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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고생이 있어 쉬고 싶어 하루 휴가를 냈다. 아침에 산행을 하였다. 산속길이 낙엽에 가려 길조차 덮은 산길이다. 산속 절이 있어 대웅전에 무심코 갔다. 먼저 온 60대 후반 할머니가 절을 하고 있었고, 콧물인지 눈물이지 혼동되게 계속 훌쩍거렸다. 혹 불편하실까 그 옆에 나란히 앉아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근엄한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할머니 따라 나도 눈물을 흘리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처마 끝 풍경에 담은 바람소리가 나지막이 나를 깨웠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태양빛에 반사된 부처가 나와 마주하여 밝게 웃고 있었다. 나에게 말했다.

'나는 돌일 뿐이야.'

나도 말했다.

'그럼 나는 흙이네. 부처야, 그럼 우린 친구네.'

나도 부처를 보며 웃고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들려고 하였다. 시골에서 70대 고소인이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왔다는 연락이 왔다. 어제 그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할 때 제대로 의사전달을 못하셔서 아들과 같이 오시라고 날짜를 추후 조정하자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마음 따라 나를 찾아온 것이다. 휴가임에도 마음이 불편해 사무실에 갔다.

"아들 10억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할머니는 다단계 상위 사업자에게 2억 상당 돈을 투자했다. 그 자금은 만기인 정기적금을 해약하고 나중에 자식주려고 모아둔 돈이었다.
 할머니는 다단계 상위 사업자에게 2억 상당 돈을 투자했다. 그 자금은 만기인 정기적금을 해약하고 나중에 자식주려고 모아둔 돈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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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경제팀에서 고소장을 접수받으면 많은 사연이 있다. 고소인은 스님과 함께 오셨다. 스님을 보니 갑자기 조금 전 부처가 떠올랐다. 살포시 웃었다. 스님이 절의 신도인 보살님의 이야기를 듣고 고소장을 작성한 것이었다. 억울함만 가득 느껴지는 고소장,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퍼즐 같은 여러가지 서류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한 시간 넘게 고소인과 이야기 해보니, 할머니는 다니는 절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스님 또한 정리되지 않은 할머니 말을 듣고 두서없이 고소장을 작성한 것이었다.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듣고 서류를 퍼즐처럼 붙여보니 할머니는 다단계 상위 사업자에게 2억 상당 돈을 투자했다. 그 자금은 만기인 정기적금을 해약하고 나중에 자식주려고 모아둔 돈이었다.

피고소인은 적금을 해지하고 자금을 투자하면 적금 만료일에 10억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고 한다. 고소장에는 목걸이 10돈에 대한 영수증도 있고, 자금을 인출한 내역도 있다. 투자금이 모자라 금 10돈을 팔았다고 한다. 요약하여 질문하니 할머니가 반갑게 말한다.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내가 그래 속았어요. 아들 몰래 10억 만들어 줄라고. 아무도 몰래 하라고 그 사람이 말했어."

자식이 알면 마음 아파할 것 같아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하셨다. 자식이 공직자라며, 자식자랑을 수줍게 하신다.

"아들한테 말씀 드리세요. 어머니가 혼자 감당 못해요. 전 재산 다 날리고 어떻게 사시려고요"라고 하니, 갑자기 할머니는 내눈치를 보시면서 "울 아들도 나처럼 농사지어. 돈 없어"라고 급하게 말을 바꾸신다.

내리사랑이다. 할머니의 자녀들이 번듯하면서도 말을 못 꺼내신다.

할머니는 알고 계신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전 재산을 날렸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히려 어머니의 어리석음에 분노할 것이다. 앞으로 부담해야 할 몫에 부담 가지고 자신의 몫이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할 것이다. 할머니는 그 예정된 모습을 알기에 끝까지 자식을 포장한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맞아요. 할머니. 저희 어머니가 같은 일을 당했어도, 저도 그 아픔 다독거리고 도움을 주기보다 화내고 원망하고 부담가질 겁니다. 영혼없이 소극적으로 도움을 주겠지요.'

세상은 나이든 사람에게 내리사랑을 강요한다. 자식에게 '너거 지금까지 받았으니, 지금 부모님 힘드니 조금 드려라'하면, 대부분의 자식은 말하겠지.

'어머니는 와 그랬는교. 나도 살기 힘들어요. 왜 남 줍니까. 진작 내주지. 다른 부모처럼 남겨주지 못할 망정 와 부담을 주는교.'

35년 전, 어머니의 고소장을 대신 쓰던 나  

고소장을 접수하는 사연을 조서로 기록하는 과정은 무거운 수필을 쓰는 느낌이다. 오늘도 한편의 수필을 썼다. 우리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1980년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당시 1억 사기를 당했다. 당시 피고소인은 남편이 대기업 부장이고 돈이 많다고 하면서 접근했다. 어머니는 수차례 돈을 빌려주었고 당시 피해액이 1억 상당 되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0억도 넘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나 스토리가 길었다. 그때 어머니가 깨알같이 쓴 고소장을 나에게 주면서 필체가 안 좋아 경찰이 읽기 힘들다고 다시 반듯이 적어달라고 하셨다. 당시 고소장은 손으로 직접 작성할 때였다.

그때 어머니가 쓴 글에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배여 있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 것이 적시되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어머니가 글을 이렇게 잘 쓴다는 것,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아픈 고소장을 다시 적으면서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아마 어려서 그랬던 것 같다.

35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가 그런 고소장을 나에게 주고 컴퓨터로 쳐달라고 하였다면 나는 어머니를 위해 울었을까. 어머니를 원망했겠지.

나에게는 업무상 받은 진부한 고소장일지라도 그 고소장에는 고소인의 삶이 기록되어 있었다. 정말 아끼고 아껴 모은 돈, 죽으면 조금이라도 자식 주려고 고이고이 적금을 들었다가 은행에 넣는 것보다 수배의 돈을 만들어 준다는 꼬드김에 다단계 회사에 돈을 넣어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 돈은 어차피 할머니 자신의 몫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에게 주기 위해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녀가 그 고소장을 보았다면 자식을 사랑한 마음을 알고 같이 아파할까? 그 아픈 마음 달래기보다 원망의 소리가 요란하겠지.

할머니는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 회사 부도나고 파산선고해서, 채권자들이 모여 채권단이 구성되어 있어요. 할머니 돈은 회사 통장으로 전액 송금되었고. 대표, 상위 사업자는 구속되었어요. 힘들 거 같아요."

할머니는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 그럼 사건 (접수) 안 할래요."

나는 답한다.

"할머니, 의사가 병 낫는다고 장담하지 않아요. 돈 받는다고 말하고 못 받게 되면 제가 책임 못 지니 최악을 말한 겁니다. 일단 해봅시다. 나쁜 사람은 처벌해야지요. 조금이라도 보상받아야지요!"

할머니는 조사를 마치고 스님 손을 잡고 시골로 돌아가셨다.

고소인의 고소장을 보고 피해 진술을 받다 보면 그들의 스토리가 수필이 된다. 선배의 입장도 부모와 같은 존재인가 보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을 혼자 삭여야 하나 보다. 내가 초임이었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

'저 선배는 월급도 내 세배이면서, 좋은 것은 지가 챙기누. 불만은 와 저래 많노. 일은 우리가 다하는데.'

공연히 선배를 적으로 대했던 때가 나도 있었구나. 그 선배도 후배들에게 섭섭했겠지. 부처님 당신은 돌이고 나는 흙이겠죠. 내리사랑으로 마지막 남은 직장생활 마무리할게요. 스스로 나의 명예를 지키며 살게요.

부처의 미소를 나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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