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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는 여느 사병들과 다르지 않는데, 묘역 앞에 사건을 설명하는 빗돌이 세워져 있고 작은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 천안함 순직 용사 묘역 묘비는 여느 사병들과 다르지 않는데, 묘역 앞에 사건을 설명하는 빗돌이 세워져 있고 작은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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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현충원은 우리나라에 두 곳 있다. 하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고, 다른 하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다. 현충원이란 군 복무 중에 순직했거나,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에 참전해 전사한 분들을 한데 모시고 기리기 위해서 조성한 국립묘지이자 현충 시설이다.

물론, 군인만 모셔진 건 아니다. 과거 항일독립운동에 목숨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들도 잠들어 있고, 대전 현충원의 경우에는 경찰관과 소방관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무원들을 위한 묘역도 따로 조성해놓았다. 한편, 현충원의 맨 윗자리는 역대 대통령을 모신 국가원수 묘역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멸사봉공'한 분들이라면, 후세가 영원히 기억하도록 마땅히 우러르고 기려야 한다. 모든 나라가 곳곳에 현충 시설을 만들고 후세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한 줌의 재가 되어 잠들어있는 숭고한 죽음 앞에 서면 그 순간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지난 주말, 난생처음으로 국립 대전 현충원을 찾았다. 방과 후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는데, 현장 체험 삼아 답사할 곳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예컨대, 개항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인 전북 정읍, 고창 일대가 제격이고, 일제강점기라면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전북 군산과 전남 목포가 주제에 부합한다.

그런데, 8.15 광복에서 6.25 전쟁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고갱이 부분을 수업할 때는 가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고민이었다. 서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방에도 관련 유적이 산재해 있다. 4.3 사건이라면 당연히 제주도를 찾아가야 하고, 10.19 여순사건의 경우엔 여수, 순천 일대 답사가 필수다.

또, 6.25 전쟁이라면 낙동강 방어선의 자취와 인천상륙작전의 현장인 인천 일대가 좋고, 빨치산의 근거지인 지리산과 양민학살이 자행된 영동 노근리와 거창 신원면 일대도 의미가 있다.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역사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룰 수 없는 자취들이 전국에 숱하다. 누군가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라고 극찬한 우리 국토에는, 그렇듯 파란만장했던 현대사의 생채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그곳 중에 주어진 여건을 고려해 한 군데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이 바로 현충원이었다. 어차피 역사란 당시를 살다 간 인물들의 삶의 기록이고, 그들이 남긴 자취가 유적일 테니, 유적의 가치를 따진다면 역사적 인물이 잠들어있는 묘소가 맨 첫머리에 와야 한다. 묘비 앞에 서서 그들의 삶을 반추하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존재 이유일 테니까.

주말인데도 현충원을 찾는 이가 의외로 적었다. 묘역 둘레로 난 산책로를 따라 아웃도어 차림으로 운동을 하는 시민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차량 한두 대가 굉음을 내며 묘역 사이를 오갈 뿐이었다. 그나마 그들마저 없었다면 황량했을 성싶다. 도미노처럼 늘어선 빗돌 앞에 놓인 꽃들이 군데군데 바람에 넘어져 있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기침 소리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현충탑 앞 광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숙연함 대신 스산함만 가득했다. 고작 1년에 한 번 성대한 현충일 기념행사가 치러질 때 잠깐 쓰일 뿐, 줄곧 빈터로 남겨지는 공간인 탓이다. 마치 번듯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과도 같은 인상인데, 자칫 허락 없이 들어갔다간 어디선가 나타난 할아버지로부터 혼쭐이 날 것만 같다.

듣자니까, 유족과 군인들을 제외하면 평상시 일반인들이 참배 목적으로 현충원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이따금 인근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주말을 이용해 봉사 활동으로 빗돌을 닦고 묘역 주변을 청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 들어선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그들의 발길도 끊어진 상태란다. 현충원이 시나브로 현충일에만 찾는 곳이 돼가는 듯한 느낌이다.

현충문 앞에서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한눈에 다 아우를 수 없을 만큼 넓다. 시야를 가리고 선 야트막한 언덕들 뒤에도 그만한 넓이의 묘역이 펼쳐져 있어 걸어서 돌아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빗돌에 새겨진 고인들의 묘지명과 약력을 일일이 훑어보려면 하루에 숫자로 구분된 묘역 한 곳도 다 둘러볼 수 없다. 특정한 인물을 콕 찍어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누가 이곳에 안장돼 있는지에 대한 정보 없이는 집 주변 근린공원 산책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묘역을 하릴없이 걷다가 아는 인물 마주치기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안내소에서 모든 피장자들을 일일이 검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참배할 목적이라면 현충탑 앞에서 묵념을 하고 전시관을 관람한 뒤 돌아가는 게 보통이다.

현충원의 첫인상은 두려울 만큼 권위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하늘을 찌를 듯한 현충탑과 육중한 현충문과 광장에서도 느낀 바지만, 피장자의 지위나 계급에 따라 묘의 위치와 넓이, 빗돌의 크기 등의 차이가 확연했다. 한 번 '상관'은 영원한 '상관'이라는 듯, 살아생전의 계급이 죽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계급이 깡패'라는 군대의 은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사병들의 묘는 죽어서도 군대 연병장에서 제식 훈련을 하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데 반해, 장군들의 묘는 지대 높은 터에 군림하듯 자리해 있다. 사병 묘의 족히 서너 배는 될 정도로 묘역이 넓고, 빗돌도 훨씬 크다. 비유컨대, 사병의 묘가 도시 한복판에 아웅다웅 자리한 비좁은 아파트라면 장군의 묘는 흡사 경치 좋은 터에 세운 고급 펜션 같은 느낌이다.

대전 현충원 내 국가원수묘역에 덩그러니 자리한 유일한 대통령 묘소로, 주변은 휑하니 비어있다.
▲ 최규하 전 대통령 묘소 대전 현충원 내 국가원수묘역에 덩그러니 자리한 유일한 대통령 묘소로, 주변은 휑하니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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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국가원수 묘역으로 별도 관리되고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넓이로 치자면 수백 명이 한데 모셔진 여느 묘역과 맞먹지만, 현재 이곳에는 최 대통령 내외만 덩그러니 누워 있다. 참배하려면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2단으로 된 높다란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조선 왕릉 규모의 봉분과 빗돌에다 별도로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빗돌과 상석, 향로에 이르기까지 온갖 화려한 석물로 장식해 놓았다.

묘가 조성된 때가 2006년이니, 이후에도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지만, 그의 '이웃'이 되진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가 태어난 김해 봉하마을로 낙향했고,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립 서울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널찍이 비워둔 최 전 대통령의 옆자리에 안장될 '첫 번째 인물'은 누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여는 묘역과는 달리 최 전 대통령 묘 앞에는 '능참봉' 한 사람이 상시 근무를 서고 있다. 역사상 가장 존재감 없는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터라 해코지는커녕 누구 한 명 찾아올까 싶지만, 꿋꿋이 묘 앞을 지키며 오가는 방문객들을 감시하고 있다. 그의 짧았던 재임 시절 스스로 허물어뜨린 권위를 죽어서 세우려는 듯한 몽니처럼 느껴져 안타까울 뿐이었다.

계급에 따라 묘역 크기 다른 현충원

이렇듯 현충원은 대통령, 장군, 장교, 사병으로 이어지는 살아생전 계급에 따라 묘역이 나뉘어져 있다. 당장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이 그렇다 눙치겠지만, 거칠게 말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한 숭고한 희생에도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순직 당시 계급이 무엇인가가 사후 차별 대우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철저히 위계적인 묘역 배치는 이곳에 잠든 이들에 대한 경외감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하다. 차라리 계급이 아니라 사건이나 역사적 의미에 따라 묘역을 따로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예컨대, 을미의병과 대한광복군이 바로 곁에 누워 있고, 6.25 전쟁 전사자와 베트남 전쟁 관련자가 붙어 있다. 중구난방 묘를 쓰다 보니 숫자로만 구분돼 있을 뿐, 묘역 별로 내러티브가 전혀 없다.
장군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빗돌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육군 중장이라는 계급만 큼지막하다. 중3 아이가 그의 이력을 살펴보고 있다.
▲ 친일파 김창룡의 묘 장군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빗돌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육군 중장이라는 계급만 큼지막하다. 중3 아이가 그의 이력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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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현충원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자들이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창룡을 비롯한 수많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애국지사들 곁에 묻혀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현충원 피장자들 중 상당수가 친일파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애먼 애국지사들까지 오해를 받는 상황으로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선 아예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5.18 광주 학살을 자행한 정치군인들조차 아무런 제약 없이 현충원에 들고 있다. 이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선 현충원을 두고 '개나 소나 다 묻히는 곳'이라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국방부야 전가의 보도처럼 '법대로'를 외치고 있지만, 국민의 역사 인식과 정서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현충원에 묻지 말라'는 애국지사의 유언, 왜?

실제로 현충원에 잠들어있는 인물 중에는 김창룡이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며 억울해할 만한 인사들이 숱하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관련 시민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만도 무려 76명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이력을 적어놓은 빗돌에는 하나같이 '애국애족'으로 점철돼있어, 모르는 이가 찾는다면 애국자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

한 애국지사는 후손에게 '내가 죽거든 현충원에 묻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혹여 친일파 곁에 몸을 누이게 될까 봐 두려워서라고 일갈했단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님인 곽낙원 여사와 장남인 김인 선생이 조손가정이 되어 잠들어있는 곳에 그를 암살한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김창룡이 애국자로 둔갑되어 함께 누워있다는 건 우리 역사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초대 서북청년회장이었던 선우기성의 묘도 애국지사의 이름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정치 깡패'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 우연히 만난 '서북청년회' 초대 서북청년회장이었던 선우기성의 묘도 애국지사의 이름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정치 깡패'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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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당에 현충원의 권위는 껍데기만 남았다. '국립'의 위엄도, '현충'의 진정한 가치도 더 이상 찾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시민단체들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파묘 요구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되레 버티고 있기에 근현대사 교육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직접 그들 묘를 찾아가 현충원의 '진면목'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면 될 테니 말이다.

말하자면, 악질 친일파 김창룡을 비호하고 신임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서울 현충원에 잠들어 있으니, 그가 대전 현충원에 있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에 자리 잡았으니, 그의 충실한 개였던 친일파 민복기와 신직수가 대전에 고이 잠들어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알려주면 된다. 그러한 반어적 대화를 통해, 현충원의 역사가 곧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라는 사실을 아이들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현충'이라는 소중한 이름이 바로 서지 못하고 더럽혀졌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당장 내년 봄 학급 소풍 장소는 결정됐다. 광주에서 버스로 두 시간이면 족한 바로 이곳 국립 대전 현충원이다.


태그:#국립 대전 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창룡, #최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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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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