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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상한 경연대회가 열린다. '누가누가 더 아프고 피곤한가' 대회다.

"어휴, 오늘 낮에 연재가 잠을 못 자더라고. 아이고, 손목이야. 어깨도 눌린 듯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네."

나는 괜히 어깨를 돌리고, 목 스트레칭을 하면서 고통을 과시한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나도 전담 수업 없이 6교시에, 체육까지 2시간 했더니 목이 좀 뻐근하네."

신랑은 홍삼 캡슐을 챙겨 먹으며, '힘든 날엔 홍삼을 먹어줘야해', 강조하며 나를 본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너도 피곤하지만 나도 힘들다는 메세지를 팍팍 실어 행동하는 것 뿐이다. 사실,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나, 집에서 아이 돌보는 아내나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아이고, 우리 집에 환자 많네, 웃으면서 경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끝없는 이야기처럼 승패도 없는 불행 배틀을 다음 날에 또 시작한다.

 아이 둘을 돌보는 일, 끝나지 않는 피로감.
 아이 둘을 돌보는 일, 끝나지 않는 피로감.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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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하루 휴가를 내고, 일을 가지 않았던 평일 어느 날. 나도 겸사겸사 마취통증 전문 의원에 갔다. 출산 후 지친 몸을 돌보고 싶었다. 작은 동네의 아담한 병원에는 환자도 몇 없었다. 내 앞에는 2명의 대기 환자만 있었다. 반가운 내 이름이 들리자 진료실로 들어갔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점잖은 안경에 가운을 두른 의사 선생님께서 앉아 계셨다. 알아볼 수 없는 의료 프로그램 화면을 띄어 놓았지만, 모니터가 아닌 내 눈을 맞춰주시며 물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선생님, 둘째를 출산한 지 세 달 쯤 되었어요. 허리도 아프고, 무릎, 손목, 발목, 팔꿈치가 당기고 뻑뻑해요."


의사 선생님은 무릎 관절 마디 하나하나 꾹꾹 눌러보셨다. 무릎에 그렇게 많은 관절이 있는지 몰랐다.여기 누르면 아파요? 이건 괜찮아요? 엄지를 넣고 주먹을 쥔 후 팔을 던지듯 펴보세요. 엎드려서 허리 부근의 척추 마디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보시고는, '00번 척추 사이 인대군요'

의사 선생님은 아프다고 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환자분, 저도 하루종일 앉아서 진료하려니 목이 아프네요."

라는 말은 없었다. 힘줄이 어쩌고, 어떤 신드롬의 초기 증상이고, 인대가 어쩌고... 하며 환자의 고통에만 집중했다.

엄마가 되고부터 '돌보는 사람'의 역할에만 충실했고, 또 그게 익숙했다. 병원에 갔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돌봄을 받으니 나도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자아존중'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자는 다짐은 수도 없이 하고, 그 가운데 기쁨도 느꼈다. 그렇지만 남이 주는 관심, 경청, 돌봄은 더 좋았다

"부족하지만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깊어지자, 깊어지자.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더 깊어지자.


- <아이 셋 키우는 남자> 중"

병원에 다녀오고 내 아픔을 덜어내니 마음 속 뭉친 공간도 비워내고 왔다. 남편을 품어줄 수 있을 만큼, 조금은 깊어진 것 같다. 아프다고 엄살을 좀 부릴 때, 의사 선생님이 받아주니 얼마나 좋던지. 아직 경험 못 해 봤을 오빠에게 이렇게 좋은 경험을 선물해줘야지. 뻐근하다고 홍삼 캡슐을 삼키고, 사과즙을 챙겨 마실 때, 안마도 해주고, 힘들었지, 위로해주야지.

아, 그리고 남편에게 내가 다녀왔던 그 병원, 추천해줘야겠다. 다녀오면 내 엄살 들어 줄 거라 믿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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