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수는 '축구 천재',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로 불렸다. 1990년대 K리그에 익숙하지 않았던 고졸 신인(1996년 수원 삼성 입단)이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경험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였던 멕시코전에서 보여준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은 이동국의 한방 못지않게 축구팬들을 설레게 했다.

'고데로 트리오'를 기억하는가. 2001년 수원 삼성의 공격을 이끌었던 고종수와 데니스, 산드로는 K리그를 평정했다. 고종수는 '타고났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왼발 킥과 천재적인 축구 센스를 자랑하며 10골 6도움을 올렸다. 데니스는 빠른 발과 유연한 드리블 능력을 자랑하며 7골 3도움을 기록했고, '스트라이커' 산드로는 17골을 몰아치며 '주포'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는 도무지 막을 수 없었던 공포의 조합 중심에 고종수가 있었다.

고종수는 2001년 1월 3일 한-일 월드컵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열린 한-일 올스타와 세계 올스타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왼발 프리킥으로 당대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는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고종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데뷔전이었던 2001년 1월 24일 칼스버그컵(홍콩) 노르웨이와 경기에서도 첫 득점을 기록했다. 파라과이전에서도 2경기 연속 골맛을 봤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었지만, 가장 돋보이는 선수였던 고종수. 히딩크의 첫 황태자 자리에 오른 것은 당연했다.

당시에는 고종수가 2002 한-일 월드컵 중심에 서지 못할 것이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K리그는 물론 대표팀에서도 최고의 선수였고,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1998 프랑스 월드컵) 증명하지 않았던가. 이벤트전이었지만, 고종수는 한-일 올스타와 세계 올스타의 경기에서도 가장 돋보인 선수였다.

그러나 결말은 비극적이었다. 고종수는 소속팀과 청소년, 올림픽, 국가대표팀 등을 쉴 새 없이 오가면서, 몸에 무리가 왔다. 부상을 숨기고, 아픔을 참고 뛰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진 축구 풍토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했다. 부상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악성 루머까지 겹치면서, 심적으로도 무너졌다.

더 이상 화려한 시기는 없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2003년 J리그(일본) 진출을 선언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부상과 뜬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소속팀 없이 오랜 기간을 보내기도 했다. 2007년에 '스승' 김호가 지휘하던 대전 시티즌에서 부활의 가능성을 남겼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 2009년 2월, 고종수는 31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며, 일찍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앙팡 테리블' 고종수, 선수 시절의 설움 지도자로 날릴까

고종수는 선수 생활의 미련이 남을 법도 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처럼 개성이 넘치고, 천재적인 선수들을 제대로 성장시킬 수 있는 지도자의 꿈만 바라봤다. 그는 2011년 매탄고(수원 U-18) 코치를 시작으로 수원의 트레이너를 거쳤고, 최근에는 1군 코치로 활약했다.

이름값을 앞세워 조금 더 빠르게 내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도자 자격증이 없고, 경험이 전무해도 국가대표 코치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축구계가 아니던가. 그러나 고종수는 차근차근 단계를 거쳤다.

24일 오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고종수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불태웠던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했다. K리그 챌린지 소속의 대전은 24일 오후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신임 감독에 고종수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를 선임했다"라고 발표했다. 대전은 "이번 감독 영입은 지역 축구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결과"라면서 "여러 후보군을 두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고종수 감독을 선임했다"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김호 전 감독과 재회가 흥미롭다. 김호는 현 대전의 대표이사다. 그는 1996년 수원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며 고종수를 발탁했다. K리그 최고의 재능에서 선수로 성장시켰고, 수원의 황금기를 함께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2007년 대전에서도 '애제자'와 함께 플레이오프 진출이란 기적을 써냈다.  

물론 고종수의 감독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대전은 한때 축구 도시라 불리기도 했지만, 시민구단의 열악한 환경 탓에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 올 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김호 대표이사의 두터운 신뢰와 지원이라면, 고종수호는 성장하지 않을까.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지 않은가. 고종수 감독이 짧고 강렬했던 선수 시절과 달리 끊임없이 빛나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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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 김호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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