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전체관람가>의 한 장면.

JTBC 예능 <전체관람가>에 등장한 이명세 감독. ⓒ JTBC


햇수로 10년 만, 동시에 단편으로 치면 대학생 때 만든 이후 처음이라니 40년 만이다.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스타일리스트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 > < M > 등 여러 화제작과 실험 작을 선보인 그가 언제부턴가 국내 영화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됐다.

2012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한창 차기작 <미스터K> 준비에 한창이던 그는 여러 제반 사정으로 영화에서 돌연 하차, 5년 만의 복귀가 무산된 후 우울증까지 앓아왔다. 이후 근근이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지만 좀처럼 촬영에 들어간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지난 26일 JTBC <전체관람가>에 '그대 없이는 못살아'를 들고 나왔다. 작품에 대한 평가를 넘어 환갑의 감독이 현장 이곳저곳을 누비는 모습은 동료 감독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오래전 인연을 더듬으며 27일 오후 이명세 감독과 직접 통화할 수 있었다.

"영화를 떠난 적 없었다"

 JTBC 예능 <전체관람가>의 한 장면.

JTBC 예능 <전체관람가>의 한 장면. ⓒ JTBC


12신 209컷 477테이크. 그리고 29명의 배우와 45명의 스태프. 단편치곤 상당한 무게감이었다. 아마 거장의 귀환에 많은 이들이 화답한 결과일 것이다. "영화란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결합한 것"이라며 이미지주의자다운 정의를 내린 그가 영화를 통해 다룬 소재는 바로 데이트 폭력. 사랑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품어온 그답게 거기에 숨은 폭력성과 이질감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현대 무용가 김설진과 유인영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패널로 참석한 동료 감독들은 "선배 감독의 열정에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하며 눈물 흘렸다. 양익준 감독은 "(지금 젊은 감독들은) 영화적 감동을 같이 경험할 수 있는 선배들 없이 영화를 만들어온 세대"라며 "이런 분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비쳤다. 그만큼 이명세라는 존재가 알게 모르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후배 감독들의 속내와 관객들의 솔직한 평을 들은 이후여서인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명세 감독의 목소리는 한층 밝았다.

"글쎄…. 정말 뭔가 뭐랄까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소회도 없다. 지금은 그냥 진공 상태? 덤덤하다는 표현도 안 맞아. 사실 난 늘 영화에서 떠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 반응들이 낯선 거야. '아, 벌써 (영화를 안 한 지) 10년이 됐나?' 물론 들어오는 얘기들이 다 좋은데 스스로가 영화와 떨어져 있었는지 묻게 되더라고. 난 항상 거기에 있었는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나이 드신 분들이나 장애인들은 자신들은 늘 같다고 생각하는데 바라보는 사람들이 다르게 보는 거지. 나 역시 항상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겐 다음 작품만 있었지, 한 번도 떠나 있은 적이 없거든. 지금의 반응이 낯설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묘하다."

감독의 조로 현상

 JTBC 예능 <전체관람가>의 한 장면.

ⓒ JTBC


알려진 대로 <전체관람가>의 취지는 영화와 방송 두 매체의 결합을 통해 신선함을 전달함을 목적으로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전도연, 문소리, 이영애 등 지금까지 방송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배우를 비롯해 감독과 스태프를 고루 조명하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일각에선 스태프들의 열정페이 비판도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이 프로를 통해 영화계 내 시스템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신선하고 의미 있다.

이명세 감독은 지난 9월경 섭외요청을 받았다. "내가 영화만 찍을 수만 있다면 아프리카에 가도 좋다"며 그는 선뜻 제의에 응했음을 밝혔다.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지. 처음으로 적시에 기회가 온 것 같다. 그간 큰 광고든 어떤 프로젝트든 꼭 작품이 막 들어갈 때 한꺼번에 왔었다. 난 하나에 집중하자는 주의라 그런 걸 거절하고 그랬거든. 이번엔, 뭐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일종의 몸을 워밍업 느낌으로 임할 수 있었다. 물론 프로그램 자체가 재미가 있어야 하고 더불어 독립영화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도 있다지만 난 사실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저 주어진 기회에 감사할 뿐이다."

이명세 감독은 흔히 말하는 한국 영화감독의 '조로현상'의 피해자 중 한 명 일 수 있다. 여든을 훌쩍 넘긴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제 막 여든이 된 리들리 스콧은 여전히 활발하게 메가폰을 들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한국의 현실은 좀 척박하다. 쉰 살 정도 넘겼을 뿐인데 차기작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감독들이 꽤 된다. 이에 대해 이명세 감독에게 물었다.

"그것에 대해선 누누이 얘기했지만, 감독 입장만 말하고 싶진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가 상업과 예술의 두 측면이 있잖나. 상업성을 챙기는 건 뭐라고 해서도 안 되고 뭐라 할 수도 없다. 다만 그걸 존중하듯 예술성에 있어서 전문가들이 쌓아놓은 것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다양성이 생길 수 있는데 너무 천편일률적 잣대로 어느 순간 한국영화가 흘러간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죄다 트렌드에 맞춰서 흘러가니까 다양성이 사라지는 건데 자칫 한순간에 모두 훅 갈 수 있다.

홍콩 영화도 프랑스 영화도 천편일률적으로 가다가 어느새 우리 곁에서 희미해지지 않았나.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 외엔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지. 영화를 수입하는 분들도 좀 더 다양하게 판을 키우고 장기적으로 봤으면 좋겠다. 지금의 투자배급사 문제는 문체부에서도 알겠지만 결국 독과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본이 되든 어떤 누가 되든 독과점은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양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이 꽃이다.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이 나와야 하는데 여전히 한국에선 빨강과 파랑이냐만 따진다. 정신적 스펙트럼도 다양하지 않고…."

이 지점에서 이명세 감독은 사라진 저널리즘의 문제도 짚었다. "독과점을 견제도 해주고 저예산 영화, 신인 감독들을 도와주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영화지들이 사라졌다"며 그는 "저널리즘 역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아홉 번째 장편을 준비 중이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고 현재 시나리오까지 나온 상태다. 이명세 감독은 "이번 단편이 작은 불꽃이 되길 소망한다"면서 "이명세라는 감독이 여전히 영화를 찍고 있다는 느낌을 관객 분들이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명세 전체관람가 유인영 김설진 양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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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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