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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부분 아빠가 출장을 가면 너희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곤 했는데, 오늘은 반대로 너희가 나가 있고, 그 소식 덕분에 몇 가지 생각이 드는 날이구나. 엄마 일 때문에 인도에 따라간 너희들 생각에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오늘 들뜬 목소리로 학교에 다녀와 소식을 전하는 걸 들으니 참 다행이란 생각에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된다.

너희가 처음 인도에 갔을 때는 아빠도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 소식에 걱정을 많이 했었단다. '인도는 어떠어떠해!'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너무 어렵지만, 가끔 뉴스에서 들리는 흉악한 소식들이나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 등에서 나오는 위험한 이야기들은 신경을 곤두서게 하기 충분했거든. 다행히 그곳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학교에 다녀온 너희들의 이야기에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선입관을 가지기 쉬운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구나.

인도 학교의 하교 길
▲ 하교 하는 길 인도 학교의 하교 길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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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체스 수업
▲ Chess School 인도의 체스 수업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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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여기 완전 만화 <검정고무신>이야'라는 한 마디가 너무 인상적으로 귀에 들리더구나. 낡은 학교 40~50명이 가득 들어찬 교실, 잘못한 아이를 체벌하는 선생님, 제대로 문이 없는 화장실, 컴퓨터 없이 배우는 컴퓨터 시간. 같은 시대의 모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그곳의 풍경을 너희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그려봤어.

사실 아빠도 검정고무신 세대는 아니어서 그 정도의 환경은 아니었지만, 몇 가지 연상이 되는 풍경은 있었어. 거친 느낌의 나무 책걸상, 겨울이면 주번이 타오던 석탄, 종이에 그려진 건반 같은 것들이 생각나는 구나.

아빠는 인도를 보면 '조다 악바르' 대제 같은 강성한 인도를 이끌었던 제왕이나, 우리에게 유명한 타지마할이나 바라니사 같은 여행지도 있겠지만, 보고 깊게 인상을 받았던 영화가 두 편 있단다.

먼저 첫 번째는 <덩케르트>라는 영화였어. 2차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수십만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덩케르트라는 해안에 포위되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어선들까지 동원되어서 영국으로 후퇴하게 되는 실화를 그린 이야기란다. 역사를 잘 재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던 영화였는데, 우연찮게 외국 기사를 보다가 이 영화가 인도에서 큰 반발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읽었어.

왜 그럴까 하고 기사를 찾아 읽어 보니, 실제로 덩케르트에 고립된 영국군의 대다수는 인도에서 데려간 인도인들이 영국군으로 참여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 하지만 영화에서는 백인인 영국인들과 백인 프랑스인들만 보이지 인도인들은 보이지 않아. 생사에 기로에 있었던 건 '영국군'이 맞지만, '영국인'은 아니었던 거지.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인도인들을 다시 그들의 전쟁에 병사로 내몬단다. 아편전쟁 때 중국을 침략한 영국군의 상당수도, 상하이를 점령하고 그 유명한 와이탄(Bund)이라는 제방을 쌓은 것도 인도인 영국군이었다고 해. 그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 하고, 슬프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그 사실 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게 생각을 복잡하게 했어. 왜냐하면 그게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닮아 있거든.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인들은 우리 나라 젊은이들을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강제로 그들의 태평양 전쟁에 참가 시키지.

미국 드라마 퍼시픽이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같은 태평양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미군들에 의해서 죽어가는 일본군 중에는 조선인들이 상당수 있었을 텐데, 거기서 언급되지 않고, 생김새 마저 비슷해 식별되지 않지? 미해병대가 탈환작전을 펼친 과다카날, 타라와, 사이판, 괌 등 수많은 섬들에서 일본의 군복을 입은 조선인들이 함께 죽어갔을 텐데 말이야.

이들은 죽음을 당하면서 아마 일본군을 낮춰 부르는 표현인 Jap 이라고 불렸을지도 몰라. <군함도>라는 영화에서 그려지듯 조선인이 석탄을 캐낸 것처럼, 황푸강이 범람하던 상하이에 그 거대한 제방을 쌓아낸 인도인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역사가 우리와 닮아 있지 않나 싶어. 우리처럼 침략했던 국가에 대한 반감이 그렇게 강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두 번째는 <세 얼간이>라는 영화야. 인도의 국민스타인 아미르 칸을 포함한 3명의 친구들이 인도의 명문 공대에 입학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이야기지. '모든 게 잘 될거야'(All is Well)를 외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기억이 나지만, 거기서 아빠는 인도의 빛과 어둠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단다.

먼저 어두운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는 '차별'이라는 프레임이야. 나중에 주인공은 원래 자기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자신이 사는 지방 유력 가문의 아들 이름으로 대학교를 다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단다. 카스트 제도가 법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의 정서에 남아 그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람을 출신성분으로 나누는 차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그리고 낮은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도 거의 보이지 않는 여학생들과 대화 내용들 중 일부를 보면서 느끼게 되었단다. 위대한 성인 '마하트라'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의 인물 '간디'도 카스트 제도를 없애겠다는 영국 총독부의 정책에 반대해 단식투쟁을 한 적도 있다고 하니, 이 뿌리 깊은 차별이 언제 없어질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단다.

밝게 느껴지는 면을 보면 의대보다도 우수한 인재들이 공대를 지향하는 문화를 느낄 수 있었어. 과학과 기술로 나라를 발전시켜 나가는 인도의 미래를 볼 수가 있었지. 우리 나라는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를 선호하지, 의사도 필요하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인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 우리 나라가 기술력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몰라.

포장되지 않은 도로와 한 켠에 아이들이 그려 놓은 그림
▲ 인도의 길 거리 포장되지 않은 도로와 한 켠에 아이들이 그려 놓은 그림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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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남부의 건축물
▲ 인도 건축물 인도 남부의 건축물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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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미국에서도 인도계 엔지니어들은 상당한 대접을 받고 있고, 인도 자체의 기술력도 많이 올라가서 그 속도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나 10억이 넘는 인구에서 뽑아낸 인재들이 이끌어 나가는 그들의 발전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해서 수출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해보면 무서운 일이지.

컴퓨터 없이 컴퓨터를 배우는 것을 보고 놀란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웃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컴퓨터가 없음에도 컴퓨터를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그들의 교육 방향에 대해서 감탄하는 마음도 들었단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흙)이 필요한 건 상식이란다. 인도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흙을 붓고 나무를 키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인도에 가보지 못한 아빠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너희가 거기서 몇 달이라는 시간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이 시간이 흘러 너희가 그 의미들을 스스로 생각할 때 즈음에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 때는 아빠랑 다시 한 번 변해있는 인도와 그 때 우리 나라의 모습을 함께 이야기 해보면 좋을 것 같구나. 그 전에 아빠도 인도에 한 번 가보고 싶어 지는 구나.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electricjin.blog.me 에 중복 게시 예정



태그:#인도이야기, #덩케르트, #세얼간이, #인도, #인도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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