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고종수(39)가 축구 감독으로 변신한다.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 대전 시티즌(대표이사 김호)은 "고종수 수원삼성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24일 밝혔다.

지난 2009년 대전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던 고종수는 은퇴 이후 매탄고등학교와 수원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왔다.

'무서운 아이'에서 '풍운아'로

축구선수 고종수 1998년 10월 1일,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던 수원 삼성 시절 고종수 선수.

▲ 축구선수 고종수 1998년 10월 1일,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던 수원 삼성 시절 고종수 선수. ⓒ 연합뉴스


고종수는 희대의 재능을 갖춘 선수였다.

금호고 시절부터 발군의 드리블 실력과 천재적인 왼발 슛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당시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계약금 1억 원을 받고 수원 삼성에 입단했고, 프로데뷔 3년차인 1998년에는 수원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MVP에 오르는 기염까지 토했다. 그 당시 고종수의 애칭은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무서운 아이)'이었다.

불과 20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 프로축구 무대를 평정한 그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모여 있는 국가대표팀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고종수는 1997년 1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최연소 A매치 득점 기록(18세 3개월)을 세웠고, 19세의 나이에 출전한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며 국내 축구팬들을 다시금 놀라게 했다.

드리블, 패스, 시야 등 수 많은 장점을 갖췄던 고종수의 주무기는 단연 왼발 프리킥. 특히 2001년 열린 올스타전에서 당대 최고의 수문장 칠라베르트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왼발 프리킥은 아직까지도 축구팬들에게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고종수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탈락하면서 그의 길고 긴 방황이 시작된 것.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TV로 지켜봐야 했던 고종수는 2003년 소속팀(수원)과의 불화로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해 재기에 나섰지만, 감독과의 불화로 6개월 만에 방출되는 아픔을 맛봤다. 

고종수는 2004년 친정팀 수원으로 컴백했지만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일삼다 1년 만에 팀에서 방출됐고, 이후 전남과 대전에서 어렵사리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끝내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31세의 이른 나이에 축구화를 벗었다.

'감독' 고종수가 기대된다

타고난 재능에 비해 절제와 노력 부족으로 축구인생의 오점을 남긴 고종수, 그는 현역 은퇴 후 축구팬들의 뇌리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고종수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 건 지난 2011년 1월이었다. 당시 수원 윤성효 감독의 부름을 받고 '수원 U-18팀' 매탄고의 코치로 부임한 고종수는 그해 여름 수원의 트레이너 코치직을 맡은 데 이어 2013년엔 서정원 감독의 제안을 받고 수원 코치로 선임되는 기회까지 얻었다.

코치로 변신한 고종수는 더 이상 '게으른 천재'가 아니었다. 자신을 믿어준 서정원 감독의 곁을 온전히 보필했고, 염기훈, 권창훈 등에게 왼발 킥 비법을 전수하는 등 소속팀 선수들의 성장세를 이끌었다.

코치로 재기에 성공한 고종수가 이번엔 '은사' 김호 대표이사로부터 감독직이라는 큰 선물을 받게 됐다.

수원 시절(1996~1998) 감독으로서 고종수의 천재성을 이끌어냈던 김호 대표이사는 "고종수 감독과 내가 합심한다면 대전을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고 감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고종수 감독이 맡게 될 대전 시티즌은 올 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 10위를 기록하며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축구인생을 보낸 고종수 감독이 2018 시즌 '꼴찌' 대전의 상승세를 이끌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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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 대전 대전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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