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원장 후보자인 권칠인 감독(왼쪽)과 오석근 감독(오른쪽).

영진위원장 후보자인 권칠인 감독(왼쪽)과 오석근 감독(오른쪽). ⓒ 인천영상위원회/부산영상위원회


신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아래 영진위원장) 후보로 2명의 영화인이 면접을 끝내고 추천을 받은 가운데, 영화인들이 두 후보자에 대한 공청회를 요구하고 있어 실현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영화인들이 후보자들의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이를 평가해보겠다는 것으로 성사될 경우 영진위원장 선임에 새로운 선례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지난 30일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영진위원장 선임과 관련해 "영화계 현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통령이나 문체부 장관이 일방적으로 지명하는 것보다는 영화인들이 위원장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영진위에 개혁에 대한 생각과 자질 여부를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이들에 대한 공개적인 공청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영진위원장 선임 과정에서 영화계의 뜻이 적극적으로 수렴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다.

공청회 요구에 두 감독은 찬성

현재 영진위원장 후보는 권칠인감독과 오석근 감독, 두 사람이다. 위원장 공모에 이들 2명만이 지원했고, 지난 29일 임원추천위원회의 면접을 마쳤다. 각자 1시간 씩 진행된 면접에서 추천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으나 무난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추천위원회가 두 사람에 대한 추천 절차를 마치면 이후는 검증과정을 거쳐 한 사람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게 된다. 형식은 문체부 장관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청와대 쪽의 인사검증을 거친다는 점에서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영진위원장 공모가 예전과 달라진 점은 지원자들이 적극적으로 사전에 지원 의사를 주변에 알렸고, 영진위의 개혁방안에 대해 방향성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영화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자격이나 자질이 안 되는 인사들이 정치적인 연줄을 활용해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때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관련 기사:  적폐청산·인적쇄신, 어깨 무거운 새 영진위원장은 누구?)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는 영진위가 부정 의혹을 받는 심사를 통해 독립영화관과 영상미디어센터를 자질과 능력이 미흡한 인사들이 운영하게 해 영화계의 반발을 사며 파행을 빚어지게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블랙리스트를 통한 압박과 부산영화제 예산 삭감 등에 영진위가 충실한 임무를 수행했다. 하나같이 영화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인사들이 정권의 도움으로 영진위원장으로 임명돼 영화계에 분란만 조성했다. 이들은 모두 임기를 못 채우고 해임당하거나 자진해서 사퇴해야만 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영진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영진위원장 선임도 사전에 특정인을 선정해 임원추천위원회를 형식적으로 거치는 예전과 달리, 영화인들이 추천한 후보 중에서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임원추천위원회에 이준동 부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영진위원 외에 두 명의 중견 감독과 제작자가 합류했고, 외부인사는 노조의 추천을 받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와 문체부 국장 등으로 모두 9명이다. 영화계 인사들의 절대적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영화계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후보자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난 상태에서 영화인들이 영진위원장 지원자들이 밝히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듣고, 이에 대한 영화인들의 뜻을 임명 과정에서 수렴해 주기를 요청한 것이다. 최근 MBC가 사장 공모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바라는 모습이다.

영진위원장 후보인 오석근 감독과 권칠인 감독은 제안에 긍정적이다. 두 감독 모두 공개적으로 자리를 마련해 영진위의 방향이나 계획을 밝힐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 감독은 "사전에 고 대표로부터 연락이 있었다"며 "그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고, 서울독립영화 개막식에 참석했던 권칠인 감독도 "찬성한다"고 말했다.

일부단체 부정적...임명제 대신 호선제로 가야

ⓒ 영화진흥위원회


다만 다른 의견들도 나오고 있어 영화계 인사들의 이견이 조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몇몇 단체만이 나서기는 어려운 데다 영화단체들이 같이 준비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단체의 한 관계자는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인데, 취지는 좋지만, 시기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최근 선임된 영진위원들은 영화계의 뜻을 수렴해 영화단체들의 추천한 사람 중에서 임명됐고, 이들이 임원추천위원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 위원들도 주요 영화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면서, "이분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상태에서 따로 공청회를 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공청회를 열면 지금껏 여러 토론회에서 나타났듯 각 단체가 자신의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물을 것이고 원로영화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며 "공청회 자리가 취지와는 다르게 단체들의 요구조건을 압박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어 "권칠인 감독과 오석근 감독 모두 누가 돼도 이의가 없을 만큼 영화계에서 인정받고 검증된 인물들 아니냐, 현저히 자격 미달자가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공청회를 통한 검증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영진위를 이끌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기에 방법을 고민해보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영진위원장 선임 과정에서 영화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선례를 만들어 놓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견해다.

임명제보다는 호선제를 통해 위원장 선임을 원하는 것도 이런 요구가 나오는 근원적 배경이다. 예전처럼 9인 위원을 선정하고 그중에서 위원장을 선출하는 구조는 권력의 개입을 어느 정도 축소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위원장을 장관이 임명하는 구조에서는, 정권에 따라 영화계의 의지가 무시될 수도 있어 의미 있는 새로운 선례가 요구되고 있다. 이번 영진위원장 후보 면접 과정에서 임원추천위원회에 참가한 한 영화인도 현재와 같은 임명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위원장 오석근 권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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