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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시내 건물. 요코하마 시내 건물입니다. 저 둘레에 있는 일본식당에 들어갔는데, 그 종업원은 꽤 친절하고 상냥했죠. 더욱이 자기 아버지는 한국 분이라고했는데, 자신은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음식 값은 너무 비쌌습니다. 물론 그 차림상은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차림상이 전혀 아니었죠.
▲ 요코하마 시내 건물. 요코하마 시내 건물입니다. 저 둘레에 있는 일본식당에 들어갔는데, 그 종업원은 꽤 친절하고 상냥했죠. 더욱이 자기 아버지는 한국 분이라고했는데, 자신은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음식 값은 너무 비쌌습니다. 물론 그 차림상은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차림상이 전혀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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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酒勞動'(금주노동).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선생이 직접 쓴 글씨입니다. 이는 일본 동경의 도립대학(道立大學)역 근처의 금정당성서강당(今井堂聖書講堂) 바로 옆 금정당자료관(今井堂資料館) 2층 서고에 걸려 있는 액자죠.

그 서고에는 우치무라 선생의 생애 사진과 설명서가 벽면 액자에 걸려 있고, 그의 어여쁜 딸의 사진도 함께 세워져 있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1만 3천 권에 달하는 수많은 책들이 2층 곳곳을 메우고 있었죠.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책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일본어나 영어로 돼 있었는데, 한글로 된 김교신 선생과 송두용 선생의 책이 바로 그것이었죠.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53층의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그 최고층에서 바라 본 일본 동경의 시내 전경. 왜 이렇게 투명하고 깨끗해 보일까? 일본 하늘이 황사도 미세먼지도 없이 맑고 깨끗한 까닭이었죠.
▲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53층의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그 최고층에서 바라 본 일본 동경의 시내 전경. 왜 이렇게 투명하고 깨끗해 보일까? 일본 하늘이 황사도 미세먼지도 없이 맑고 깨끗한 까닭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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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치무라 간조 선생을 알게 됐고, 왜 그분의 발자취를 찾아 온 것입니까?"

그 자료관의 사무국장인 아라이 카츠히로 선생이 던진 일본말을 하라다 쿄코 사무원이 한국말로 번역해 내게 던진 이야기였습니다. 아라이 사무국장은 한국말을 발음정도만 하는 수준인데 비해, 하라다 사무원은 우리말에 능통한 수준이었죠. 예전에 우리나라 음성의 꽃동네에서 2년 동안 봉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말을 많이 익혀 둔 것 같았습니다.

'마망'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앞에 서 있는 '마망'입니다. 고영애의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2017)을 읽어보면 ‘마망’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죠.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 ‘마망’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오마주라고 말이죠. ‘마망’이 불어로 ‘어머니’를 뜻한다고 하니, 이해가 되겠죠?
▲ '마망'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앞에 서 있는 '마망'입니다. 고영애의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2017)을 읽어보면 ‘마망’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죠.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 ‘마망’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오마주라고 말이죠. ‘마망’이 불어로 ‘어머니’를 뜻한다고 하니, 이해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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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농학교 초대 교장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 선생 사진이 여기에 걸려 있네요. 간조 선생이 그 분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됐죠. 일본 당국의 탄압으로 그 선생은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고별사를 통해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교훈을 남겼죠. 그 이후 간조 선생은 더 많은 학문과 신학과 사상을 익혀 예수의 생애과 교훈을 가르쳤죠.

그것이 오늘날 '무교회주의'의 근간인데, 우리나라 김교신과 함석헌 그리고 송두용 선생이 그 분의 제자였죠. 다들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했었습니다. 독일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김교신 선생의 제자였죠. 오늘날 교권주의 때문에 성경의 본질에서 이탈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간조 선생의 그 얼과 뜻을 되새김질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 분의 발자취를 밟고자 한 것입니다."

그 분들 앞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간조 선생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자니, 내 얼굴 낯짝이 살짝 간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웃으면서 응대해주는 모습이 너무나 흐뭇하고 좋았습니다. 그 까닭에서 그런지, 이후에 흔쾌히 금정당성서강당의 문을 열어주어 그 속살까지 보여줬습니다. 물론 속살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고, 그야말로 작은 강당 수준이었죠.


국립근대미술관 입구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보고, 그곳 정원 한바퀴를 돈 다음, 그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근대미술관' 입구의 전경입니다. 물론 그곳까지는 시간상 들러보지 못했습니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만 한 컷 찍었을 뿐이죠.
▲ 국립근대미술관 입구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보고, 그곳 정원 한바퀴를 돈 다음, 그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근대미술관' 입구의 전경입니다. 물론 그곳까지는 시간상 들러보지 못했습니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만 한 컷 찍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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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강당 안에는 간조 선생의 얼과 뜻을 기릴 수 있는 한 가지 물체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른바 간조 선생이 살아 생전에 쓰던 교탁 책상이 그것이었죠. 그 책상을 예쁜 보자기로 덮어놓고 있었는데, 지금도 성서 강독자들은 그 책상 위에서 강연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간조 선생의 그 책상도 그렇지만 지금의 '금정당성서강당'은 사실 1945년 신주쿠에서 지금의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 시절에 하필 이곳으로 옮겨 오게 됐는지, 사무국장 그 분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한 게, 지금까지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 입구 모습입니다. 150년을 맞이했다는 알림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외국 여행객들은 구경하러 들르고 있고, 일본 본토인들도 문화 풍토마냥 참배하러 수시로 이곳에 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 입구 모습입니다. 150년을 맞이했다는 알림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외국 여행객들은 구경하러 들르고 있고, 일본 본토인들도 문화 풍토마냥 참배하러 수시로 이곳에 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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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 참배객. 그들에게는 일상이 된 문화였습니다.
▲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 참배객. 그들에게는 일상이 된 문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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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절한 사무국장과 사무원을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이전에 찾아 갔던 야스쿠니 신사를 지키는 경찰들도 그랬고, 그 이후에 찾아 간 롯폰기힐스 모리타워의 직원들도 그랬고, 그리고 맨 나중에 들른 요코하마의 음식점 직원들도 친절하고 상냥했습니다.


오늘도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60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참배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듣는데, 직접 그곳을 둘러 본 입장에서 봤을 때, 그들의 참배는 일상화된 문화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 출근할 때도 그곳을 둘러 참배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즐비했으니 말이죠.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교탁 ‘今井堂聖書講堂’(금정당성서강당) 안에 있는 간쪼조선생의 살아생전 교탁 책상. 지금도 성서강독자들이 이곳에 서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교탁 ‘今井堂聖書講堂’(금정당성서강당) 안에 있는 간쪼조선생의 살아생전 교탁 책상. 지금도 성서강독자들이 이곳에 서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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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롯폰기힐스 모리타워가 50층이 넘는 곳인데, 그 유리창 너머의 동경 시가지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특이했죠.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나 미세먼지로 인해 매일같이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의 맑고 깨끗한 공기 때문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집집마다 세워진 소형차들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인 듯 싶었죠.

금정당 자료관 사무국장과 사무원 ‘今井堂資料館’(금정당자료관)의 사무국장 ‘아라이 카츠히로’와 사무원 ‘하라다 쿄꼬’. 이 두 분의 친절과 배려 덕분에 일본 여행이 너무나 뜻 깊었습니다.
▲ 금정당 자료관 사무국장과 사무원 ‘今井堂資料館’(금정당자료관)의 사무국장 ‘아라이 카츠히로’와 사무원 ‘하라다 쿄꼬’. 이 두 분의 친절과 배려 덕분에 일본 여행이 너무나 뜻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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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당성서강당 외부 ‘今井堂聖書講堂’(금정당성서강당) 전경. 왼쪽 아랫 부분의 '게시판'처럼 지금도 이곳에서 성서강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른쪽 자료관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 금정당성서강당 외부 ‘今井堂聖書講堂’(금정당성서강당) 전경. 왼쪽 아랫 부분의 '게시판'처럼 지금도 이곳에서 성서강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른쪽 자료관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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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의 집이나 차는 무척이나 작고 아담할 정도로 소박했지만, 그들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만큼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도립대학역 근처의 일본식당도 기본이 10만 원을 훌쩍 넘었고, 마지막 날 저녁에 들른 요코하마의 일본식당도 무척 값비쌌습니다. 물론 그 상차림은 우리나라에서 기대하는 그런 풍성함과는 전혀 딴판이었죠.


 간조 선생 글씨
 간조 선생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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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밤 11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일본 동경의 하네다 공항. 그리고 화요일 날 새벽 3시 다시금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던 그 여행길. 만약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금정당 성서강당과 자료관을 둘러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곳을 살펴보지 못했다면 야스쿠니 신사나 모리타워나 요코하마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각자 30만 원씩 내고 떠난 우리 셋의 1박3일 일본여행은 그 사무국장과 그 사무원의 친절한 배려 덕분에 더욱 뜻 깊지 않았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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