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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몇 주 되지 않지만 힘을 보태겠습니다."
"임시주총에 참석 못해 아쉽지만 응원하겠습니다."

네이버카페 '바른투자연구소'에 달리고 있는 댓글들이다. 댓글을 다는 이들은 대개 200주에서 600주 정도를 가진 소액주주들이다. 이들은 적지만 가지고 있는 의결권을 십시일반 모아, 소액주주모임 대표격인 신명철(42)씨에게 보내고 있다.

신씨는 소액주주들 위임장을 받아, 오는 29일 열릴 임시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의 힘을 보여줄 '짱돌'로 쓸 생각이다.

소액주주들, 60년 역사 대한방직에 뿔나다

소액주주들이 짱돌을 모아, 던지려는 곳은 대한방직이다. 대한방직은 1953년 설립된 국내 대표 섬유업체다. 언론에 이름이 크게 오르내리는 곳은 아니지만 한때 재벌 소리도 들었다. 1950년대 재계 서열 5위에 올랐던 대한그룹 창업주 설경동 전 회장이 만든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직산업의 쇠락과 IMF 당시 한스종금(구 아세아종금) 사태로 몇 차례 위기를 맞이하며 재계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창업주의 자손이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 대한방직은 창업주 설경동 전 회장의 장남인 설원식씨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대한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그 이후 설원식씨의 장남 설범씨가 대한방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표적인 3세 경영이다.

3세 경영이 문제가 아니다. 3세이자 최대주주인 설범 회장이 배임혐의로 처벌받고 횡령 의혹도 받고 있지만 설 회장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하는 회사와 경영진이 더 문제라는 게 소액주주들의 입장이다.

주주들이 항의해야 15억 원 입금 확인한 대한방직

재벌 3세인 설범 회장은 지난 2005년 회사 자산인 대구 월배공장을 애경 PFV-1(피에프브이원)에 매각했다. 그 과정에서 15억 원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설 회장은 2009년 4월 유죄선고를 받았다.

설범 회장은 소액주주들로부터 횡령 의혹도 받고 있다. 2009년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초범이고 범행 자백 후 잘못을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청탁의 대가를 요구한 바가 없는 점, 수재액 중 일부를 회사를 위해 사용하였고 그 전액을 회사에 반환한 점'을 양형 기준으로 삼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과 추징금 15억 원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에 따르면 설범 회장은 2009년 4월 이전에 리베이트로 받은 15억 원을 회사에 반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소액 주주들이 사업보고서, 재무제표, 손익계산서 등을  분석해본 결과, 설범 회장이 반환했다던 15억 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주주들이 항의하자 대한방직은 지난 3월 14일 "설범 회장은 당시 문제가 됐던 15억 원을 2017년 3월13일 회사로 입금했다"라고 공시했다. 사실상 2009년 4월 판결 이전에 반환했다고 재판부에 말했던 15억 원이 사실상 8년 뒤인 2017년에서야 회사로 들어온 것이다.

이에 대해 소액주주들은 "회사에 입금을 한 후 통장사본이나 입금 관련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 뒤, (돈을) 다시 인출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에 따르면 지난 9월 25일 대한방직 계열사 임원 중 한 명은 소액주주운동가 강기혁씨 공판 증인 신문에서 "15억을 입금했다가 추징금을 내기 위해 인출했다"라고 증언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설 회장은 리베이트 금액 15억 원을 입금했다가 추징금을 내려고 입금한 돈을 빼내 납부한 것으로 횡령으로 볼 여지가 있다. 소액주주들은 이런 의혹들을 모아 설 회장을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제2의 장하성, 김상조...중소기업 내 소액주주운동 바람

대한방직 소액주주임시대표 신명철씨
▲ 대한방직 소액주주 임시대표 신명철씨 대한방직 소액주주임시대표 신명철씨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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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회사는 알지 못했거나 알고도 방치했다는 의미다. 감시·감독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대한방직 소액주주 임시대표격인 신명철씨는 2009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액주주 추천 감사 선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10월 27일 대한방직은 회사 자산이었던 전주공장 부지 21만6463㎡를 1980억 원에 매각했다. 토지매각 대금을 어떻게 쓰느냐가 이 회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라며 "대주주 영향을 받지 않는 감사 존재 자체만으로도 분명 감시, 감독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씨는 고군분투 중이다.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앉자마자 약을 먹었다. 아픈 목을 보호하는 약이다. 약기운으로 버티는 이유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전화를 걸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위해서다.

"회사도 위임장 받으러 배타고 가야하는 오지까지 찾아갔다고 들었다.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노력은 해봐야 한다."

후배들과 2명씩 팀을 짜서 수도권에 사는 주주들만 만나는데도 힘겹다. 하지만 임시주주총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돌아다녀야 한다.

"이 일을 하면서 가족도 제대로 못 챙기고 체력도 달리고 힘들다"라고 말하며 웃는 신씨. 그럼에도 그가 이 힘든 싸움을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그는 24살 때 저금 50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70만 원이었던 SK텔레콤 주식이 3개월 만에 120만 원이 되는 것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이후부터 주식 투자자의 길을 걷게 됐다.

18년 주식 투자 경력, 100억 자산가가 됐지만 좌절도 많이 했다. 저평가돼있는 중소기업을 분석해, 미래를 보고 투자하면 돈을 날리기 일쑤였다. 폭발적인 이익이 나야하는 시점에 중소기업 대주주이자 경영자들이 이익이 날 만한 사업과 권리를 가족회사로 넘겼다. 실적이 좋을 것 같으면 횡령이 터졌다. 주가가 폭락하면 증여를 하거나 대주주가 주식을 대량 사들여, 경영권을 방어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투자를 할 수가 없다. 대부분 소액주주들은 그런 일 당하면 '에이 더럽다'하면서 주식 팔고 나간다."

대기업들은 언론, 시민단체를 비롯해 보는 눈이 많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만 해도 학자로서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었지만 중소기업들은 감시 대상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분노하던 신씨는 2006년 소액주주운동을 하는 강기혁씨를 만났다. 그러면서 가치투자, 소액주주운동, 주주로서의 권리 등을 생각하게 됐다. 제2의 장하성, 김상조를 꿈꾸며 소액주주운동에 발을 들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겠지만, 계속 한다"

오는 29일 대한방직 임시주주총회에서는 감사선임을 둘러싼 대주주와 소액주주들간의 전쟁이 예고된 상태다. 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은 각각 원하는 감사 후보를 추천해놓은 상황이다.

투자 전략이나 신사업 진출 등 기업경영과 관련된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이사회는 주주총회를 통해 구성된다. 주주들이 1주당 1표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해 이사들을 선출한다. 그러다보니 이사 선임에 소액주주보다는 대주주의 입김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사회를 관리·감시하는 게 감사다. 감사는 회계장부 등을 검토해 법인의 재산과 이사의 업무집행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으려고 감사 선임은 이사 선임처럼 1주당 1표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있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그들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대주주와 그의 가족 등이 지분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감사 선임에서는 3%만큼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 감사선임 만큼은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와 싸워 볼 만하다.

지난 3월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 모습
▲ 지난 3월 열린 대한방직 주주총회 지난 3월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 모습
ⓒ 대한방직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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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녹록치 않다. 신씨 자신도 이 싸움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한다. 지난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로만 41%의 우호지분을 모았지만 소액주주 추천 사내이사 선임에 실패했다. 그나마 대주주측 감사 선임은 부결시켜, 오는 29일 임시주총에서 감사 선임을 둘러싸고 승부를 벌일 계획이다.

"대한방직이 주주·경영진 상생하는 1호 기업 되길"

"현 구조에서는 대주주들이 볼 때 소액주주들은 잠깐 있다가 떠날 철새에 가깝다. 소액주주들도 대주주를 '상속이나 신경 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런 인식으로는 윈윈 할 수 없다."

신씨는 "싸우자는 게 아니다. 회사도 살아야 나도 산다"라고 강조했다. 경영권을 뺏으려고 소액주주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일각의 오해에 대한 대답이자 대한방직에 전하고픈 이야기다.

그는 8.86% 지분을 가지고 있다. 설범 회장 다음으로 많이 가졌다. 2015년 대한방직 주식을 살 당시 경영참여공시를 했다. 경영참여공시를 한 사람은 거래를 하면 일일이 공시해야 한다. 소위 '먹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용히 팔 수도 없는데다가 대량으로 팔지도 못 한다. 지난 23일 대한방직의 하루 주식 거래량은 578주였다. 신씨는 약 8만주를 가지고 있다. 주식이 올라도 대량으로 조용히 팔지 못하기 때문에 주가를 잠깐 띄워도 이득을 볼 만 한 게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대한방직에게 '짱돌'을 계속 던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주주와 함께 했을 때, 어려웠던 회사가 좋아지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사실상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대한민국 1호 기업이 됐으면 한다."


태그:#대한방직, #소액주주운동, #김상조, #장하성, #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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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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