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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이라서 겪은 차별에 대해 글(유아인씨, 제 경험도 가짜인가요? -오마이뉴스)을 쓴 적이 있다. 글을 읽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피해망상증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당신의 불행한 삶은 안타깝지만"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의도로 쓴 글은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그 글은 내가 겪은 일상적 차별 중 극히 일부만 적었을 뿐이다. 그저 내가 겪은 차별의 일부를 적었는데 그렇게 불행해 보였다면, 나와 비슷하게 또는 훨씬 더 심한 차별을 겪고 있는 다른 여성들의 삶은 어떻단 말인가.

나도 내가 특별하게 불행한 일들을 겪는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침에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엉덩이 만짐을 당했을 때도, 길에서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도, 직장에서 듣기 싫은 섹드립을 들었을 때도, 내가 못나서 나만 겪은 일인 줄 알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바보 같이 당하고만 있었던 내가 부끄러워서, 내 잘못인 것 같아서 아무한테 말도 못했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 내 경험을 꺼낸 순간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내 친구도 우리 엄마도 직장 동료도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은 이유로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이것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했다. 또한 이는 정의롭지 않으며 혼자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인 독일의 페트라 켈리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 라고 말했다.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바로 그 때가, 페트라 켈리의 말을 온 몸으로 깨달은 순간이다. 사회의 일부인 내가 겪었다면 그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이는 사회적인 문제다. 개인은 사회의 일부이고 사회를 벗어나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의 경험은 사회적,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개인의 경험을, 특히 여성의 경험을 사소하게 취급하며 축소하려 한다. 명절 문화의 불합리함에 대해 말하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라하며 남편의 아내 폭력은 그저 집안일로 치부된다. 성적인 농담에 불쾌하다고 하면 농담도 모르냐며 분위기만 망치는 사람이 된다. 그러한가. 정말로 이 일들이 사소하기만 한가. 단지 유별난 사람이 오버하는 것인가.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경험한 사람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해할 수 없다. 감수성이 발달해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조차도 상상일 뿐이다.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매순간 느끼며 스스로 행동을 제약하는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상상만으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상상하려는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여성의 경험을 축소하고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더 이상 우리 개인의 경험이 개인의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왜 자꾸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고통을 받는지 밝혀야 하고, 인식해야 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자꾸 떠들어야 한다. 당신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말은 권력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말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말로 목소리를 키워 말한다. 주로 권력자가 말하고, 부장님이 말하고, 연장자가 말한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듣기만 했다. 자신의 말을 가지지 못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김치녀, 된장녀가 되지 않기 위해, 개념녀가 되기 위해 세상의 틀에 자신을 맞춰 조심했고 다른 이들이 원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제는 다른 얘기 말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내가, 우리가 뭘 겪었고, 뭘 느꼈는지 다른 이의 언어 말고 우리의 언어로 말해 보자.

세상은 지금까지 여성들의 경험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직접 우리의 역사를 만들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기록해보자.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경험을 기록해야 한다. 설치고 나대고 말하고 기록하자. 친구한테, SNS에, 블로그에, 어디든 좋다. 아프게 하는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아픈 사람들이 말하고 기록하자.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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