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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2월 26일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총독부가 주관한 전국 31본산 주지회의가 열렸다. 미나미지로 총독, 불교담당 도미나가 후미이치 국장 그리고 치안최고담당인 경무국장이 배석했다.

미나미지로 총독은 조선의 승려들에게 유신의 명목아래 결혼을 하고, 술을 먹고, 육식을 하도록 유도해 조선불교를 타락시킨 장본인인 전 데라우치 총독의 공을 치켜세우며 일본불교와 조선불교를 합해야 한다는 훈시를 했다.

조선총독부의 의도대로 조선불교총본산을 건설하는 일이 착착 진행돼 가고 있었고, 31본산 주지들은 총독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누구도 하지 않았거니와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됐다.

조선불교총본산을 만들면 그것은 조선불교를 일본에게 진상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종단의 자주자립을 주장하는 주지는 없었다. 그때 만공은 단상 앞으로 걸어나가 정좌한 뒤 뱃속에서부터 끌어올린 큰소리로 할(喝,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을 표현할 때 내는 소리로 선승들이 사용한다)을 했다.

마른하늘을 때리는 날벼락처럼, 불시에 투척한 폭탄같은 만공의 '할'은 총독과 경무총감, 학무국장의 고막을 난타했다. 31본산 주지들도 고압선에 감전된 듯 세찬 충격을 받았다. 선사들의 '할'은 단순한 고함이 아닌 시퍼렇게 날이 선 칼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파괴력을 지닌 사자후다.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최고통치자를 향해 만공은 '할'이라는 언어폭탄을 투척해 민족정체성을 수호하고 정신적 독립을 쟁취하려는 성인범(成人凡)을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법문을 통해 '일본 승려들의 영향을 받아 조선승려들이 파계승이 돼 버렸다. 비구를 파계케한 전 데라우치 총독의 죄악은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업이다'고 말해 총독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 <만공> 본문에서 요약

수덕사 옹산스님이 집필한 <만공>.
 수덕사 옹산스님이 집필한 <만공>.
ⓒ 옹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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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옹산 스님이 지난 11월 24일 일제의 총칼 앞에서 조선의 얼을 지킨 만공 스님의 생애를 담은 책 <만공>을 펴냈다. 유려한 필력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만공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한 옹산 스님의 지치지 않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동안 각종 학술대회를 통해 만공의 독립운동 사례를 발굴하고 발표했던 저자는 서문을 통해 '만공선사가 마땅히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아야 할 위업을 세웠음에도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책 표지에는 '당시 총독부가 만공을 투옥시키지 않은 것은, 불교계의 저항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못한 것이다. 만약 총독이 만공을 구속했다면 만공은 이미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나미 총독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에게 숙제를 남겨 놓았다. 구속이 되었던 아니되었든지 만공의 독립운동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양형 여부에 따른 서훈 방식만을 고집하여 우리는 미나미 총독이 남겨놓은 숙제를 풀지 못하는 미로 속에 갇히고 말았다'고 명시해 우리 모두가 숙제를 풀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저자인 옹산 스님은 수덕사 주지 소임시 선문 신축, 선미술관을 건립했으며 2014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독립유공자 서훈, #독립운공, #만공스님, #옹산스님,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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