으킨 가해자의 열 명 중 일곱 명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기 때문이다.

형법 10조 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심신 미약 혹은 장애가 재판 중에 인정이 되면 무죄나 감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범죄자들이 손뼉 치고 일어날 일이다.

물론 3항의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가 전항의 악용을 보완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어딘가 이상하다. '자의적 심신 장애'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한 자'로 친절하게 특정되어있어 도리어 1, 2항으로 빠져나갈 구실이 된다. 문자 그대로라면, 술을 마시고 한 범죄행위와 범죄를 위해 술을 마신 행위가 달라진다. 술을 마셔서 음주운전 한 것과 음주운전이 하고 싶어서 술을 마신 것이 다르게 된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다르다. 하나는 사람이고 하나는 술이다. 가해자가 술이라, 사람은 용서받는다. 믿어지는가.

"내가 술 취해서 그랬다!" 새벽녘 홍대 한복판에서나 들릴법한 이 공허한 외침이 재판과정에서는 들리는 건지, 실제로 수많은 범죄자가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았다. 또 판례가 판례를 낳아 죄질이 무거운 범죄자들마저도 법의 용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8살 여아를 끔찍한 방법으로 성폭행한 조두순이 주취 감경으로 12년 형을 받는 최악의 선고가 내려졌다.

엊그제 일처럼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조두순은 이제 2년 뒤면 만기 출소한다. 국민 청원으로 이미 50만 명이 넘게 서명했지만, 법적으로 그의 출소를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가해자의 조현병 주장,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가해자의 아스퍼거 증후군 주장,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정신지체 2급 선처 호소. 이 흉악범들이 왜 하나 같이 심신 미약을 주장하는지 애써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아마 죄를 뉘우치긴커녕 '조두순도 12년 받았는데' 하며 구치소 벽에 머리를 박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사회적 요구에 발맞추어 세상은 점점 좋은 쪽으로 발전하게 되리라고. 하지만 음주운전 가해자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비율이 2012년 49.8%에서 2017년엔 71.8%까지 늘어나는 이 아이러니한 통계를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리고 수많은 개정요구에도 불구하고 중범죄자들을 위해 활짝 열린 형법 10조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건 또 왜인지.

세상은 점점 가해자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발전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서 보호책을 마련해 놓고 싶어 하는 걸까. 양쪽 다 끔찍하다. 술 때문에 그런 거니 용서하면 뉘우치지 않겠느냐고? 아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술만 마시면 폭주하는 친구를 어르고 달래서 집에 데려다준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그 친구가 나에게 고마워한 적 있었던가. 오히려 아량 넓은 내 앞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주사를 부리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 그의 옆에 없지만, 그는 또 다른 희생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지 않겠는가하고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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