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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들은 아버지한테 "왜 아버지가 밥을 해?" 하고 묻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 할아버지네에 나들이를 갈 적에 "왜 할머니가 밥을 해?" 하고 묻지도 않아요.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아버지이자 사내인 제가 밥을 합니다. 빨래도 그렇고, 비질이나 걸레질도 그렇지요. 이러면서 아이들이 밥짓기를 거들고, 빨래나 비질이나 걸레질도 아이들이 함께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버지랑 같이 김치를 담급니다. 나무를 톱으로 켜서 뭔가를 짤 적에도 다 같이 해요. 힘을 써야 하는 일이라 해서 사내만 하지 않습니다. 집안일이기에 사내가 멀리할 까닭이 없습니다. 바느질도 뜨개질도 다 함께 둘러앉아서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이상해!"라든지 "아리송해!" 같은 말을 외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없네요.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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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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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엄마의 여동생이지만
우리 엄마랑 하나도 닮지 않았어.
내가 물었어.
"이모, 이모, 왜 화장 안 해? 여자인데. 이상해."
"화장 안 한 얼굴이 예뻐서." (2쪽)

나는 다시 물었어.
"이모, 이모, 머리가 왜 그렇게 짧아? 남자 같아. 이상해."
"난 짧은 게 좋아. 바다에 들어갈 때도 편하고."
우리 이모는 수중 카메라맨이야. (3쪽)

그림책 <이상해!>(고래이야기 펴냄)를 폅니다. 이 그림책은 얼굴에 화장가루를 안 바르고, 머리카락을 짧게 치며, 바닷속에서 헤엄치며 사진을 찍는 '이모'가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저희 어머니하고 달라도 너무 다른 이모를 보면서 자꾸자꾸 묻습니다. 이러면서 늘 토를 달지요. "이상해!" 하고요. 그런데요, 무엇이 아리송할까요? '이상하다'란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사전을 뒤적여서 '이상하다(異常-)'를 찾아봅니다. 한자말입니다. 뜻은 세 가지 나오고, "1.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다 2.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 3.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라 합니다.

첫째 뜻을 보니 '정상하고 다르다'라 하는데, '정상(正常)'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라 하는군요. '특별(特別)'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뜻한대요. 그러니 첫째 뜻은 "여느 자리하고 가를 만큼 다르지 않고 제대로"라는 소리입니다. 둘째 뜻은 '색다르다(色-)'라 하고, 이는 "동일한 종류에 속하는 보통의 것과 다른 특색이 있다"를 가리킨대요. 셋째 뜻은 "믿을 수 없거나 알 수 없다"를 가리킨다는군요.

하나하나 살피면 '이상하다!'고 할 적에는 '다르다!'고 말하는 셈이고, 때로는 '제대로가 아니다(정상이 아니다)'라 하는 셈입니다.

이모는 여러 물고기들에 대해 얘기해 주었어.
"보렴, 얘는 흰동가리란다. 흰동가리는 어릴 땐 모두 남자야."
"뭐라고?"
"그중에서 가장 크게 자란 녀석이 여자가 돼."
"뭐라고? 이상해!"

그때 가장 조그만 흰동가리가 나에게 말을 하지 뭐야.
"너도 크면 여자가 될 수 있어."
"뭐라고? 아냐. 아냐. 나는 아무리 커도 여자가 될 수 없어.
그러자 흰동가리가 휘익 재주를 넘고는 말했지.
"뭐라고? 이상해!" (9∼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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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이상해!>에 나오는 이모는 아이를 데리고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얼결에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가는데, 바닷속에서 온갖 물고기를 만나요. 아이는 어느새 물고기하고 말을 섞는대요. 그리고 바다에서 만나는 물고기마다 아이를 보며 "이상해!" 하고 외친대요.

바다에서는 오히려 아이가 "이상해!" 소리를 들어요. 아이는 물고기한테서 "이상해!"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 줄어듭니다. 할 말이 없어요. 아이는 그동안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보거나 들은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머리에 심었는데, 이러한 생각이 아이로서는 뜻밖에도 "이상해!" 소리를 들을 만한 줄 처음으로 느낍니다.

사회의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또는 선입관이나 편견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처음부터 사회의식이나 선입관이나 편견이 없었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에서 차츰차츰 사회의식이나 선입관이나 편견을 쌓았다고 느껴요.

자, 생각해 봐요. 여자라면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할까요? 여자라면 꼭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야 할까요? 여자라면 어김없이 치마를 둘러야 할까요? 여자라면 집에서 부엌을 지키며 밥만 해야 하나요? 여자라면 집안을 쓸고 닦고 치우는 일을 도맡아야 하나요?

남자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남자라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면 안 될까요? 남자라면 치마를 두르면 안 될까요? 남자라면 부엌에는 코빼기도 안 비추어야 할까요? 남자라면 빗자루도 걸레도 안 만져야 할까요?

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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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주 맛있는 돈가스를 해 주었어.
아기를 업고 말이야. (31쪽)

이모하고 바닷속을 한참 누비던 아이가 이모네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밥상에 둘러앉습니다. 이모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모부가 아기를 업고서 맛난 밥을 차려 줍니다. 자, 아이는 이모부한테 한 마디를 하려나요? 아이는 아직도 이모나 이모부한테 "이상해!"나 "아리송해!" 같은 말을 하려나요?

아니면 이제부터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또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새로운 마음을 품으면서, 함께 삶을 사랑스레 짓는 슬기로운 꿈을 품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림책 <이상해!>를 아이들하고 읽으면서 이 아이들을 업고서 밥을 하던 지난날을 즐겁게 돌아봅니다. 참말로 저는 아이들을 업고 안으면서 밥을 지었고, 아이들을 도맡아 입히고 씻기고 재웠어요.

둘레에서는 다들 저를 보며 "이상해!" 하고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빙그레 웃으면서 "누구나 밥을 하면 돼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즐겁게 밥을 하고 살림을 가꾸면 돼요. 함께 짓고 함께 가꾸면 함께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돼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상해!>(나카야마 치나쓰 글 / 야마시타 유조 그림 / 고향옥 옮김 / 고래이야기 / 2009.10.25. / 9500원)



이상해!

나카야마 치나츠 지음, 야마시타 유조 그림, 고향옥 옮김, 고래이야기(2009)


태그:#이상해, #그림책, #성평등, #어린이책,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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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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