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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사이로 소담하게 흐르는 영산강의 최상류 물줄기 담양천.
 나무 사이로 소담하게 흐르는 영산강의 최상류 물줄기 담양천.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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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 전남 광주에 볼일이 있어 가는 길에 애마 자전거를 데리고 갔다. 광주 곁을 지나는 영산강변을 달리고 싶어서였다. 광주를 품고 흐르는 광주천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영산강이 나온다.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북쪽으로 35km 정도 달리면 나오는 담양까지 영산강 상류여행을 할 수 있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빛고을 광주. 동네 어디나 광주천이 가깝다. 일단 광주천에 닿기만 하면 영산강 가는 길은 쉽다. 천변에서 만난 동네 주민들 말대로 하천길 따라 '빤드시(곧장)'가기만 하면 영산강이 나온다.

영산강은 전남 담양 북쪽 끝 용추봉에서 발원해 담양, 광주, 나주, 무안, 목포를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약 130km의 긴 물줄기다. (남)한강, 금강, 낙동강과 더불어 4대강으로 선정되어 강 개발이 시행되기도 했다. 다른 강보다 길이는 짧지만 '호남의 젖줄'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평야를 품고 있는 물줄기다.  

영산강의 옛 이름이 남아있는 간이역, 극락강역 

 영산강의 옛 이름이 남아있는 간이역, 극락강역.
 영산강의 옛 이름이 남아있는 간이역, 극락강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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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때 파괴된 후, 1959년에 다시 지은 검박한 극락강역 대합실.
 한국전쟁때 파괴된 후, 1959년에 다시 지은 검박한 극락강역 대합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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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담양을 향해가는 영산강 상류지역엔 재밌게도 영산강이란 이름보단 극락강, 담양천으로 불린다. 담양을 지날 땐 담양천으로 불리던 강은, 광주지역을 지날 땐 옛부터 극락강이라고 불렀단다. 불교와 관련된 전설이 담겨있을 것 같은 극락강이란 이름은 영산강변에 조성된 극락친수공원, 극락교, 광주시에 있는 극락초등학교 등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강의 별칭이 아득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려 별로 믿기지 않았는데, 강변에서 '극락강역(광주시 광산구 신가동)'이란 기차 간이역을 만나고서야 현실로 다가왔다. 옛날엔 '극락면'이란 동네 이름도 있었는데 다른 동네와 합쳐지면서 폐면됐다고. 극락강역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 지어진 오래된 간이역으로, 한국전쟁 때 파괴된 후 1959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꾸밈이 전혀 없는 검박한 역 모습, 역 안 대합실도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이다. 전쟁 후 가난했던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도시의 전철역과 다름없는 비슷비슷한 기차역만 봐서 그런지 작고 허름하지만 특별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외양도 이름도 친근한 겨울철새 물닭.
 외양도 이름도 친근한 겨울철새 물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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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철도 덕후'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아담한 대합실에 비둘기호, 통일호와 이제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질 새마을호 등 옛 기차 사진들이 걸려 있다. 입어보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게 역무원 모자와 유니폼도 마련돼 있다. 한 역무원이 연신 두리번거리며 대합실에 앉아 있는 여행자에게 다가와 간이역에 대해 설명도 해주었다.

강변에서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건 철새들이다. 새까만 몸체에 붉은 눈, 이마와 부리가 하얀 새 물닭도 그 가운데 하나.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뜸부깃과의 겨울새로, 외양만큼 이름도 친근하다. 이름에 닭이 붙은 새답게 평소 잘 날아다니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게 귀찮았던지 물닭은 물 위를 달리는 새로 유명하다. 물위를 달리는 닭이라 하여 물닭이라 이름 지었나 싶다.

물닭이 물 위를 달릴 수 있는 것은 커다랗고 표면적이 넓은 특별한 발 덕택이다. 물닭의 발은 여러 마디의 둥근 빨판 모양이 붙어 있는 편평한 발가락을 가지고 있다. 이 발가락은 물속에 잠수했을 때 추진력을 주고 물 밖에서는 미끄러지지 않게 해준다. 이러한 발을 '판족'이라고 부른다고. 몸집은 닭 만하지만 닭보다 서너 배는 큰 왕발로 물 위를 달려 도약하면서 날아오른다. 닭발을 좋아하는 먹성 좋은 인간에게 들키지 않길...

제주도에 가기 위해 영산강변을 달리는 라이더 

 2004년 국내 최초로 지정된 영산강변의 담양하천습지보호지역.
 2004년 국내 최초로 지정된 영산강변의 담양하천습지보호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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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둑길에서 마주친 뱀.
 강둑길에서 마주친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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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변은 대도시의 여느 자전거도로와 비슷한 풍경이 이어지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하천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용산생태습지(전남 담양군 대전면, 봉산면, 수북면 일대)를 지나면서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강가에 푸근한 농촌이 이어지고 고속도로 같은 자전거도로도 강둑길로 바뀌었다. 몇 십분 사이에 강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강둑길 위로 작은 뱀들이 지나다녔다. 자전거를 멈추고 쳐다보니 '차르르' 꼬리를 흔들며 겁을 주는 모습이 흡사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햇빛도 바람도 그대로인데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들었다. 담양지역의 영산강변은 강둑길을 조금 정비해 자전거도로로 이용하게 했다. 가끔씩 차들이 지나가지만 산책이나 자전거 주행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이런 강둑길을 놔두고 옆에 따로 자전거도로를 조성한 곳도 있다. 길 낭비, 세금 낭비다.

추수가 끝난 터라 논과 강둑을 지나는 주민들은 물론 강둑길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도시에선 이럴 때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영산강을 오롯이 혼자 간직하며 달리는 기분이 그리 쓸쓸하지 않아서다. 현대인들이 두려워하는 고독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여행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때다.

 강변 정자 면앙정에서 보이는 초겨울 하늘.
 강변 정자 면앙정에서 보이는 초겨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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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를 친근하게 맞아준 순한 마을 개.
 여행자를 친근하게 맞아준 순한 마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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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강변 정자에서 쉬고 있는 자전거여행자와 마주쳤다. 어른 주먹만한 버너로 끓인 물에 믹스커피 2개를 타서 건네준 50대의 라이더는 제주도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목포항에 제주도로 가는 배가 다닌다.

제주섬은 처음 가는데 비행기타고 너무 빨리 가면 재미가 없을까봐 이렇게 떠날 생각을 했다고. 제주에 처음 간다는 말에 의외라는 내 표정을 보셨는지, 곧이어 '혼자서는 처음'이란다. 그동안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과 여러 번 갔지만 혼자여행이라 그런지 무척 설렌다는 아저씨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강변에서 가까워 안내팻말까지 서있는 정자 면앙정(俛仰亭, 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은 면앙정 송순(1493-1583)이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지은 곳이다. 아득히 펼쳐진 강과 논밭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머리위에서 떼를 이루어 내는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름에 피서를 위해 집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겨울엔 '피한'하러 한반도로 내려오는 철새들이 많다. 반듯하고 안정적인 대형으로 날아가는 모습과 달리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원시적인 목소리로 울어대는 게 공룡의 후예답다.    

국내 최고(最古)의 강둑길, 담양시장~국수거리~관방제림 

 국내 최고(最古)의 담양천변 둑길과 제방림.
 국내 최고(最古)의 담양천변 둑길과 제방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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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이 된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이 운치있게 늘어선 담양천 둑길.
 천연기념물이 된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이 운치있게 늘어선 담양천 둑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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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에서 봤던 농촌길이 맘에 들어와 강둑길 대신 정겨운 논길을 달렸다. 이정표에 보이는 동네 이름이 삼지리, 양지리다. 요즘 아이들이 흔히 쓴다는 속어 '지리구요'가 떠올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 큭큭 웃으며 마을길을 달렸다. 무려 고려 초부터 매년 5월이면 동네 뒷산에 대나무를 심고 잔치를 벌였다는 고을답게 담양읍으로 들어서자 대나무 박물관, 죽녹원, 대나무골 테마공원 등이 자랑스레 나타났다.    

자전거여행자에게 더 매력적인 곳은 영산강의 최상류 담양천이 흐르는 강둑길이었다. 조선 인조 때 만든 오래된 둑이다. 비가 많이 오면 담양천이 범람하면서 민가에 피해가 발생하자 만든 긴 제방이다. 이후 철종 5년 연간 3만여 명을 동원하는 큰 사업을 통해 제방과 숲을 다시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때 둑을 쌓으면서 수백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관방제림(官防堤林)'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둑길 위 인공림은 오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산림청이 주최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상을 받기도 했다. 담양 남산리 동정자 마을에서 수북면 황금리를 지나 대전면 강의리까지 6km에 이른다.

 시골장터 풍경이 남아있는 강둑길 위 담양오일장.
 시골장터 풍경이 남아있는 강둑길 위 담양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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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국수거리의 별미 삶은 달걀.
 담양 국수거리의 별미 삶은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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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묵묵히 강둑을 지켜온 장대한 고목 푸조 나무, 팽나무, 느티나무들이 여행자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둔중하고 두터운 몸체가 나무가 아니라 바윗돌 같았다. 더운 여름엔 짙은 그늘을 드리워주어 주민들의 무더위 쉼터가 된다. 오래전 선조들이 힘들게 만든 둑길이 후손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었으니 조상의 은덕이랄 수 있겠다.

제방위에 난 둑길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생겨난 곳이 담양시장이다. 강둑길은 닷새마다(매 2일, 7일) 오일장이 열려 노점과 장꾼들로 가득해진다. 각종 곡물을 넣으면 구수한 뻥튀기가 돼서 나오는 까만 쇠통, 귀한 홍어가 있는 생선장, 붕어빵·국화빵 등이 있는 정다운 시골 장터다. 둑길 아래로 흐르는 담양천을 바라보며 시장 구경을 하고 장터국밥을 먹는 기분이 특별하다.

담양시장을 지나면 이어서 둑길의 또 다른 명소 '국수거리'가 나온다. 담양천이 내려다보이는 제방의 나무 사이마다 평상이 놓여 있고 윤나는 낡은 소반들이 줄지어 있다. 과거 담양장날 상인들과 손님들이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찾던 국숫집이 늘어나 이렇게 국수거리가 생겼단다. 국수 외에 2개에 천 원 하는 삶은 달걀 맛이 특별한데, 멸치국물에 넣어 삶았단다. 담양천 둑길은 담양이 자랑하는 관광지 메타세쿼이아 나무 숲길까지 계속 이어진다.

* 주요 자전거여행길 : 광주천 - 영산강변길 - 극락강역 - 용산생태습지원 - 면앙정 - 담양천둑길 - 담양시장, 관방제림 - 메타세쿼이아 숲길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22일에 다녀왔습니다. 제 블로그(sunnk21.blog.me)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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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랍니다. 소박하게 먹고, 가진 것을 줄이기. 이방인으로서 겸손하기,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를 실천하며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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