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최대 축제인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아래 서독제)가 오는 30일 목요일 개막을 시작으로 12월 8일까지 열린다. 올해 서독제는 본선경쟁 부문 38편, 새로운 선택 부문 26편, 특별기획 8편, 해외초청 8편까지 총 111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이중, 기자가 43회 서독제 상영작 중 올해 열렸던 각종 영화제에서 미리 본 작품 위주로 추천작을 10편 꼽아 보았다. 이 중, 본선 경쟁작이자 12월 7일 개봉하는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만 보지 않았다.

[하나] <얼굴들>(본선경쟁 경쟁 장편2)

 이강현 감독의 <얼굴들>(2017) 한 장면

이강현 감독의 <얼굴들>(2017) 한 장면 ⓒ 시네마달


영화 <파산의 기술>(2006), <보라>(2010) 등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은 이강현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얼굴들>(2017)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헤어진 이후 각자 일상을 살아가는 연인들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얼굴들>은 인물들 간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면서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은 군상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기존 극 영화처럼 기승전결 내러티브에 의존한 해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다. 이강현 감독은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봤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기쁨으로 환하게 웃음 짓는 얼굴, 화가 나 일그러진 얼굴, 맥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얼굴, 또는 그 표정에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하게 되는 얼굴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 헤어진 후에도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 번 봤을 때는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어 볼수록 진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올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 수상작이다.

[둘] <말해의 사계절>(본선경쟁 경쟁 장편3)

 허철녕 감독의 <말해의 사계절>(2017) 한 장면

허철녕 감독의 <말해의 사계절>(2017) 한 장면 ⓒ 허철녕


허철녕 감독의 <말해의 사계절>(2017) 주인공 김말해 할머니는 765kV의 송전탑이 세워진 경남 밀양시 상동면 도곡마을의 유일한 합의 거부자다. 동시에 그녀는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보도연맹 학살, 베트남 참전 등 대한민국의 굵직한 근현대사를 직접 체험한 인물이다.

영화는 한국 역사의 비극과 고스란히 이어지는 많은 아픔을 가진 김말해 할머니의 굴곡진 인생을 바탕으로 현대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말해의 사계절>은 김말해 할머니를 통한 여성, 약자의 시선으로 국가 폭력의 실체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영화는 구술사에 충실한 다큐이자 동시에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밀양 송전탑의 정당성에 관한 물음까지 끌어낸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상영작.

[셋] <소성리>(본선경쟁 경쟁 장편5)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2017) 한 장면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2017) 한 장면 ⓒ 오지필름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찰이 찾아오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소성리는 사드 배치지가 된 이후 한순간도 조용할 날이 없는 균열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2017)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바 없이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과 사드 배치 반대 투쟁 현장을 연이어 보여주며 주민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사드 배치의 부당성을 알린다. 동시에 영화는 소성리 주민들이 겪었던 6.25 당시 학살 관련 육성 증언들을 비중 있게 들려주며 연이어 반복되는 국가 폭력의 비극,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소성리>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대상 '비프 메세나' 상을 받은 박배일 감독은 폐막식 당일 수상소감을 통해 서병수 시장에 대한 강도 높은 사과를 요구하며 영화인들의 큰 호응을 얻어낸 바 있다.

[넷] <초행>(본선경쟁 경쟁 장편8)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 한 장면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 한 장면 ⓒ 인디플러그


미술학원 강사 수현과 작은 회사의 계약직 직원 지영은 동거 6년 차 커플이다. 수현은 지영이 한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약속된 일정으로 지영의 부모님을 만나러 인천으로 가는 두 사람. 단순한 집들이로 생각했던 수현과 지영에게 지영의 어머니는 결혼을 강요한다. 긴 하루를 보내고 잠을 청하는 두 사람. 수현은 그동안 피해 왔던 자신의 가족들과 마주할 각오를 하고 지영과 함께 동쪽의 끝 삼척으로 향한다.

<철원기행>(2015)으로 주목받은 김대환 감독의 신작 <초행>(2017)은 즉흥적인 연출과 상황설정을 통해 극 중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과 감독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결혼을 앞두고 작은 변화를 겪게 되는 두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는 시선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시작으로 제70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베스트이머징디렉틱상, 제32회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에서 실버 아스토르 각본상을 받았다. 12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섯] <플레이온>(새로운 선택 장편1)

 변규리 감독의 <플레이온>(2017) 한 장면

변규리 감독의 <플레이온>(2017) 한 장면 ⓒ 연분홍치마


정규직 전환을 위한 파업에 참여하기 이전 SK브로드밴드 소속 수리 하청 노동자들은 파업 소식을 알리기 위해 <노동자가 달라졌어요!>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다. 하청노동자로 일하며 느끼는 서러움, 진상 고객들의 뒷담화,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라디오 스튜디오는 또 하나의 삶의 무대다.

노동자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하는 모습, 파업 현장들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는 '성장'이다. 희망이 없을 것 같은 현실에도 사람들이 도전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던 변규리 감독은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다가오는 무모한 도전의 결과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제17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작 및 관객상 수상작이자, 제22회 인디포럼에서도 관객상을 받은 바 있다.

[여섯] <개의 역사>(새로운 선택 장편3)

 김보람 감독의 <개의 역사>(2017) 한 장면

김보람 감독의 <개의 역사>(2017) 한 장면 ⓒ 시네마달


후암동에 살던 김보람 감독은 어느 날 공터에 묶여 있던 늙은 개 한 마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후 홍은동으로 거처를 옮긴 감독은 그곳에서 후암동의 백구처럼 기구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이웃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그리고 감독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개의 역사>(2017)의 스토리를 몇 줄로 요약하면 대략 이러하다. 김보람 감독의 카메라는 너무 흔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풍경과 얼굴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이따금 보이는 미세한 행동,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사려 깊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전형적인 사적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 동시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감독이 경험한 바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수필적 요소가 다분하다. 또한, 개발과 성장의 논리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올해의 다큐멘터리.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시작으로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경선 장편대상 수상,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관객구애상 수상, 제60회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영화제 넥스트 마스트 섹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일곱] <국가에 대한 예의>(새로운 선택 장편5)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대한 예의>(2017) 한 장면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대한 예의>(2017) 한 장면 ⓒ 권경원


1991년 일어난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대한 예의>(2017) 당시 사법부에 의해 억울하게 유서 대필 가해자로 몰린 강기훈씨 외에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노태우 정권에 저항했다 쓰러진 수많은 열사를 기억하고자 한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을 시작으로 1991년에 일어났던 국가 폭력의 실체를 돌아보고자 하는 <국가에 대한 예의>가 겨냥하는 화살은 결국 현재, 지금이다. 위암 판정을 받은 이후 기타 연주를 시작한 강기훈의 연주곡에 맞춰 이야기가 흘러가는 음악 영화 형식을 빌린 다큐멘터리 속 실존 인물 강기훈은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도 지금까지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사과를 받고자 한다. 이제 그들이 강기훈의 추궁에 대답할 차례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상영작 및 제4회 사람사는세상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여덟] <벼꽃>(특별초청 장편7)

 오정훈 감독의 <벼꽃>(2017) 한 장면

오정훈 감독의 <벼꽃>(2017) 한 장면 ⓒ 오정훈


오정훈 감독의 <벼꽃>(2017)은 경기도 파주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이원경)의 모습을 밀착 촬영한다. 별다른 내레이션 없이 농부가 벼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벼꽃>은 농부를 둘러싸고 있는 농촌의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벼와 농부의 곁에 항상 있지만, 그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곤 하는 일상의 풍경까지 포착하며 아름다운 에세이 필름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

농부의 따스한 손길을 받으며 벼는 무럭무럭 자라지만, 농부의 삶은 여전히 고되고 그들의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 같은 농작물들이 걱정되어 한시라도 자리를 비울 틈새가 없는 농부들은 거리에 나오고, 자신들의 노동과 땀과 노력을 들어 정성스럽게 키운 농작물들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벼의 성장을 통해 땀을 흘려 일하는 노동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관객상 수상작.

[아홉] <아파트 생태계>(특별초청 장편8)

 정재은 감독의 <아파트 생태계>(2017) 한 장면

정재은 감독의 <아파트 생태계>(2017) 한 장면 ⓒ 영화사 풀


<아파트 생태계>(2017)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아파트에 관한 일종의 기록 보고서이다. 애초 아파트의 출발은 서민들에게 안정된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강남 개발 붐에 힘입어 강남, 잠실, 여의도 신시가지에 지어진 중대형 아파트는 어느새 중산층의 꿈이 되었으며 자산 증식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반면, 강남 아파트에 완전히 밀려 버린 구시가지 시민 아파트는 선뜻 찾아가고 싶지 않은 도시의 흉물로 전락한다.

아파트를 통해 '무분별한 개발'로 대표되는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본 <아파트 생태계>는 생태계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파트가 원래 가진 공공성의 의미를 되짚어 보며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갈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1960-70년대 도시 계획 개발 붐에 힘입어 서울 곳곳에 자리 잡은 아파트는 그곳에서 수많은 추억을 남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며, 또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경제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픽션-다큐-에세이 형식을 오가는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서울의 아파트 역사를 충실히 고찰한 정재은 감독의 3번째 건축영화다. 제9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개막작 및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열] <미세스팡>(해외초청4)

 왕빙 감독의 <미세스 팡>(2017) 한 장면

왕빙 감독의 <미세스 팡>(2017) 한 장면 ⓒ 서울독립영화제


중국을 넘어 아시아 독립 다큐멘터리를 대표하는 거장 왕빙의 신작.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죽음에 다다른 '팡 부인'의 마지막 며칠을 담아낸다. 영화는 왕빙 특유의 덤덤하면서도 사실적인 영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묻고 있다.

자식들은 경제 사정상 의사를 부르거나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갈 형편은 못 된다. 다니던 일터까지 그만둘 정도로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팡 부인의 곁을 지키고 있지만 사실 죽음을 앞둔 팡 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고통스럽게 간신히 삶을 이어가는 팡 부인을 하염없이 지켜만 볼뿐…. 언제나 그랬듯이 적극적 개입이 아닌 멀리서 보여주기 방식을 통해 중국 가난한 민중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왕빙의 카메라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제70회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작이자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프리미어로 상영된 바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소성리 초행 개의 역사 국가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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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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