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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나불대는 게 아니야.
사람 아닌 악질 살육과 싸우는 이들의 꿈을 빚는 거야.
그걸 비나리라고 하지.
거 왜 글로 긁적거리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웅얼대는 거 있잖아."

 백기완·문정현 <두 어른>
 백기완·문정현 <두 어른>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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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거리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유난히 질곡이 심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두 분은 늘 그 시대 가장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했고, 삿된 권력에 거침없이 날을 세웠다. 두 분의 삶은 그야말로 '사람 아닌 악질 살육과 싸우는 이들'과 함께 '꿈을 빚는' 삶이었던 셈이다.

백기완 소장은 올해 여든 다섯, 문정현 신부는 여든이다. 이따금씩 신문이나 TV뉴스를 통해 두 분 모습 볼 때 마다 이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며 후세를 위해 의미 있는 기록 하나 남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같은 바람을 눈치 채기라도 했을까? 백 소장과 문 신부의 대담 100편을 엮은 대담집 <두 어른>이 세상에 나왔다.

본문은 시 형식으로 짜여졌다.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2월까지 백 소장과 문 신부와 나눈 토론을 시 형식으로 구성했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흡사 두 분이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도 든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무림 고수가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약속대련을 한다는 인상도 받는다. 보이지 않게 두 분의 글을 돋보이게 한 편집자의 솜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세월의 무게에도 총기 잃지 않은 두 어른 

이따금씩 세월의 흐름과 함께 총기를 잃어가는 이들을 본다. 그러나 두 분의 글 속에선 여전히 예리함이 번득인다. 세월이 흐를수록 지혜가 더해가는 모습이다. 특히 시대를 꿰뚫는 통찰은 젊은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현대로 와서 독점자본주의는 사람을 어떻게 지배해왔느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 놨다. 
일터에서 하는 일은 똑같은데 품삯 따위로 딱 갈라놓은 거야.
식민지 지배할 때 제국주의자들이 하던 수법 있잖아.
분할지배, 분열지배의 악덕을 더욱 욱죈 것이지.

이것은 한마디로 반인간적인 범죄야.
노동자의 정당한 계급의식을 파괴하는 반노동자적인 범죄요
썩어가는 자본주의 문명의 반문명적인 만행이라니까."

- 백기완, 16쪽

"박근혜보다 세상이 더 미쳤지.
박근혜가 정권을 연장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이...
사회가 각박해질 수밖에 없어. 정신이 파괴되고.

(중략)

정직한 것이 살아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어.
이것이 박근혜보다 더 절망적이야."

- 문정현 69쪽 

두 분의 글 속에서 가장 감명 깊은 대목은 약자, 고통 당하는 자들을 바라보는 연민어린 시선이다. 백 소장은 2016년 5월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19살 김군의 죽음에 주목한다. 백 소장은 김 군의 죽음에서 노동자들의 현실이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고 개탄을 금치 못한다.

"열아홉 젊음이 고장 난 지하철 문을 고치다가 라면 하나 놓고 죽었어. 
사람들 보는 데서.

대통령이 있고 돈 많은 재벌이 있고 경찰, 검찰이 있고 다 있는데
라면 하나를 놓고 죽었잖아.
있다는 것들은 다 잘 먹고 잘 사는데 그 열아홉 젊음이 죽었잖아. 

그렇다고 하면 지난날 내가 겪은 것과 요즘이 하나도 다르지 않아."

- 백기완, 42쪽

백 소장의 개탄에도 불구, 1년 6개월여가 지난 지금 제주도 내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민호 군이 현장실습 도중 숨졌다. 이런 백 소장의 시에 화답해 문 신부는 길, 즉 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겠노라고 선언한다. 문 신부가 말한 현장이란 세월호, 고 백남기 농민 등 그 시대 가장 고통당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다.

"빼앗긴 곳이 현장이야.
고통받는 곳이 현장이야.
처절한 노동 현장, 세월호 아이들이 있는 곳.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는 곳...
그런 현장에 남고 싶어.
몸이 하나라 광화문 촛불에 못 가면 마음이라도 가 있어야지.

현장에 있다가 마감하는 삶,
바로 그 길 위에."

- 문정현 35쪽 

혹자들은 두 분을 '전문 시위꾼' 쯤으로 폄하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음에 언급했듯 두 분은 가장 고통 당하는 약자의 편에 서서 삿된 권력과 싸우는데 평생을 바쳤고, 지금도 '상황'만 생겼다 하면 거리로 나간다.

백 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촛불을 들었다. 문 신부 역시 마찬가지다. 1975년 인혁당 수형자들의 주검을 실은 영구차를 가로 막았던 문 신부는 37년 뒤인 2012년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막고자 경찰 병력 앞에 옷을 찢었다.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거리에 여든이 넘은 어르신이 나온 게 젊은이들의 잘못 같아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비록 생각이 다를지라고 해도, 이 세상을 바로 잡으려 활동하는 이들이 두 분을 어르신으로 모시고 있다면 그 분들의 삶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두 어른>은 왜 이분들이 시대의 등불로 추앙 받는지를 잘 보여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시편'과 '잠언'은 신앙의 교훈을 주는 지혜문학으로 불린다. 이 책 <두 어른> 역시 이 시대에 주는 지혜문학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문 신부가 <시편>이라면, 백 소장은 <잠언>이다.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미대사관 맞은편에서 반전평화를 위한 문정현 신부의 서각기도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미대사관 맞은편에서 반전평화를 위한 문정현 신부의 서각기도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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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