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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아이 담임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어머님 기사 읽고 한 아이가 4학년으로 전학 온다고 하더라고요!"

(이전 기사 : "한번도 안 웃던 아이가 전학 와서 처음 웃었어요" )

전학 온 민수(가명)를 본 다른 학부모들이나 선생님들의 평가는 "굉장히 똑똑하고 말을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학 온 이유는 서울 학교에서 매우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민수 어머니는 이야기 도중 몸을 떨면서 울기도 했고, 저도 울면서 이야기를 받아적었습니다.

다음은 민수 어머니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애 데리고 병원에 가보세요"

민수는 2학년 때까지는 발랄하고 개구지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3학년 초 학부모 상담에서 담임선생님에게 들은 말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민수가 병원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어요. 분노조절장애인 것 같아요. 화를 너무 잘 내고 자기 말만 해요."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민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내린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아이가 말대답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는 "내가 말을 해도 안 들어줘요. '시끄러워. 조용히 해'라고 야단만 쳐요"라고 말했습니다.

민수는 소위 말하는 '말발이 센 아이'입니다. 언어 논리 지능점수가 145점으로 매우 높게 나왔고 보통 아이들이 쓰는 단어가 아닌 어른들이 쓰는 수준의 단어와 논리를 구사합니다.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성격이지요. 그런 아이가 선생님과 부딪혔을 거라고 나름대로 짐작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한 달 동안 담임선생님은 1주일에 2~3번씩 전화를 했습니다. 애 데리고 병원에 가봤냐고. 정말 집요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할 수 없이 5월에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정말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도움을 받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분노조절 장애가 아니고 경계성 ADHD였습니다. 216점부터 ADHD로 보는데 딱 215점이 나온 겁니다. 병원 4군데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곳에서 215점이 나왔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해서 결과를 이야기했더니 대뜸 "아닌데. 걔 분노조절 장애 맞는데. 어디 병원에서 검사받았어요? 의사가 누구예요?"라고 취조하듯이 묻더군요. 유명한 종합병원은 모두 다녀왔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담임은 분노조절 장애라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정말 황당했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민수는 ADHD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상태입니다. ADHD는 커피를 10잔 먹은 어른의 상태와 비슷합니다. 만 16세가 되면 대체로 가라앉기 때문에 병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힘들어한다면 제일 약한 약을 먹여봅시다"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으면 친구들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저도 투약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민수는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담임선생님에게 알리자 그다음부터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점검, 낙인... 숨 막히는 교실

민수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이 점검표였습니다. 15가지 항목(수업시간 점수, 뛰지 않기, 고운 말 쓰기 등)을 스스로 매일 O, X로 점검하고 친구들이 한 주 동안의 행동을 평가해주는 것입니다. 거기서 민수에게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본인은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들이 볼 때는 아닐 수 있겠지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게 있는데 다른 사람이 지적하니 더 힘들어했습니다.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고 담임선생님은 아이를 꾸중하고,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억울하다고 자기 얘기를 늘어놓고... 수업중간에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15가지 항목을 매일 자신이 점검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조원들이 고쳐야할 점을 써준다
▲ 점검표 15가지 항목을 매일 자신이 점검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조원들이 고쳐야할 점을 써준다
ⓒ 하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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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에 돌아온 아이의 얘기를 듣다 보면 저도 답답해져서 같이 울었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물어보았다가 "어머님이 아이를 얼마나 아세요?"라며 오히려 반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화가 나서 "왜 선생님한테 대들어서 일을 이렇게까지 만드냐" 라고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선생님 말만 믿는다며 화내고 속상해하면서 통곡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칭찬하기로 방향을 바꾸면 안 되겠냐고 제안을 했지만 나름의 교육관이 확고부동했습니다.

"민수는 타인의 지적을 통해 자기 잘못을 깨달아야 해요. 다른 아이들은 이걸 해서 다 좋아졌어요."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벽과 대화하는 것 같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의 특징은 아이들의 병명을 진단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용한 남자아이는 우울증, 활달한 여자아이는 ADHD, 말대답을 하는 아이는 인성이 잘 형성되지 않았다...이런 식이었지요. 그리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연락해서 병원에 가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한 학기가 지나서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엄마는 그렇게 나오는 담임선생님에게 단호하게 "우리 아이는 문제없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아이에게 약을 먹인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병원 다니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데 나도 동참했구나 하는 생각에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나 자신이 못나게 느껴졌습니다.

민수는 학교에 가기 싫어했습니다. 학교가 5분 거리인데도 지각 결석 조퇴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면 일부러 빼준 날도 있었습니다. 5월부터는 거식증이 나타나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아프고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다며 호흡을 어려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심리상담과 놀이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민수의 누나도 동생이 힘들어하는데 도와줄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죽고 싶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한 것을 제가 발견했습니다. 심장이 덜컹해서 누나도 심리상담을 받게 했습니다.

저도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몸은 너무나 피곤하고 괴로운데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또 힘들어서 집에 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해서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미주신경실신 증세(일종의 쇼크)가 심해져 몇 번씩 길을 가다 혼절하기도 했습니다.

민수 아빠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잠 못 들 때 같이 깨 있거나, 제가 바깥에 나갔다가 쓰러지지 않았는지 항상 확인해야 해서 굉장히 피곤해했고 위염도 심해졌습니다.

집안에서 웃음은 사라졌고 우리 가족은 시들시들 말라갔습니다.

"아이를 발달장애아 반으로 보내시죠"

지옥 같은 1년이 흐르고 민수는 4학년이 되었습니다. 4학년 담임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민수를 좀 더 이해해줄 수 있는 선생님이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3월 말부터 민수를 아예 음악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민수가 수업에 들어오면 힘드니까 수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음악수업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다 놀고 있었고 민수가 물건을 다 꺼내서 두드렸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하고 담임선생님은 "김민수, 그만해" 라고 아이를 제지했습니다.

민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물건마다 소리와 높낮이가 다르니까 소리를 맞추려고 조율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민수는 매일 새로운 뭔가를 생각해서 다르게 바꿨습니다. 팽이판을 재활용 용기를 이용해 이어붙여 트랙처럼 만들거나, 원래 가지고 있던 물건에 재활용 용기 등을 붙이거나 이어서 다른 신기한 장난감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걸 지루하다 여기고, 자기만의 생각을 꼭 만들어 보려고 하고, 궁금한 점은 실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민수의 그런 행동을 보고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처럼 통제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아이는 음악수업에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민수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음악수업인데... (민수는 지금도 피아노와 바이올린, 드럼을 꾸준히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 날 호출이 와서 아이 아빠와 함께 교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학부모들의 투서가 들어왔다며 "민수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아이가 좀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발달장애아 반으로 보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겁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능지수가 65 이하일 때 발달장애라 할 수 있는데, 민수는 신체 체육 지능만 평균 수치인 110이고, 나머지는 135~145 정도로 웃도는 아이였거든요.

우리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교장 선생님은 흐지부지 대화를 끝냈습니다.

모든 걸 아이 탓으로 돌리는 담임

아이는 4월쯤 갑자기 폭식을 시작했습니다. 너무 많이 먹고 음식에 집착을 해서 과자를 한 번 사면 2만 원 어치나 샀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를 좋아하지만 이건 못 줘요. 이건 내 목숨과도 같아요."
"먹어도 먹어도 허전해요..."
"내가 빨리 커져야 선생님이 나한테 함부로 하지 못하고 내 말도 들어줄 거예요. 내가 자기보다 작기 때문에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밥을 남기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많이 달라고 했습니다. 한 자리에서 냉면 네 그릇을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민수는 심리치료에서 담임선생님이 자기 얘기를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소리를 높여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만 자기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리치료 선생님은 '첫 번째는 들어주기, 두 번째는 공감해주기, 세 번째는 해결책 주기'를 하면 아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집에서는 아이와 그런 방법으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학교에만 가면 이것이 무너졌습니다. 남편과 함께 담임선생님을 만나 이 대화법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내가 당신 애만 봐요?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당신 애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 전체가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고 나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에요. 내가 은퇴를 다 하고 싶어요 라며 우리 앞에서 얼굴이 벌게져서 가슴을 쳐댔습니다. 더 이상 무얼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민수가 참을 수 없어 한 것은 모멸감이었습니다. 민수와 친구 간에 다툼이 벌어지면 담임선생님은 민수가 보는 앞에서 친구에게 귀엣말로 속삭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친구의 엄마에게 들어보니 담임선생님이 했던 말은 "쟤는 아프니까 네가 참아", "민수는 11월생이니까 너보다 어려. 니가 이해해" 였다고 합니다.

담임선생님은 다른 엄마들에게 민수 때문에 반 아이들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수시로 했습니다. 저는 그들 앞에서 죄인이 되었고 세상에서 고립되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비난이 다 저에게 쏟아지는 것만 같았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손 내밀어주는 곳도 없었습니다.

사실 민수네 반에는 소위 '기가 센 아이'들이 많이 있었고 항상 크고 작은 사건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말썽을 피워서 담임선생님이 모두 다 집으로 돌려보내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항의하는 학부모들에게 담임선생님은 "민수 때문에 말썽이 일어나서 아이들을 다 돌려보내게 되었다"고 말했답니다. 그동안 벼르고 있던 엄마들이 득달같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민수는 그날 병원 일정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해명해야겠다 싶어서 엄마들을 모아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소상히 털어놓았습니다. 엄마들과 대화해서 상황을 종합해보니 담임선생님이 그동안 무슨 일만 생기면 민수 탓으로 돌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이해해주는 엄마들도 생겼습니다.

"애들이 다 민수를 싫어해요"

그러던 어느 날 전학을 감행하게 된 계기가 발생했습니다. 다 같이 해야 하는 음악 평가에서 민수가 모둠에 빠져있었습니다. 어떻게 평가할 계획이냐고 물어보니 담임선생님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민수를 모둠에 넣어달라고 애들한테 사정을 해야 해요. 애들이 다 민수를 싫어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함께 온몸에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 민수가 여기서 저런 존재구나... 우리가 없어져야 저 사람이 만족하겠구나... 더 이상 이 곳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저는 "아닙니다. 그냥 저희 아이 평가하지 말아 주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수차례 전학시켜 달라고 했던 아이의 요구를 하루라도 빨리 들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이런 곳에 아이를 넣어두고 버티게 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웠습니다.

담임선생님과의 대화를 녹음한 것을 아이 아빠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을 듣고 난 아빠는 바로 전학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 있다니

여러 군데 학교를 알아보았습니다. 대안학교, 사립학교, 혁신학교 등 아이가 편할 만한 학교들을 알아보고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보고 눈 여겨두었던 OO초등학교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민수에게 각 학교의 사진을 보여주고 특성을 알려주었습니다.

민수는 OO초등학교가 좋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초록색이 많아서요. 곤충이 많아서 좋을 것 같아요. 친구들이 적으니까 선생님이 덜 바쁘셔서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아요."

거기는 멀어서 곤란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지만 아이는 OO초등학교가 좋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주기로 했습니다.

수업 시작 전에 축구를 하며 노는 아이들
 수업 시작 전에 축구를 하며 노는 아이들
ⓒ 하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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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문의를 하러 OO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기사에서 본 것과 같이 예쁘고 아담한 교정이 정다웠습니다.

7월 중순께였는데 선생님과 아이들이 학교 뒤 개울에서 물놀이하면서 수박을 먹고 있었습니다. 저희를 보더니 다들 인사를 하면서 "같이 와서 수박 좀 같이 드세요" 합니다. 배제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고 별세상에 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를 반겨주는 곳도 있구나... 상처 입은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아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습니다.

학교 뒤에 흐르는 맑은 개울. 송사리, 버들치 등이 산다
 학교 뒤에 흐르는 맑은 개울. 송사리, 버들치 등이 산다
ⓒ 하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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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이(민수의 누나)는 개울을 보더니 "삼다수 같아요" 합니다.

"도예실도 도서관도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학교가 귀여워요."
"아이들이 어쩜 이렇게 다 웃으면서 인사해줘요? 우리가 마치 여기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우리 학교 애들은 인사 안 하는데, 모르는 척하는데. 여기서는 볼 때마다 인사를 하네요."

학교 뒤 텃밭을 보더니

"너무 좋겠다. 예전에 학교에서 이거 너무 심고 싶었는데 심을 곳 없다고 못 심게 했어요."

그러더니 한마디 합니다.

"엄마. 이 학교는 일단 와 보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결정만 하면 되는 학교예요."

도서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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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아빠는 처음에 제가 기사를 보고 OO초등학교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기사는 미화해서 쓸 수 있고 다 사실은 아닐 거라고 말이지요.

이날 민수 아빠가 말했습니다. "여기 와야겠다."

아이와 소통하는 선생님

전학 온 후 담임선생님이 민수와 대화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수가 어떤 날은 협조적이고 어떤 날은 비협조적입니다. 어깃장을 부리고도 하구요.

그럴 때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민수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우리 반에는 규칙이 있어. 민수만 지키라는 규칙이 아니고 선생님도 그렇고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야.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이고 안 지켰을 때는 기준에 따라 벌칙을 받기도 해."

두어 번 정도는 민수가 선생님과 줄다리기를 했지만, 선생님은 흔들림이 없었고 한 번 정한 기준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민수가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여겼을 때는 자조치종을 물어보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결과에 따라 상벌을 정확하게 제시했으며 아이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이야기하면 "내가 그 부분을 몰랐네. 그 부분은 내가 사과할게. 다음부터는 네 말대로 해보자"라고 아이가 오해할 만한 상황에 대해서는 들어주고 마음을 읽어주고 대안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민수의 담임선생님뿐 아니라 OO초등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이렇게 대화를 합니다.

그 부분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것이 민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거든요. 큰 학교에서는 이것이 매우 힘든 일로 여겨집니다. 예전 담임선생님만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그곳에서는 학생 수도, 처리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았고 민수도 만만한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 애만 보는 게 아니다. 힘들다"란 것이 담임선생님의 대답이었고, 규칙이 없고 일관성이 없는 행동에 아이는 혼란스러워했습니다.

OO초등학교에 와서는 아이가 헷갈려하지 않고 금방 안정을 찾았습니다.

3일 만에 사라진 폭식증, 믿기 힘든 변화들

전학 오자마자 3일 만에 아이의 폭식증이 사라졌습니다. 먹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나누어주지 않던 아이가 학교에서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가족들과 나누어 먹겠다고 싸 들고 왔습니다. 아이가 내밀던 빨간 방울토마토. 우리 가족에게 그것은 그냥 토마토가 아니었습니다. 민수의 마음이었습니다.

1주일 만에 놀이치료를 종료했습니다. 3학년 때부터 1년 반 동안 월 3-400만 원씩 들여가면서 안 해 본 치료가 없었습니다. 놀이치료, 심리치료, 그룹심리치료...그러나 나아지지 않았고 학교에만 가면 도로아미타불이었습니다.

심리치료그룹의 아이가 울고 있는 걸 보고 민수가 위로해주었습니다. "너 너무 속상했겠다. 내가 가서 혼내줄까? 그런 말을 하다니. 걔네는 이렇게 귀한 애를 보지 못하다니..."
심리치료 선생님은 민수의 변화를 반갑게 받아들였습니다. OO초에서 담임선생님이 민수와 대화하는 과정을 얘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학교에서 하는 것이 심리치료 과정과 일치합니다. 민수는 더 이상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해서 심리상담과 그룹심리치료도 한 달 만에 종료했습니다. OO초로 전학 온 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교의 품에 안기다

예전 학교에서는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거나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과 학부모가 같이 의논하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예전에는 외로운 싸움을 했다면 이제는 선생님과 아이와 모두 함께 손잡고 가는 느낌입니다.

전학 온 후 등굣길에 저와 소소한 다툼이 생겨 우는 민수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반 친구들이 "민수다!" 하고 반갑게 다가오다가 민수가 울고 있으니 조용히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오더니 "우리 민수가 잘 우는 아이가 아닌데 왜 울었을까? 선생님이랑 채송화 보면서 얘기하자." 하면서 아이에게 공감을 해주며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 저 믿으시죠? 민수랑 얘기해볼게요. 가셔도 돼요" 하셨습니다.

'가라고 했다가 다시 데리러 오라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가는 길에 선생님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민수 마음 풀고 영어 수업 들으러 왔어요. 걱정 마세요. 엄마한테 어리광부린 거예요 ^^."

그 문자를 받고 나서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저에게도 많은 격려를 주셨습니다.

"2학기도 긴 여정이니 어머니 마음 잘 추스르셔요. 어머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민수도 행복하니까요. 이만하면 민수한테 정말 좋은 엄마세요."

민수와 함께 저도 빠르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민수가 화를 낼 때 담임선생님이 수업을 해야 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교감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민수가 왜 화가 났을까요?" 하며 얘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등교 시간이면 교감 선생님이 항상 교정을 쓸면서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주시는데 처음에는 민수가 쑥스러워서 모른 척했습니다. 지금은 인사도 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민수가 아파서 보건실에 누워있으니 교감 선생님이 "민수가 왜 아플까요?" 하면서 매실차를 타다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는 따듯한 품에서 관심과 사랑을 느끼며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른들과 담을 쌓았던 민수가 이제는 어른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차피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거짓말만 한다'며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모든 어른들을 적대시했던 민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놀이터에 가면 민수를 '인성 쓰레기', '분노조절 장애'라고 놀리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교실에서도 놀이터서도 반복되는 놀림에 민수는 화를 냈고 담임은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제지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특히 놀이터에서 놀림당하고 나면 하소연할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저도 저대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OO초등학교에는 그런 말을 쓰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민수가 친구에게 '인성 쓰레기'라는 말을 했다가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민수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민수 왜 안 와요? 친구들이 기다려요"라고 전화를 주십니다.

민수가 말합니다.

"여기서는 나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나랑 노는 게 즐거운 친구도 있고 내가 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아서 좋아요."

다시 공부를 시작한 아이

학업태도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공부를 해서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 필요가 없으니 공부를 안 할" 거라고 못을 박았었습니다. 그 좋아하던 책도 읽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학 와서 첫 주에 식물도감과 동물도감을 사달라고 하더니 학교에 책을 들고 가서 식물과 직접 비교하면서 관찰을 하더군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10월에는 '다독아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과의 관계, 학교에 신뢰가 생기니까 이제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민수가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을 때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항상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어왔으니까요. 예전 학교에서는 무조건 민수를 의심하고 보았습니다. 민수가 좀 어려운 수학시험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받았는데 다들 아이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연이겠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제 민수는 소리도 많이 지르지 않습니다. 전에는 "내가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요!"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제는 "소리 안 질러도 내 말 들어주니까 이제 소리 지를 필요가 없어요. 친구들이 내 얘기를 들어줘요"라고 합니다.

5분 앞 거리에 있던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등교 시간까지 일어나지 않던 아이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등교준비를 합니다. 민수는 방학이 싫대요. 심지어는 토, 일요일도 싫다고 합니다.

"나는 OO초등학교를 안 가고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절대 졸업 안할 거예요!"

"그 학교 실화냐?"

처음 전학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저러다 말겠지", "거기 가서도 적응 못 하면 어쩌려고. 전학이 능사가 아니야"라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민수의 변화를 보고 사람들이 많이 놀랍니다. 아이가 밝아진 것을 주변에서 다 느낍니다. 민수를 어릴 때부터 알았던 친구는 "전학 간 뒤에 민수가 다시 옛날처럼 된 것 같아요. 표정도 좋고"라고 말합니다.

올해 가평에 내린 첫눈. 일찍 등교한 민수가 눈놀이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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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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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나와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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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리랑 다슬기가 사는 개울이 흐르는 학교,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수박파티도 하는 학교, 체험학습으로 논에서 메뚜기를 잡는 학교, 첫눈이 오면 선생님과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눈싸움을 하는 학교'

OO초등학교 이야기를 들은 민수와 민경이의 친구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 학교 실화냐?"
"유토피아다."
"나도 가고 싶다."

아이를 믿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학부모들과 대화를 많이 하십니다. 특히 아픈 아이들이 있는 학부모들과 많이 공감해주시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아픈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것이 학교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음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들어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저한테도 주셨습니다. 실제 학교를 그렇게 이끌어가고 계시고요.

학교가 작다 보니 아이들의 이름과 성격을 대부분 알게 됩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이 친근합니다. 그래서인지 학부모들도 가족처럼 서로 이해해줍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배제와 고립이라는 것이 이곳에는 없습니다.

민수 아빠는 요즘 마음이 편해서 일에도 더 잘 집중된다고 하네요. 무엇을 해도 될 것 같은 편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민수와 제가 안정되니 민경이도 자기 학업에 더 잘 집중해서 성적이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학교가 한 가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저희를 보시면 아실 것 같아요.

아직 아이는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 중입니다. 아직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날이 가끔 있지만 이제 저는 더 이상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습니다.

"많이 힘들었지요? 민수도 가족들도 정말 잘하고 있어요. 잘 될 거예요."
"어떻게 다 잘할 수 있겠어요. 아이들은 지금 성장하는 과정이잖아요.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죠."

라고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학부모들, 선생님들이 곁에 있으니까요.

가장 큰 변화는 민수가 잘 해낼 거라고 믿게 된 제 자신입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아프기만 했던 마음이 이제는 즐겁고 기쁩니다. 앞으로 아이가 보여줄 멋진 변화를 생각하면 살짝 설레기조차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첫째아이 초등 2학년에 음성틱장애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저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경기도 가평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을에 있는 시골학교로 전학을 했구요.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아이는 놀랍게 변했고 저도 건강해졌습니다. 이 신기하고 행복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시골학교 일기를 연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태그:#시골학교, #ADHD, #공감학교,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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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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