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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권 피해사례 증언대회'에 참석한 피해 증언자들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28일 서울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권 피해사례 증언대회'에 참석한 피해 증언자들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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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안 되는데, 여기 계신 다른 분들께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지금 개헌 논의도 성소수자 이슈 때문에 많은 어려움들이 있잖아요."

이인섭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 건강권 피해사례 증언대회'에 참석한 다른 피해 증언자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울먹였다. 증언대회를 공동 개최한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에겐 "의원님도 (개헌특위에서) 많이 어려우시리라 생각해요"라며 잠시 몸을 앞으로 빼 눈을 맞췄다. 그는 성소수자다.

"다른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정 무리라면 저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구가 (개헌 조항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포괄적인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돼야만 성소수자의 권리도 함께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할 필요 없는 사람들이..." 성소수자 인권 그리고 건강권

증언대회가 끝난 직후 그에게 울컥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미안할 필요 없는 사람들이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잘못된 구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없어 아까 미처 말을 다 못했는데... 개헌 논의에서 마치 성소수자가 발목 잡는 것처럼 비치거나, 성소수자들 때문에 통과되는 법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지요. 발목 잡는 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들이지 않습니까."

그는 "이 같은 역사가 처음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때도, 서울시 인권헌장 때도 있었다"라며 "성소수자는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데 마치 건강하지 못한 이들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정신적으로 위축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활동가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건강권 피해 사례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청소년의 커밍아웃을 '마귀 들림'이라며 폭행을 가한 부모의 사례도 있었고, 성폭력을 당한 성소수자 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힐 수 없어 제대로 병원 치료를 받기 힘들었던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2시간 여 진행된 이날 행사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다른 피해 증언들을 경청했다. 증언대회에서는 이 활동가 외에도 학교급식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보험 체납 피해자, 장애인 가족 등 건강권 피해자들이 증언을 쏟아내며 새 헌법에 건강권이 명시돼야 할 필요성을 피력했다.

다음은 이인섭 활동가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멍투성이 얼굴, 실핏줄 다 터지고"... 몰이해가 부르는 성소수자 가정폭력

-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상담을 맡고 있다. 건강권 관련 피해 사례가 있나.
"청소년 성소수자 한 분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 의료 지원을 갔을 때였다. 피해자가 자신의 몸에 대해 걱정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청소년의 경우는 부모와 동행을 하지 않나. 그때 마저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소수자란 사실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제대로, 사실대로 진료받을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의사한테 얘기 해도 될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심각한 폭력도 생겨난다. 몇 년 전 기독교 집안 자녀였던 한 트렌스젠더 청소년은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 부모에게 '마귀 들림'이라며 묶어놓고 기도를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이 청소년은 멍투성이 얼굴로, 실핏줄이 다 터진 상태로 맨발로 도망쳐 나와 저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이런 게 정말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쉼터 문제도 크다. 탈가정 청소년의 경우 쉼터가 굉장히 중요한 복지시설이 되는데, 현재 대한민국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쉼터는 없다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쉼터에서 일하는 분들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특별히 차별의식 갖고 계신 게 아니고, 시스템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예산과 시설 부족 때문에 공동 숙식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통 남성 쉼터, 여성 쉼터로 나뉘어져 있다. 성소수자나 트렌스젠더를 위한 쉼터는 요원하다. (상황이) 심한 쉼터의 경우에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잠재적인 성폭력 가해자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린치 사건도 일어난다. 종로 지역이 남성 동성애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돼있는데, 남성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예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남자끼리 손잡고 있으면 큰소리로 게이냐고, 호모냐고 물어보거나 신체 폭력도 가하는 사례도 있었다. 서구의 혐오 폭력처럼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늘어나는 추세다."

- 개선책은 있나.
"우선 의료 인력들에 대한 성소수자 인권 감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교육 차원에서라도 그게 먼저다. 성소수자를 HIV 감염자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정신 건강면에서 상담을 받거나 진료를 받을 때 과학적이지 못하게 상담 선생님들이 동성애나 성소수자를 치료 대상이나 비정상으로 간주해 치료를 권하는 등 문제들이 아직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미 주류 의학계에서는 성소수자를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는데도 말이다.

교육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생각보다 교사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인권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그럼으로써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게끔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건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기본적으로, 성소수자 혐오가 늘어나는 건 그만큼 성소수자 인권이 증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성소수자 본인들이 좀 더 자신을 드러내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가시화된 폭력이 점점 더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 때 게이라는 걸 말할 수 없었지만 최근 청소년들은 좀 더 용기 가지고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학교 폭력도 가시화되는 거라고 보고, 더불어서 부모에게도 커밍아웃 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가정폭력도 일어나는 것이다."

- 새 헌법에 건강권을 넣자는 게 오늘 증언대회의 요지였다. 개헌 논의에 바라는 점이 있나.
"기존 헌법만 잘 지켜도 성소수자 인권은 보장된다고 본다. 다만 최근 국제사회 국제 규약들은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 대해 너무나 당연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만이라도 최소한으로 보장해줬으면 한다. 새로운 헌법은, 국제 인권 규범을 잘 이행하는 헌법만 돼도 족하다는 거다. 명문화된 문구로 '성소수자 인권'이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세계 인권의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 아까 다른 피해증언자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울먹이더라.
"시간이 없어 말 못했는데 덧붙이고 싶었던 건, 개헌 논의에서 마치 성소수자가 발목 잡는 것처럼 비치거나, 성소수자 때문에 통과되는 법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잘못이라는 거다. 발목 잡는 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들이지 않나. 잘못된 구도다.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한 움직임이 있으면 관공서 같은 데에 문자 테러나 겁박들이 온다고, 우리들에게 뭐라고 한다. 그러면서 국민정서를 운운하거나 사회적 합의 기다리라고 하더라. 하지만 그건 문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국민과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 오늘 행사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오늘 장애인 부모님 말씀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한 게, 혐오는 무지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잘 모르면 두렵고 싫어하게 되는 건데, 장애인 어머니 말씀처럼 '알게 되면, 가까이서 겪어보면 차별 대상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는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성소수자가 겉으로 잘 안보여서 그렇지, 동료, 주변 이웃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알 수 없는 골목의 음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면 성소수자 차별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늘 사회적 합의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만 소수자나 약자들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 수 있다면 소수자도, 약자도 아닐 것이다. 사회적 합의 이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사회와 정부가 함께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개정 헌법에 '건강권' 명시해야"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서울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권 피해사례 증언대회'에 참석해 개정헌법에 건강권이 독립 조항으로 규정되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서울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건강권 피해사례 증언대회'에 참석해 개정헌법에 건강권이 독립 조항으로 규정되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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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행사를 주최한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시민건강증진연구소·건강세상네트워크·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빠띠·바꿈세상을바꾸는꿈은 "건강이 인권이라는 관점은 낯설지만 행복한 삶을 누리는 필수 요건"이라며 "개정 헌법에 건강권을 명문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 헌법 전문에 기본원리로서 생명과 건강 존중의 원리 포함 ▲ 건강권의 별도 독립 조항 명시 ▲ 성별, 연령, 지역, 고용형태, 장애, 성적 정체성과 지향, 경제적 부담능력 등으로 건강권 차별 금지 ▲ 제3자의 건강침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 명시 ▲ 건강의 중대한 영향 미치는 정책 과정에 당사자들 참여 보장 ▲ 건강권 보장을 위한 여타 헌법상 기본권 강화 등을 개헌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국회 개헌특위 위원이기도 한 권미혁 의원은 이날 증언대회에서 "국민이 원하는 기본권 중 하나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라면서 "시대적 사명이 국민의 건강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원하는 만큼 헌법에서도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국가의 의무가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태그:#성소수자, #건강권, #인권, #개헌, #이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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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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