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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사이에 회자되는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있다. 돌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다는 '일석이조'처럼 좋은 일을 겸하여 얻게 된다는 뜻을 담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말에 얽힌 은유적인 상상을 이해하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뽕나무라고 하면 다소 희화적인 느낌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 정원의 가장자리에 이름과 달리 아주 점잖은 재래종 뽕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오디가 당뇨에 좋은 건강식품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인데 마침 옆 산비탈에 자리 잡은 뽕나무가 보여 주인에게 약간의 사례까지 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집을 짓기 전이었으니 적어도 7, 8년쯤 전의 일로 기억한다.

나무를 옮긴 후에 많이 열리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수확하는 방법을 몰라 잔디밭에 비닐을 깔고 떨어진 오디 중 굵고 실한 것만 골라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뽕나무 주변에 그물망을 치고 수확하는 장면을 보고 금년에는 소개하는 대로 따라 했더니 의외로 성과가 좋았다.

바람만 불면 그물망 위에 우수수 떨어지는 오디를 매일 아침 보통 1kg정도, 많은 날에는 4kg까지 손잡이가 달린 바가지로 긁어 담았는데 전라도식 표현으로 '오지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떨어지던 오디를 쓸어담던 지난 6월의 뽕나무 모습이다.
▲ 뽕나무 떨어지던 오디를 쓸어담던 지난 6월의 뽕나무 모습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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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일 가량 모은 오디가 20kg을 넘었기에 몇 지인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1kg 한 봉지씩 나눔도 했는데, 어떤 친구는 맛이 너무 좋아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거의 먹어버렸다는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수확한 오디는 살짝 씻어 냉동실에 보관하였고, 일부는 오디와 설탕의 비율을 1 : 0.8 정도를 배합하여 효소를 담았으며, 그래도 남은 오디는 유리병에 담아 술을 붓기도 했다. 아마 가을쯤에는 진한 발효액이 되고 또 빛깔 좋은 오디주가 될 것이다. 시험 삼아 남은 오디를 살짝 말렸더니 건포도처럼 먹기 좋은 간식이 되었는데 수분이 증발한 탓에 당도가 같은 중량의 설탕 덩어리에 못지않았다.

시장에는 개량종 오디만 보일 뿐 자잘한 우리 오디는 상품성이 없어서인지 찾을 수 없었다. 개량종 오디 1kg당 5천원에서 7천 원 정도라고 했다. 만약 우리가 모은 오디를 그런 개량종 오디 가격으로 시장에서 구입했을 경우 약 15만 원 정도로 계산 되지 않을까 한다. 즉 15만원을 벌었거나 절약한 셈이 된다. 그러나 돈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채취하였으며 몇 사람과 나누고 또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요즘도 아침이면 아내는 냉동실에 저장해둔 오디를 바나나와 함께 믹서기에 갈아서  공복에 한 컵씩 먹으라고 건넨다. 그러면서 아내는 오디가 혈압과 당뇨를 개선하며  피로회복에도 좋고 또 눈을 밝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등 약성을 강조한다.

당장 아내의 말처럼 그런 기적이 나타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러나 한방에서는 말린 오디를 상심자라고 하여 약재로 쓴다니, 그 효능 여부의 진위를 떠나 나처럼 병이 많은 환자가 좋은 느낌으로 먹는다면 결코 해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일종임에 틀림없다. 또 그들 가격도 천차만별임이 사실이다. 묘목의 가격도 관상용 혹은 조경용이나 아니면 열매를 취하기 위한 유실수이냐에 따라 달라지고 성목은 나이에 따라서 또 차이가 심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관상용인 분재의 경우 희귀한 나무분재는 몇 천 만원을 호가하고, 일반 조경수도 나무의 나이와 희소성과 수형 등에 좌우되는데 가격은 역시 보통 몇 백 만원은 훌쩍 넘는다고 한다. 가꾼 사람들의 기술과 정성의 대가일 수 있다고 인정하지만 구입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듣고 있다.

우리 정원에는 희귀하고 비싼 나무들은 없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누구나 부담 없이 한 그루쯤 키울 수 있는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알아서 먹고 마시기에 매일 끼니를 챙겨주는 등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무들이다.

그런 나무들은 투자의 대상이나 과시를 목적이 될 수 없기에 나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동반자라는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나무들. 보고만 있어도 가슴에 푸른 빛을 가득 안겨주는 존재. 마음에 엉긴 화(禍)를 내리고 평안함을 주는 마력도 있음을 느낀다. 뽕나무도 나에게 고마운 동반자 중의 하나다.  

이따금 오가는 말 중에 나무란 느낌이 없는 존재로 여겨 감정의 표현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목석(木石)같은 사람'이라고 하여 꼬집는 경우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10년 간 묘목을 사다 심고 그 묘목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느낌은 나무란 감정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 관찰이 주관적일 수 있지만 나무도 사람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꽃과 열매를 사람에게 선사하는 등 끊임없이 자기를 변신을 꾀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존재라고 본다.
비록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맑은 향과 청정한 기운으로 사람을 품어주고 감동을 주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과 함께하듯, 한그루의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켜보며 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덧붙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뽕나무,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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