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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부부 저, <THE MAPPING OF AFRICA>2007 “케이프 타운 국회의사당에 강리도가 걸려 있다.”
▲ 리처드 부부 저, 2007 “케이프 타운 국회의사당에 강리도가 걸려 있다.”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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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이 14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인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지도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 나아가 세계 자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으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서양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일은 지구의 남반부 남아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새천년을 맞이했을 때 남아공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에 화인처럼 박혀 있는 '노예'의 기억을 치유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습니다. 새 국가 건설을 도모하고 남아공과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국회가 주체가 돼 천년 프로그램(PMP)에 착수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나타나 영감을 준 매개체가 바로 강리도, 그리고 같은 계열의 지도인 중국의 대명혼일도였습니다. 아득한 지구 너머 케이프타운에 강리도가 등장하게 된 까닭이 그러하다니, 기이하기만 합니다.

(관련 기사: 미 고교에서 가르치는 조선 문화재, 한국은?)

2002년 11월 남아공 국회의사당에 전시된 강리도를 지금은 사이버 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먼저 대명혼일도를 봅니다.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불명인 이 대형 지도(386cmx456cm)의 세계상은 강리도와 대체로 일치합니다. 다만 좌우 양측이 불완전하게 잘려나간 인상입니다.

대명혼일도 남아공 국회 천년 프로젝트
▲ 대명혼일도 남아공 국회 천년 프로젝트
ⓒ pmpsa.gov.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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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에 원형지도가 보입니다. 지도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인 모로코 지리학자 이드리시(al-Idrisi)의 세계지도(12세기)입니다. 중세 이슬람 지도의 전통에 따라 남쪽이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위에 따라 세계지도를 그리면 남아공이 윗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지도에서는 남아공을 포함한 남부 아프리카의 형상이 제대로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위로 돌려놓으면 아래와 같습니다.
알 이드리시 지도 알 이드리시 세계지도(12세기)
▲ 알 이드리시 지도 알 이드리시 세계지도(12세기)
ⓒ johnz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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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에 거대한 돛단배 같은 형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일강의 수원입니다. 산맥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와 두 호수로 흘러들었다가 다시 하나의 호수로 합쳐진 다음 강을 이뤄 지중해로 사라집니다. 옛 이슬람 지도와 서양 지도에 수백 년 동안 등장하는 형상이 나일강의 수원입니다. 동서의 지리학에서 나일강을 그만큼 중요시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강리도에도 나일강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제 아래에서 두 장의 강리도를 주목해 봅니다. 왼쪽은 류코쿠(龍谷)본이고 오른쪽은 16세기에 모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혼코지(本光寺)본입니다. 두 지도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에는 일본의 방위가 90도 시계방향으로 잘못 돌아가 있고 후자에는 바로 잡혀져 있다는 점입니다.

강리도 류코쿠 본과 관련해 단행본을 펴낸 미야 노리코(일본 교토대)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강리도(류코쿠 본)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역사상 최고(最古)의 아프리카-유라시아 전도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약 20년 전만 해도 이 류코쿠 본인 혼일강리역대도지도가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러나 1988년에 나가시키의 혼코지(本光寺)에서도 아프리카- 유라시아 지도>가 발견됐다. 크기는 약 세로 220cm, 가로 280cm로, 류코쿠 본보다 두 배 정도 크고 두꺼운 종이에 그려져 있으며, 접혀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지도 전체의 모양과 내용이 서로 닮았다. 두 지도에는 공통의 원본이 있음에 틀림 없다."

-<조선이 그린 세계 지도>, 일본 원서 제목은 <몽골이 낳은 세계도: 지도는 말한다>
강리도 강리도도 류코쿠 본과 혼코지 본
▲ 강리도 강리도도 류코쿠 본과 혼코지 본
ⓒ pmpsa.gov.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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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의 남아공 행!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요? 까마득한 옛날 한양에서 만들어진 지도가 새천년의 아침을 맞아 저 아득한 아프리카의 땅끝에서 영감의 메신저가 됐다니 말입니다.

만일 강리도를 제작했던 우리 선조들이 다시 살아나 그 광경을 보셨다면 그 감회가 어땠을까요? 정작 후손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강리도가 도대체 남아공인들의 정체성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일까요? 의문으로 남겨 놓습니다.

월인천강지도(月印千江之圖)의 출현

강리도에 대한 외국의 평가를 이모저모 알아 보는 까닭은 자아도취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강리도가 상상을 뛰어 넘는 작품이어서 우리 스스로 확신이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引起了歷史學界相當大的震撼/중국 푸단 대학의 葛兆光교수/2014.10.20, 북경 일보 칼럼)
"지도의 영역이 모든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미야 노리코, 앞의 책)
"보는 사람을 아연실색케 한다(be astounded)." (<The Human Record> vol. 1)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지도 제작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성취다." (<Encyclopaedia of the History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Non-Western Cultures>)
"15세기 말까지 나온 서양의 어떤 지도보다 우월하다."(<THE MONGOLS AND THE WEST 1221-1410>)
"콜럼버스가 가장 우수한 지도를 보려고 했다면 한국을 찾아갔어야 했다. 강리도에서 자신의 고향 제노아를 찾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레드야드 콜롬비아대 명예교수, <CIRCA 1492>)

중천 허공에 뜬 달은 하나건만 그 그림자 달은 일천 강에 모습을 비춘다고 합니다. 강리도가 그러합니다. 아시아와 유럽, 미주 대륙과 아프리카의 전시관과 강의실, 백과 사전과 지도첩, 역사서들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그 이름조차 잘 모르는 스와질란드라는 아프리카 소 왕국의 학자가 쓴 논문에서도 강리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J.R. Masson of Swaziland).

강리도는 세계의 주요 언어는 물론이고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 말레이시아어, 터키어 등으로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실로 강리도는 월인천강지도라 일컬을 만합니다. 허공의 달이 여러 강과 바다에 다른 모습으로 비추듯이 강리도 또한 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투영됩니다. 여러 관점과 시선을 탐험해 보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지도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국 에모리 대학의 강좌를 살펴 봅니다.
에모리 대학 강좌 인문 지리 강좌에 강리도 소개
▲ 에모리 대학 강좌 인문 지리 강좌에 강리도 소개
ⓒ southernspac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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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하버드로 불린다는 이 대학에서는 '지도 분석을 통한 인문학의 전환'이라는 주제의 강좌에서 강리도를 대표적인 지도 중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지도는 대상 영역에 대한 관점과 스케일 그리고 형태에 대한 제작자의 결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무하마드 알 이드리시가 그린 1154년 세계지도는 지금의 지도와 정 반대로 남쪽이 위로 가 있다. 조선의 이회와 권근이 만든 15세기의 강리도는 북쪽을 위로 향하게 그린 점이 오늘날의 지도와 닮았다. 이 지도는 남쪽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형태의 아프리카 대륙을 그렸다. 한데, 아프리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푸른색 공간으로 보아 지도제작자가 아프리카 대륙을 굉장한 수량을 담고 있는 땅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GIS나 디지털 지도 제작 기술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에 나온 이런 세계상들은 지리학 개념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지도가 북쪽을 향해 있다", "아프리카가 남쪽으로 가면서 좁아지고 있다"는 해석은 별스러울 게 없는 내용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북쪽이 위에 가 있는 방위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양에서 중세부터 그려온 마파 문디(Mappa Mundi)라는 세계상은 모두 동쪽이 위를 향했고, 이슬람 지도들은 거의 예외없이 남쪽이 위를 향했습니다. 서양에서 북쪽이 위를 향하는 세계지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466년 경 독일의 수도승 니콜라우스(Nicolaus)가 프톨레미 식 세계지도를 그린 이후입니다. 물론 북쪽을 향하는 것이 우열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그 점 때문에 강리도에서 근대 지도를 보는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것이지요.

"한국의 이 지도에서 몹시 놀라운 점은 북쪽이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 지도처럼 보이는 최초의 지도가 1402년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제리 브로톤, <열 두 지도로 본 세계사>)

강리도의 진면목은 바로 이것

이제부터가 강리도의 진면목입니다. 먼저 서양 지도를 봅니다. 1482년 울름(Ulm)판 프톨레미식 세계도입니다. 프톨레미는 영어식 명칭이고 그리스어 명칭은 프틀레마이오스입니다. 여기에서는 프톨레미라 부릅니다. 제작 시기가 류코쿠 본과 비슷한 이 지도는 가장 빠른 프톨레미 지도에 속합니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천문지리학자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에 근거해 그린 것을 프톨레미 세계도라고 일컬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리 정보가 반영됐기 때문에 당시의 세계상이기도 했습니다. 프톨레미 세계지도는 15세기 유럽인들의 표준 세계상으로서 압도적인 권위를 누렸습니다.

울름판 프콜레미 지도 1482년 독일 울름 판 프콜레미 세계지도
▲ 울름판 프콜레미 지도 1482년 독일 울름 판 프콜레미 세계지도
ⓒ lazarus.elte.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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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과 인도양에 주목해 봅니다. 아프리카가 남쪽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습니다. 땅이 남쪽으로 한없이 뻗어나가다가 남동쪽 끝부터는 지도의 밑줄을 따라가며 동쪽으로 띠 모양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한편, 인도양은 육지에 갇힌 거대한 내해로 그렸습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대서양쪽에서 인도양으로 항해할 수 없기 때문이죠. 프톨레미의 오류가 마침내 타파된 것은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1450년 경-1500)가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 인도양 쪽 해안에 기착하면서였습니다. 그것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해로가 열리는 순간이자 프톨레미의 오랜 오류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489년 아래와 같은 지도가 그려집니다. 마르텔루스 세계지도라 일컫습니다.

마르텔루스 세계지도 포르투갈 항해 기록
▲ 마르텔루스 세계지도 포르투갈 항해 기록
ⓒ 위키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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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단이 틀을 깨고 나왔고 그 아래 어렵사리 해로가 나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존 세계관의 틀이 깨졌음을 이 지도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망봉과 인도양이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나일강 수원지역의 묘사도 인상적입니다. '달의 산'이라는 글(Montes Lunae, 라틴어)이 보입니다.

이제 포르투갈 입장에 서서 상황을 음미해 봅니다. 대항해시대의 막을 연 인구 100만 명의 소국 포르투갈은 1415년 지브롤타 맞은 편의 이슬람 요새 세우타를 정복함으로써 아프리카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 이래로 항해가들이 대를 이어 아프리카 서해안을 남하한 끝에 73년 만에 드디어 희망봉에 이르는 개가를 올린 것입니다. 실로 세계사적인 돌파를 기록했음을 이 지도가 웅변해 줍니다.
카라벨 포르투갈 디아스 항해
▲ 카라벨 포르투갈 디아스 항해
ⓒ bhsrenaissance.weeb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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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말하면 이 지도 이전에는 아프리카의 남부와 일대의 해역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그곳에 발을 들였고 또 최초의 지도를 그린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유럽인들의 보편적 상식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마르텔루스 지도가 나오기 무려 87년 전에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아프리카를 그릴 수 있었단 말인가.

 
강리도 아프리카 부분 류코쿠 디지털판
▲ 강리도 아프리카 부분 류코쿠 디지털판
ⓒ 류코쿠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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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아프리카 강리도 교토대 본
▲ 강리도 아프리카 강리도 교토대 본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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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포르투갈인들, 아니 유럽인들이 이 지도를 보면서 겪게 될 망연자실을 능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리도 진면목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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