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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아동 건우아빠 김동석씨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예산안 통과를 염원하며 1004배를 진행하고 있다.
▲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위해 국회 앞에서 1004배 한 ‘건우아빠’ 김동석씨 중증장애아동 건우아빠 김동석씨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예산안 통과를 염원하며 1004배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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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 1004배 절을 하기로 결심한 남자의 머리가 수도 없이 바닥을 향한다. 땅에 닿은 머리 위로 무심한 발걸음들이 스쳐지나갔다. 27일 오전 9시, 출근길에 늦은 사람들은 종종걸음 치며 국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조속한 건립'이라 적힌 천을 몸에 건 남자를 흘깃 바라보는 이들은 소수,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들도 태반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절을 이어가는 그는, 아이의 이름이 수식어가 된 '건우아빠' 김동석씨다. 그가 국회를 찾은 것은 이번 주 중으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설계비 반영을 위한 국회예결특위 예산심사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이날의 '1004배'에는 국회가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천사(1004)'가 되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로 10살이 된 건우는 아픈 아이다. 8년 전 사고로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게 된 건우는 사지가 마비돼 움직일 수 없다. 말도 할 수 없으며 음식도 먹을 수 없다. 위에 관을 꽂아 영양제를 투여하고 있다. 건우가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게 건우아빠의 소원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안정된 치료와 교육, 보살핌이 가능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이다.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입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도 있거든요. 여름 되면 땀을 엄청 많이 흘리잖아요. 아이가 휠체어에 앉아만 있으니 땀띠가 엉덩이, 등 할 거 없이 나요. 아무리 자주 씻겨줘도. 그럴 땐 아이스크림이라도 입에 대주고 싶고, 시원한 물이라도 넣어주고 싶은데...."

너무도 당연한 것을 위한 너무나 단순한 바람이다. 입술이 떨리던 건우아빠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입으로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거, 그런 걸 위해서라도 병원 건립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서히 침몰하는 우리 아이들, 제발 꺼내주세요"

'지방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일명 건우법을 대표 발의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예산안 통과를 염원하며 1004배를 진행하고 있는 중증장애아동 건우아빠 김동석씨를 응원하고 있다.
▲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위한 일명 건우법 발의한 박범계 의원 '지방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일명 건우법을 대표 발의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예산안 통과를 염원하며 1004배를 진행하고 있는 중증장애아동 건우아빠 김동석씨를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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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쯤 흘렀을까. 건우아빠 관자놀이에 땀이 맺힌다. 이날 아침 서울 기온은 영하 3도였다.

그의 옆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일정 중 짬을 내 잠시 함께 했다. 예결위원이기도 한 박 의원은 "우리나라 중증장애 어린이들이 6만 3000명인데 전문재활병원이 없고 치료 받을 병상 수가 턱없이 적어 아이들이 병원을 전전해야 한다"라며 "치료는 물론이고 교육 받을 환경이 전혀 안 되어 있다, 내년 예산에 설계비라도 꼭 반영돼야 한다"라고 못 박았다.

이어 그는 "보건복지위원회가 계산한 설계비는 4억 원 밖에 안 된다"라며 "우리나라에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이 한 개밖에 없는데 일본만 해도 200개"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지난 해 9월 '지방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일명 건우법을 발의했지만 1년 넘은 현재까지 보복위 계류중이다. 국회 논의가 더디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건우아빠 속은 타들어간다. 정부도 8억원(국비 4억 + 지방비 4억)의 설계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이 액수는 확보돼야 건립 설계라도 진행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 생명이 위험한 걸 모른 척하고 학교를 보내지 않으면 처벌 받잖아요. 그런데 국가가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죠? '국가는요?'라고 묻고 싶어요. 국회의원이, 국가가 해야 할 책무를 방기해왔다고 생각해요. 건우법이 1년 넘게 계류 상태잖아요. 국회가 모른 척한 거예요. 그러다가 문재인 대통령 공약 통해서 겨우 추진되는 건데, 국회의원들이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

돈의 관점이 아니라 생명의 관점으로 봐주세요. 단순히 재활병원 세우는 게 아니라, 생명 차별 문제를 극복하고 생명의 가치를 세우는 첫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더 이상 아이들이 기다릴 수가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재활병원 건립이 늦춰지는 동안 아이들 건강 상태가 지금처럼만이라도 유지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건우 치료를 위해 악착 같이 매달려도 1년의 1/3 이상 치료를 못 받는다. 중증장애아들을 위한 병상이 부족해 3~6개월마다 병원을 옮겨 다녀야 하는 '재활난민' 신세이기 때문이다. 치료를 못 받는 동안 건우의 몸은 뻣뻣해지고 휘어지며 골반이 빠진다. 아이의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두 눈으로 지켜만 봐야 한다.

"지금도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아이들이에요. 10대 미만 장애아동 조사망률이 전체 인구 대비 37.9배나 높아요. 장애 부분은 골든 타임이 정말 중요한데...강원도에 있는 아이가 장애를 당하면 '병원이 없는데' 하고 기다리다가 장애가 굳어버리게 됩니다. 정부도 조기 진단과 조기 개입이 중요한 거 다 알아요. 제발 보이지 않는 세월호 타고 있는 우리 아이들 얼른 끌어올려주셨으면...골든타임에 놓인 아이들 빨리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문재인 대통령님, 약속 이뤄질 거라 믿습니다"

올해 1월 당시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어린이재활병원 반드시 필요합니다'는 글과 함께 인증샷을 올렸다.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이 필요하다’는 글과 함께 문 대통령의 머리에는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힘을 싣겠다는 의미인 ‘기적의 새싹’ 머리핀이 꽂혀 있었다.
 올해 1월 당시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어린이재활병원 반드시 필요합니다'는 글과 함께 인증샷을 올렸다.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이 필요하다’는 글과 함께 문 대통령의 머리에는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힘을 싣겠다는 의미인 ‘기적의 새싹’ 머리핀이 꽂혀 있었다.
ⓒ 김동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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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지난 2월 대전에서 열린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추진 간담회’에 참석해 중증장애아 가족들을 만났다. 
올해 2월 7일 ‘기적의 새싹, 더불어 행복한 대한민국’ 간담회에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를 초청했고, 문재인 후보가 수락해 만남이 성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지난 2월 대전에서 열린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추진 간담회’에 참석해 중증장애아 가족들을 만났다. 올해 2월 7일 ‘기적의 새싹, 더불어 행복한 대한민국’ 간담회에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를 초청했고, 문재인 후보가 수락해 만남이 성사됐다.
ⓒ 김동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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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25분, 1004배를 모두 마쳤다. 마지막 절은 천천히 이뤄졌다.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건우아빠는 한참을 등을 굽히고 기도하듯 서 있었다.

"믿음이죠. '꼭 이뤄질 것이다, 예산이 통과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약속하신 대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설립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직접 건우를 만났다. 후보 시절이던 당시 대전에서 열린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추진 간담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등록된 중증장애 어린이가 6만3000명에 달하는데 전문적으로 치료해 줄 병원이 전국적으로 서울에 딱 한 곳뿐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 재활병원이 치료, 학교, 돌봄서비스 등 3가지를 책임질 수 있도록 공공의료가 대폭 확충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 결과,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문 대통령 공약집에 포함됐고 당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도 선정됐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지난 3월에도 건우를 만나 문 대통령님은 '임기 내 공공어린이집재활병원을 완공하겠다'고 하셨죠. 그리고 '건우야 어때?'라고 물으셨어요. 지금도, 문 대통령님의 약속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건우 환경은 아직도 그대로예요. 대통령님, 기다릴 수 없는 전국의 건우를 생각해주세요."







태그:#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우아빠, #문재인,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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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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