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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본사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본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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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흔들리고 있다. 아직은 풍랑이 오지 않아서 본격적인 흔들림은 없지만, 그 조짐은 도처에 산재해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삼성전자를 삼성생명이 지배하고, 삼성생명을 이건희 회장과 삼성물산이 지배하고, 이중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구조에서 핵심은 삼성생명이다. 밑으로는 삼성전자 지배 사실이 금산분리를 위반하고 있고, 또 보험업법상의 자산운용 규제도 위반하는 점이 언제나 폭탄이다. 위로는 삼성생명이 금융회사이므로 이의 대주주인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항상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조건 유지'라는 칼날 위에 살아야 한다.

이건희 회장, 의식불명이기 때문에 대주주로서 적격?

이제까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나오면 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가 문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생명의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4조 위반 문제였다. 이 명시적인 법 위반에 대처하기 위해 정권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던 이정우 당시 정책기획위원장을 내쫓고, 국회에서 의원들 구워삶아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만을 위한 맞춤형 부칙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방향이 반대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삼성생명의 대주주 쪽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첫 포문은 박선숙 의원이 열었다. 지난 10월 17일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 삼성그룹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출한 이건희 회장의 대주주 적격성 서류의 효력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당사자가 의식불명으로 누워있는데 어떻게 "아무 문제 없다"는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문제 제기는 금감원이 법무법인 화우, 법무법인 한결, 정부법무공단이 작성한 '이상 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던 측면은 이건희 회장의 '의식불명' 부분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데, 대주주로서 '적격'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법은 '적격'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나쁜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으나 나쁜 일을 해서 법을 위반할 수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적격"이라는 논리다. 이런 식이면 삼성생명의 대주주 적격성은 이 회장이 의식불명 상태로 있는 한 오래도록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박선숙 의원의 질의가 있은 지 이틀 후인 19일, 이번에는 기재위에서 송영길 의원이 김동연 기재부 장관에게 포문을 열었다. 2015년 10월 초부터 2016년 3월 말까지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있었던 해외은닉계좌 자진신고 때 이건희 회장도 신고하지 않았는가라는 취지로 송 의원이 질의했고, 이에 김 장관이 "들은 것 같다"고 답변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도대체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는 이 회장의 해외은닉재산이 있는지 여부를 주위에서 어떻게 알았으며, 또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자진신고 할 것인지 그냥 은닉상태로 둘 것인지에 대해 어떻게 이 회장의 구체적인 지시가 가능한 지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송 의원은 이에 앞서 한승희 국세청장 청문회 때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해외은닉재산 5천억 원을 자진신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 사안도 문제 제기 후에 별다른 파급효과 없이 그대로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조각배가 된 삼성그룹 지배구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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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사안을 꿰어서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박찬대 의원이다. 박 의원은 지난 11월 27일 정무위에서 이건희 회장이 자진신고 기간 중 해외은닉계좌를 신고했음을 전제로 이 회장이 삼성생명 대주주로서의 적격성을 실질적으로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자진신고는 형사적으로는 '자수'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 회장은 '조세범처벌법'과 '외국환거래법' 위반을 자수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 법률을 위반하여 벌금형이 확정되면 대주주 적격성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검찰이 자수 사실을 고려하여 기소할 때 구형량을 절반으로 깎고, 법원이 작량감경(酌量減輕, 판사가 피고인의 여러 사정을 작량해 형기를 깎아 주는 제도)을 통해 형량을 또 절반으로 깎아도 벌금형이 면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심지어 조세포탈액이 연간 10억 원을 넘으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라 최소 형량이 징역 5년이어서 위의 감경을 중복 적용해도 징역 1년 이상의 형이 선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일은 다 일어난 일이라서 삼성이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유일한 출구는 삼성물산이 주식을 조금 더 사서 이건희 회장 대신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박찬대 의원의 문제 제기에 따르면 그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도 해외은닉계좌를 신고했다는 주장이 있고, 무엇보다도 국정 농단 혐의 중에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도 안 되고, 이재용 부회장도 안 되면 어찌 되는가? 흐음, 답이 없다. 그래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일엽편주 신세가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성인님은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입니다.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조교수로 근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 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 중입니다.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삼성, #이건희, #슨환출자,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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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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