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과 언론은 동아시안컵을 대비하는 대표팀을 '플랜 B'라 칭한다.

굉장히 우려스럽다. 월드컵 개막까지는 아직 6개월여의 시간이 남았다. '플랜 B'가 필요하지만, 대놓고 '후보'로 못 박을 시점인지 의문이다. 소속팀에서 제아무리 대단한 활약을 보여도 주전이 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수비에는 기성용이나 손흥민처럼 월드컵에 참가할 가능성이 100%에 가까운 선수는 없다. 그런데도 동아시안컵을 넘어 월드컵을 꿈꾸는 누군가는 김민재의 백업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 그 누군가는 신태용 감독의 신임을 듬뿍 받는 장현수나 권경원보다 정승현이 될 가능성이 크다.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손흥민이 계속되는 슛이 골대를 빗나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손흥민이 계속되는 슛이 골대를 빗나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은 지난 27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표팀 소집 훈련에 앞선 인터뷰에서 "염기훈은 선발보다 후반 조커로 기용할 생각이다. 상대가 지쳤을 때, 체력적으로 밀어붙일 생각이다. 33~34세는 월드컵에 나가는 데 문제가 없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염기훈이 전성기의 버금가는 실력을 자랑한다 해도 대표팀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월드컵에 나설 실력을 갖췄음에도 주전을 꿈꿀 수 없는 대표팀을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신태용호 '플랜 B', 너무 이른 고민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지만, 성공이라 칭할 수 있는 대회는 두 차례뿐이었다. 4강 신화를 써낸 2002 한-일 월드컵과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한 2010 남아공 월드컵이다.

특히 신태용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경쟁이 끊이질 않았다. 2002년의 영웅 홍명보와 안정환이 대표적이다. 홍명보는 2001년 6월에 치러진 한-일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이듬해 1~2월 미국 전지훈련까지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체력과 몸싸움 등에 약점을 보이는 홍명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태영과 최진철, 심재원, 조병국, 송종국, 유상철 등 수많은 이들을 중앙 수비수에 배치하며, 치열한 경쟁을 유도했다.

홍명보는 월드컵 경험만 세 차례였던 최고의 수비수였지만,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젊은 선수들과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하면,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는 것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안정환도 마찬가지였다.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내 유일한 빅리거(페루자/이탈리아)였지만,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하는 안정환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는 90분을 뛸 수 있는 체력이 없다고 봤다. 전방에서 강하게 부딪히기보다 슈팅 기회만을 찾고, 수비 가담을 게을리하는 모습도 끊임없이 지적했다.  

황선홍과 최용수, 이동국, 김도훈, 안효연이 2002년 1~2월에 열렸던 미국 전지훈련에서 안정환의 자리를 대체했다. 안정환의 대표팀 합류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히딩크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안정환은 우여곡절 끝에 3월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주전 자격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튀니지와 핀란드, 터키로 이어진 평가전에서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황선홍(2골)이 유일했다.

하지만 변화가 있었다. 안정환은 그라운드 위의 야수가 됐다. 출전 시간에 상관없이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죽자 살자 달려들었다. 박스 부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측면과 수비 지역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거친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고, 압박에도 성실하게 임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한 결과였다.

안정환은 월드컵 개막 직전이었던 5월 스코틀랜드와 평가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히딩크 사단에 걸맞은 공격수로 성장했음을 증명했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폴란드)과 2차전(미국)에서는 황선홍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지만, 3차전부터는 선발로 도약해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앞장섰다.

히딩크 사단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쟁을 통해 역대 최고의 대표팀을 만들었다. 홍명보와 안정환뿐만 아니라 박지성도 월드컵 본선 명단에 포함될 것을 확신하지 못할 정도였다. 히딩크 감독은 개막 직전에 열린 잉글랜드, 프랑스와 평가전에서도 모든 선수를 고루 시험하면서, 본선 베스트 11을 꼭꼭 숨겼다.

'어떻게 훈련할까' 27일 오후 울산종합운동장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 '어떻게 훈련할까' 지난 27일 오후 울산종합운동장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신태용호는 어떠한가. 누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설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완벽한 실패였던 2014 브라질 월드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기성용과 손흥민은 대체 불가한 자원이고, 장현수와 김민재, 권창훈, 황희찬 등도 베스트 11이 유력하다.

특히, 프로 첫 시즌을 치른 김민재에게 막대한 신뢰를 보내는 것이 개인의 기량 발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플랜 B'라 못 박힌 염기훈이나 김신욱 등은 2002년 선수들만큼 동기부여가 될지 의문이다.

물론, 히딩크 감독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신태용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늦은 판단으로 인해 최종예선 막판에서야 지휘봉을 잡았다.

월드컵 본선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감독이 잘 아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하고, 하루빨리 조직력을 다지는 것이 정답처럼 느껴질 수 있다. 주전과 후보를 빠르게 나누고, 깜짝 발탁을 꺼리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월드컵에서 주전을 목표로 땀 흘리는 선수와 '플랜 B'로 못 막힌 채 본선 무대를 준비하는 선수 중 누가 더 짧은 시간 내 기량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무엇이 대표팀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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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 플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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