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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경제적 독립이 되어야 진정한 독립이라는 당연한 깨달음과 나름의 호방한 기세가 더해져 부모님 집을 나오게 됐다. 이제 막 사회인이 된 그때, 돈이 있을 리가. 약간의 대출로 보증금을 마련하고, 월세로 시작했다.

직장까지의 접근성만을 고려해 얻은 나의 첫 보금자리. 집 주위에 중복되어 존재하는 업종은 치킨집도, 편의점도 아니요, 뭔가 모르게 야릇한 술집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영 젊은 사람이 주 고객일 것 같진 않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형태의 '맥주·양주'라고 씌어 있는 가게들.

그러거나 말거나, 도보 10분내 지하철역도, 시장도 있었으니 큰 불만 없이 잘 지내고 있던 그때.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지하철역 근처에 들어섰고, 컴컴한 술집들이 없어지는 대신 예쁜 카페들이 생겨났다. 나는 나날이 예뻐지는 동네가 더 좋아졌다. 개발을 모르고 선택한 동네가 발전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보증금과 월세가 동시에 올라,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동네를 떠나게 되기 전까지는.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이 문제일까?> 책표지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이 문제일까?> 책표지
ⓒ 내인생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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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적 경험일 뿐 그 지역 전체를 확인해본 바 없으니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명명하기엔 섣부르다. 다만 나로선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이 문제일까?>를 보며 그때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겠지만, 용어부터 설명해 보자. 책에 의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됐던 동네의 주거지와 상권이 되살아나면서 임대료가 치솟아,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과 상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말한다.

1960년대 이후 서구의 구도심이 재활성화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대규모 이주 현상을 분석하며 나타난 개념이고, 런던, 뉴욕, 파리 등 세계의 이름난 도시 대부분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여러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지역의 특성으로 구분하자면 주거/상업/문화·예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뉜다고 한다. 낡은 동네의 주택이 개조되거나 재건축하면서 생겨나는 것이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노후 주택가나 영세한 상가 지대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상권으로 변화하는 것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문화·예술 젠트리피케이션은 예술가들이 낙후한 동네에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한다. 이들이 낡은 동네를 세련되게 바꾼 뒤, 지대 격차라는 구조적 요소가 더해져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책은 서울의 홍대 앞, 서촌, 경리단길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나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희망하는 곳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은 한정적 공간과 넘치는 수요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해도, 오랜 시간 정 붙이고 살아온 터전에서까지 내쫓겨야 한다는 것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 젠트리피케이션이 예술가들을 쫓아다니고 있는 형국이라는 진단 또한, 예술로 먹고 살기 힘든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을 양분하자면 다음과 같다. 젠트리피케이션 긍정론자는 이것이 도시의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인 과정이며, 이를 과도하게 억제했을 때 오히려 도시의 슬럼화가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동네 밖으로 몰리는 저소득층에게 당장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결국 경제 성장으로 그들의 삶 역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부정론자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도시는 모든 시민의 힘으로 생성되고 유지되기에, 어떤 시민도 그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에 대한 권리 침해이며, 나아가 도시의 성장과 발전에도 방해가 된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동네의 문화적 매력을 상실하게 하고, 결국 다시 침체의 길로 이끈다는 것이다.

책은 긍정론도, 부정론도 아닌, 균형론자의 편을 들고 있다. 균형론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야 하는 현상이 아닌, 관리해야 하는 현상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예술가, 상인, 건물주가 적대적 관계가 아닌, 도시를 발전시키는 동반자로서 함께 동네 상권을 활성화하고, 정당한 몫을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론자는 급진적 젠트리피케이션을 발생시킬 수 있는 투기를 제한하고, 지역 사회 구성원이 협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을 주장한다. 도시의 발달에 따라 생겨날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부정론이 이상주의자의 입장이라면, 균형론은 현실주의자의 입장이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다.

급속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 모두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도시들의 예가 등장한다. 뉴욕시는 도시계획에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자문기구인 '커뮤니티 보드'를 운영하고 있고, 파리시는 '보호 상업가로'를 지정해 용도를 전환할 수 없는 예술가의 공방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책에는 반가운 한국의 사례도 등장한다. 홍대 앞이나 서촌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모여든 서울 성수동은,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한 바 있고, 상호협력주민협의체를 결성·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긴 아직 이른 듯하지만, 늦기 전에 젠트리피케이션에 주목하고, 그 부정적 효과를 예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선을 끌 만한 사례로 보인다. 책의 말마따나, 건물 중심의 '재개발'이 아닌 사람 중심의 '재생'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다.

이 책은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이라는 시리즈물 중 한 권으로,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게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이미 이쪽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알고 싶지만 복잡해서 미뤄두었던 사람들에게도, 기본 개념을 정리해볼 수 있는 독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청소년들에게 역시 건설적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거라 생각한다. 확실한 정답을 안겨주지 못하는 기성세대라 미안하지만, 앞선 세대의 과오를 딛고 일어나며 세상은 발전하는 것 아니겠나.

부디, 집 앞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긴다면, 단골 고객이 되어 공짜 티켓 몇 장 받는 것으로 즐거워하지만은 않기를 바라본다(네, 제 이야기입니다.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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