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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다가오고 있다. 전국에서 59만여 명의 수험생들이 수능도 치렀다. 수능 후 읽어두면 좋을 책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봤다. 가벼우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텍스트가 좋을 것 같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어 교과서에 다룰 수 없었던 한국 단편소설 작가들이 있었다. 이태준, 홍명희, 이근영 등이 그렇다. 이태준의 문장은 그 서정성이 높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으며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에서 배우고 있는 텍스트 중에 하나다. <임꺽정>을 쓴 홍명희 역시 재평가 되는 작가 중에 한 명이다.

오세영,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청년사/2009>, 전체 847쪽.
 오세영,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청년사/2009>, 전체 8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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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 여전히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 카프 계열(사회주의 계열, '경향주의'라고도 부름)의 여러 소설 작가들은 우리에게 낯선 영역으로 머물러 있다. 특히 이근영의 경우가 그렇다. 1935년 금송아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것으로 알려졌고, 소작농의 착취과정이나 부폐해 가는 도시사회에서 번민하는 일상의 소시민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오세영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에는 <농우>가 실려 있다.

대학 시절 한설야의 <대동강>이라는 소설을 읽고 싶어 대학 도서관을 찾았는데, 대학원생이 아니고, 북한 소설이어서 대출이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연구 목적이 아니면 일반인이 읽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고 2008~2009년도의 이야기다. 여전히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일부의 금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세영은, 작가의 글에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소설 원작을 만화로 그렸다"면서 "만화가 문화의 시녀가 아니라 예술 장르의 당당한 주인이며, 세상에 나가 그런 행세를 해주길 바란다"(5쪽)며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전체 19편으로 구성된 월북 작가(14명)들의 작품 중 모두가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김유정의 <동백꽃>이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수능에도 단골 출제되는 지문인 만큼 언어영역 중 현대문학 파트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일 것이다. 반면에, <말>, <소>, <투계>를 쓴 안회남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과정 내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 있는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이라는 것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잠깐 언급한 것이 상식 수준으로 작가와 작품명을 훑어보고 지나가는 과정이 있었다. 예를 들어 <혈의누>는 이인직, <금수회의록>은 안국선,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최남선 등등 정리를 했던 상황이 떠오른다. 안회남은 바로 우리가 형광펜 죽죽 그어가며 외웠던 안국선의 외아들이다.

안회남은 1909년에 태어나 1944년에 기타규수 탄광에 끌려갔다가 해방 후에 돌아왔다. 귀국 후 좌익 계열의 문인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모양이다. 초기의 소설이 신변잡기적 소설이었다가 이후 징용 체험을 다룬 소설, 인민을 역사의 중심에 두는 계급주의적 가치관이 엿보이는 소설들을 썼다.

작가 오세영이 이번 책에서 만화로 그린 <말>, <소>, <투계> 중 말은 징용 체험을 다룬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일제가 지배하던 시절 고통 속에 허덕이는 민중이 있는가 반면, 그걸 기회로 자신의 이익을 모략하는 사람을 대비하여 그림으로써, 우리 민중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일본보다 오히려 그 시대에 편승한 부역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자문을 남기는 소설이기도 했다.           

책, 오월의 훈풍에서 (254~255쪽)
 책, 오월의 훈풍에서 (254~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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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편의 소설 중, 박태원의 <오월의 훈풍>이 기억에 남는다. 오월의 훈풍의 주요 줄거리는, 주인공 은식이 열 세 살 어린시절, 같은 동네에 사는 기순의 이마에 실수로 상처를 낸다. 이후 주위 사람에게 기순은 생채기 때문에 좋은 곳으로 시집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고, 은식은 고민하다 나중에 크면 기순과 결혼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돌아온 고향에서 기순이 연초 공장을 다니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기순의 삶이 불행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것과 달리 기순의 삶은 오월의 향기로운 훈풍처럼 행복해 보였다는 내용이다. 박태원의 소설은 특별한 사건 없이 일상적인 삶의 과정, 떠오르는 생각을 그려내고 있어, 간혹 평론가들 중에는 읽고 나서 남는 것이 없다는 혹평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오세영은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시인은 행복은 '바위 틈새 같은 데에/ 나무 구멍 같은 데에// 행복은 아기자기/ 숨겨져 있을 거야'(허영자, <행복>)라고 노래한다. 그것은 '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앞에, 사소한 일상적 삶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236쪽)며 자신의 감정을 술회하기도 했다.

이 책의 평론을 쓴 박인하는, "원작을 옮기는 작업을 번안이라고 하는데, 소설의 문장을 다이제스트 한 것이 아니라, 생생한 시나리오로 삼아 만화로 재창조 한 것이다", "문학적 텍스트가 만화적 텍스트로 효과적으로 전환된 모범적 사례다"(835~836쪽)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책을 덮고 나서, 텍스트간 융합이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생각의 융합이라는 말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다. 장르를 하나만 고집하는 시대는 지났다.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장르와 융합하여 그 내용에 확장성을 가져올 때 우리의 사고는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그 첫 시점이 오세영의 책을 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덧붙이는 글 | 오세영,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청년사/2009>, 전체 847쪽. 값 30,000원



오세영 -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오세영 지음, 청년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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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세영, #한국단편소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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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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