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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앞둔 12월 9일,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이 열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07년 삭제되었던 7개의 차별금지사유(병력, 출신국가, 성적지향, 가족형태, 학력 등)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묻는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나중인가? 차별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평등행 버스를 타겠다. -기자말

 세계여성의날, 이주여성들도 함께하고 있다.
 세계여성의날, 이주여성들도 함께하고 있다.
ⓒ 한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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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트남에서 2005년 가을에 한국으로 왔다. 길가에 노란 은행잎이 조금씩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였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한국에 왔는데 막상 내가 생각했던 삶과 너무나 달라서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바삐 움직였지만 정작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아이고 불쌍한 것" 

내가 한국으로 이주할 당시엔 비자 발급을 위해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는 것이 필수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국말이라고는 인사 정도와 어딜 가든 필요한 단어 '화장실'이었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사는 이주여성들도 많지 않았기에 한국어 교실을 하는 곳도 별로 없었다. 나는 주로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사전을 보며 단어 공부를 했다. TV는 말이 빠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영화나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한국 지리도 모르고 혹시나 길을 잃어버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집 밖에 혼자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동네에 좀 익숙해지고 나서부터 자주 시장에 갔다. 내가 사는 동네의 재래시장 모습은 베트남 내 고향에서 열리는 시장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소박한 사람들과 손님을 반갑게 대하는 상인들, 싱싱한 야채와 따뜻한 분위기, 나는 그런 재래시장의 사람 사는 맛을 좋아했다. 덕분에 순대를 파는 한 할머니의 소개로 나처럼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첫 친구를 만나게 됐다. 그 친구를 통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알게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 한국 사람과 이주여성들을 마주했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동네 시장에는 두부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모든 손님에게 친절하기도 했고 특별히 내게 더욱 신경을 써주시는 분이었다. 두부를 사면 덤으로 고추 몇 개를 얹어주시기도 했다. 나는 고향에 있는 할머니 생각이 나서 시장에 갈 때마다 꼭 두부를 사드렸다. 그날도 두부와 야채를 사러 갔다. 추운 겨울이니 빨리 팔려야 할머니가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내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고 나는 베트남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고 불쌍한 것"이라고 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왜? 불쌍한 사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한국 사람과 닮았다, 외국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한국말을 잘 한다 등의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정말 감사했다. 그것이 칭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한국사람이 되어라?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고맙지만은 않다. 그게 칭찬할 일일까? 한국 사람이 다 되어야 하나? 언제 다 되는 것일까? 나는 한국 국적을 신청하고 귀화를 해서 한국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어디에 가도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곤 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답하면 놀라했다. 분명 외국인인데, 발음도 다른데 왜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나만 겪는 불편함이 아니었다.

다른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자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 아예 가지 않는 엄마들이 있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엄마인 이주여성들이 더욱 예민해진다. 혹여 나 때문에 아이가 왕따 당할까 걱정하면서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서둘러 한국 국적을 받고 개명해야 한다고 한다. 서류상으로라도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동포는 외모가 한국 사람과 비슷하고 한국말을 잘한다. 중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운데 간혹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학부모로, 동네 친구로, 모임 성원으로 만난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통화 횟수도 줄어들고 연락이 끊기기도 한다.

어떤 가족은 아내가, 며느리가 중국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아이에게 엄마의 출신국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인 이주여성에게도 당부한다. 말하지 말라고.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어디에서 왔든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인데 말이다. 가족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이주여성은 사회에서도 편견과 차별로 위축된다.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다문화 자녀라고 불린다. 엄마들은 다문화여성, 그 가족은 다문화가족이라고 따로 지칭된다. TV나 신문 등 언론에서는 늘 불쌍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심지어 학교 교과서도 그렇다.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는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똑같이 국제결혼을 해도 서구 출신 이주여성들은 자신이 왜 다문화가족이냐고 묻는다. 요즘은 한국여성들도 김치를 사먹는데 다문화여성은 김치를 담글 줄 알아야 한다며 김치 만들기 프로그램에 등장한다. 다문화자녀는 따로 읽어야 하는 책도 있다. 고궁 같은 한국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며 한국 역사를 따로 배우게 한다.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한국 사람인데 말이다.

무시하고 배제하는 공공기관과 제도들 

공공기관에서도 차별은 그대로 나타난다. 2011년 이주여성이 직접 제안하는 공공기관 서비스 개선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주여성이 자주 이용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주민센터, 고용지원센터, 경찰서, 학교, 병원 등에 대해 조사했다. 확실히 불만족이 더 많았다. 직원이 불친절하거나 반말을 했다, 설명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안 했다, 남편의 동반을 요구했다, 한국 사람과 같이 가면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혼자 가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들이 있었다.

중국 출신 이주여성 한 명은 아버지의 외국인등록증을 연장하러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다. 허리 통증으로 치료를 받는 진단서를 들고 체류 연장을 요청했다. 그런데 담당 직원이 "허리 아파? 나도 아파"라며 소리를 지르고 체류 연장을 안 해주려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요구해서 6개월 연장을 받기는 했지만 당사자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바로 옆 창구에서는 서구에서 온 사람이 직원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체류 연장을 하고 갔기 때문이다. 같은 외국이라도 출신국가에 따라 차별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 베트남 이주여성은 귀화 허가 통지서를 받고 주민등록을 한 후 개명하러 법원에 갔다. 그런데 직원이 절차와 필요한 서류를 한 번에 안내해주지 않아서 왔다 갔다 하게 하더니, 귀화허가통지서 원본을 가져와야 한다며 다음에 다시 오라고 서류를 책상에 툭 던졌다고 한다. 그 여성은 개명신청을 하지 못하고 또 한 번 방문해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법원에서는 귀화허가통지서가 필요 없다고 했다.

제도적인 차별도 크다. 이혼한 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인 어린 자녀를 키울 때 이주여성이 귀화 전이라면 가족관계증명이 쉽지 않다. 한부모가정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도 외국인 신분이면 신청할 수 없고, 어린 자녀가 세대주가 된다. 그리고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이방인이 되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차별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최근에 한 필리핀 이주여성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대뜸 돈을 줄 테니 성매매하자고 한 사례도 있었다. 올해 1월 자동차부품업체에서 10년 동안 일해온 고 추티마 씨가 한국 남성에게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직장동료였던 김 씨는 "경찰 단속이 있으니 따라오라"며 미등록 태국 이주여성노동자였던 추티마를 야산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성폭행을 시도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살해했다.

이주여성은 여성, 인종, 계급의 세 가지 층위에서 차별에 노출된다. 그러나 폭력에 맞서기도 쉽지 않다.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면 한국 가족의 말만 듣는 사례도 있다. 경찰이 돌아가면 이주여성은 남편을 신고했다며 죄인이 되고 가족들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차별과 폭력의 악순환이다.
 

차별은 바로 내 옆에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국제결혼가정 즉 혈통 중심으로 지원을 한다. 그렇다 보니 난민, 유학생, 이주노동자, 국제결혼을 했으나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자녀가 없는 경우 등 다양한 이주민을 포괄하는 정책이 없다. 한국사회에 200만 명의 이주민이 살고 있고 우리는 모두 다문화사회에 살고 있다. 누구는 다문화 사람이고 누구는 한 문화 사람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더불어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차별이 없어져야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된다.

차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 어느 집단을 차별할 수 있다. 잘 몰라서, 잘못된 정보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자신이 이주민을 차별하는 줄 모를 수 있다. 그런데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에게는 그 고통이 오래토록 남는다.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차별금지법은 무심코 넘겼던 차별을 알아차리게 할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이주민들이 선주민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12월 9일 오후 2시, 세계인권선언일 맞이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가 열린다.
 12월 9일 오후 2시, 세계인권선언일 맞이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가 열린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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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가은 님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입니다.



헌법의 평등이념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실천하는 연대체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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