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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이후 기업을 다니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숫자로 세상을 보는 법이었다. 영업사원으로서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회사가 어떤 곳인지 파악해야 했는데, 숫자는 그 회사의 민낯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이는 사회적경제 분야로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나는 중간지원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수많은 사업계획서를 접하는 중인데, 이때 눈여겨보는 것은 역시 숫자다. 사회적경제의 특성 상 온갖 화려한 소셜미션과 목적, 목표 등이 계획서에 담기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걷어내고 지원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예산계획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국가의 예산은 그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기 마련이다. 정부는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수식여구로 예산의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결국 그 정부의 철학은 그들이 짜는 예산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그들이 복지에 신경을 쓰는지, 아니면 여전히 토건에 목숨을 거는지는 그 예산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반대

새해 예산안 합의문 발표한 여야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자유한국당 정우택,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해 예산안 처리와 관련한 합의문을 발표한 뒤 함께 나서고 있다. 맨 왼쪽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 새해 예산안 합의문 발표한 여야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자유한국당 정우택,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해 예산안 처리와 관련한 합의문을 발표한 뒤 함께 나서고 있다. 맨 왼쪽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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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회 여야 3당 원내대표는 2018년도 예산안 처리를 합의했다. 기존의 여당 안에 대해 야당이 반대를 하면서 수정을 거친 결과였는데, 그 중 나의 눈길을 가장 끄는 것은 내년 7월부터 만0세~5세 아동에게 월 10만원을 주기로 했던 아동수당의 변경이었다. 문재인 후보의 대표적인 공약이자, 다른 대선후보들도 모두 합의했던 아동수당이 야당의 반발로 소득상위 90% 가구 대상으로 2018년 9월부터 지급하기로 된 것이다.

이런 아동수당에 대한 관심은 내가 단순히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경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에게도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결국 사회적경제가 그 사회의 문제를 경제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현재 사회적경제 영역이 가장 절실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 즉 인구절벽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희박한 만큼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 일본보다 빠르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사회. 결국 아동수당은 지금 이 사회가 인구절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시금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라는 이들이 그 아동수당을 줄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동수당에 대한 여야의 이번 합의안을 보면서 가장 기가 막힌 것은 무엇보다 예산 삭감의 규모였다. 문재인 정부는 애초에 2018년도 253만 명을 대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이번 합의로 소득인정액의 상위 10%인 25만 3천여 명이 이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됐고 그 결과 1조 1천억 원의 예산 중에서 1천 억원 정도를 아끼게 되었다.  

물론 1천 억원이 결코 작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야당에게 전체 예산에서 그 정도를 아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상위 10%를 가려내기 위한 행정비용이 그만큼 들지는 않을까? 게다가 자유한국당의 경우 말도 안 되는 4대강 사업을 한다고 총 22조을 넘게 강바닥에 쏟아 부었던 이들 아니던가.

결국 이번 아동수당 1천 억원 삭감은 그 예산을 아끼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고 나선 보편적 복지에 대한 상징적인 반발이다. 보수언론 등을 위시하여 보편적 복지를 끊임없이 포퓰리즘이라고 폄훼하고, 보편적 복지를 하면 마치 국가 재정이 파탄 나는  듯이 이야기하는 이들의 조직적인 반론이다.

한때 무상급식 이야기만 나오면 '굳이 이건희의 아이까지 무상으로 밥을 먹일 필요가 있냐'며, '차라리 그 돈을 못 사는 친구들에게 더 지원해주자' 했던 이들. 그러나 그들은 정작 그렇게 아껴진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선택적 복지 제도 속에서 지원 대상 아이들은 자신이 못 사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슴 속 멍이 들고 만다.

 결국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것이다
 결국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것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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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단순히 못사는 사람을 위한 시혜가 아니다. 복지는 사회의 지속성을 위한 투자다. 아이를 낳으면 축하해주고, 그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먹여주고 공부시키며, 나이가 들면 우대를 해 주는 것. 그것은 그 사회가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지원하는 최소한의 의무이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 속에서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느끼게 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의 출생과 육아를 결정한다. 현재 우리의 출산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사회 시스템이 아이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적으로 미루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육아수당 10만원은 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아주 많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가 아이의 보육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6월 지방선거 때문에 미뤄라?

이번 합의안에서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바로 적용 시점이다. 야당은 여당의 7월 지급 계획안에 맞서 10월 지급을 주장했는데 그 이유로 6월 지방선거를 들었다. 아동수당 지원이 7월부터 시작되면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으로서 이 발상은 정말이지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도대체 어떤 이가 7월에 지급되어야 할 아동수당이 10월로 미뤄진다고 선택할 정당을 바꿀 것인가. 어차피 아동수당이 주어진 상수라면 그 지급 날짜는 선거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아니, 아동수당을 받을 부모의 입장으로서 오히려 7월부터 받을 수 있는 아동수당을 9월로 미루게 만든 정당을 심판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10만 원은 큰 돈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만큼은 아니다
 10만 원은 큰 돈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만큼은 아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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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야당의 이와 같은 판단착오는 그들이 아동수당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현재 유권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에게 아동수당이란 국가가 시민들의 기본권을 위해 지급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정권이 선거에 맞춰 인기를 끌기 위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뿌리는 돈 봉투에 불과하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그 돈 봉투에 따라 선택을 바꾸는 함양미달의 우매한 군중일 뿐이다.

비극은 이와 같은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의 의견에 대해 국민의당이 별 스스럼없이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이야 지난겨울 촛불시민이 겨눴던 적폐의 대상이지만, 국민의당은 어쨌든 이 땅의 민주주의의 최전선인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 역시 자유한국당의 시각으로 유권자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무리 야당으로서 여당에 대한 반대를 우선한다고 하지만 국가의 철학을 결정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정책이라면 그들의 소신을 우선해야 할 것 아닌가.

어쨌든 이번 합의로 인해 우리 사회는 좀 더 보편적 복지에 가까워졌다. 부디 정치권이 당리당략만 챙기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정치 해주기를 바란다. 인구절벽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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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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