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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제가 아니었어!

내 몸은 늙고 있다. 나는 내 자궁도 나와 함께 늙고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생리양이 평소의 삼분의 일로 준 것도 내가 늙고 있거나, 요즘 좀 피곤하거나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생리대 파동'이라 불리는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과 관련한 기사들, 나와 같은 증상을 겪은 사람들의 글을 보고 나서야 '아, 내가 문제가 아니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왼쪽부터) 생리컵, 생리대, 팬티라이너, 탐폰
 (왼쪽부터) 생리컵, 생리대, 팬티라이너, 탐폰
ⓒ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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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는 반품했지만

나는 문제가 된 생리대 브랜드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집에 남아 있는 생리대의 제품명과 개수를 확인하여 반품 신청을 했다. 9월 28일, 식약처에서는 "대부분의 국내유통 및 해외직구 제품에서 VOCs가 검출되었으나, VOCs 최대 검출량을 기준으로 하여도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낮은 수준으로 확인되었다"라는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VOCs는 'Volatile Organic Compounds'의 약어로 휘발성유기화합물을 뜻하며 피부 접촉이나 호흡기 흡입을 통해 신경계에 장애를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벤젠,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추가 조사와 역학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 했는데 아직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리고 11월 중순, 내 계좌에는 6천 원이 조금 넘는 생리대 환불 금액이 입금되었다.

생리컵을 쓰기로 했다

생리대 반품 신청을 하고 난 뒤 다른 제조사의 생리대와 탐폰을 구입했고 몇 년 전에 들어 본 생리컵을 구매하기 위해 검색을 했다. 한참을 찾아 본 결과, 국내에서 생리컵 판매는 금지되었으며 정식 수입을 위해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기다렸다. '곧 허가가 되면 한국 사이트에서 쉽게 살 수 있을거야'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허가는 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다 못해 해외 직구로 생리컵을 구매했다.

생리컵 사용은 처음이라 먼저 생리컵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제작한 유튜브 영상을 보며 공부를 했다. 생리컵의 종류별 특징과 선택 방법, 사용법과 주의사항까지 이론적인 부분을 모두 마스터하고 사용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친구들에게 적극 추천할 정도로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선택 할 수 있는 환경, 기회가 필요해

지난한 과정들을 거치며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다. '초경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생리대 말고 생리컵, 탐폰, 면생리대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면 내 주 생리용품은 무엇이었을까?' 성인여성으로서 내 몸에 대한 선택권은 내가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동안 왜 생리용품 선택에 있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되었다.

변명이라면 탐폰은 드물게 나타난다는 독성쇼크증후군이 두려워 사용을 꺼려했고, 면생리대는 세탁·건조 과정의 시간소요와 번거로움 때문에 패스, 생리컵은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쉽게 구매 할 수도 없어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그나마 가장 안전하고 편하다고 생각해서 사용해 온 생리대가 내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다른 생리용품에 비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리의 자궁은 죄가 없다

먼저 태어난 여자 어른으로서, 20년 가까이 생리를 하고 있는 생리 선배로서 제안하고 싶다. 아직 생리를 시작하지 않았거나 시작한 여자 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다양한 생리용품을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보고 무엇이 좋은지 서로 이야기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주변 여자 어른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생리용품의 장단점을 여자 아이들에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쉬는 시간에 몰래 생리대를 들고 추운 화장실로 가는 것, 생리혈이 옷에 묻을까 종일 불안해했던 것, 교무실에서 눈치 보며 선생님에게 진통제를 달라 했던 것, 생리대 탓과 환경 탓이 아니라 내 자궁과 내 몸을 탓했던 것. 그런 일들은 우리 세대에서 끝이었으면 한다. 내 자궁은 죄가 없다. 당신의 자궁도 죄가 없다.



태그:#생리대파동, #생리컵, #생리대, #탐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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