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래방에서 부르는 곡에 대한 저작권료에는 익숙하지만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 때는 돈을 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은 공짜로 빌려보아도 아무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이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가 많아졌다.

월간 잡지 <어린이와 문학>(주간 오시은)에 대여저작권에 대한 법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자 명단을 싣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6월에 창립된 '어린이청소년책 작가연대(아래 작가연대, 운영위원장 임정자)' 산하기구인 저작권위원회가 대여저작권을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을 서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저작권위원장을 맡았다.

작가가 글을 쓴 대가로 얻는 것이 인세다. 인세는 서점에서 책이 판매되어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대출되어 읽히는 책이 많아질수록 서점에서 판매가 안 된다. 작가 수입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어린이청소년독자를 위한 책을 써서 출판을 하면 대부분 계약금으로 1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말은 계약금인데 인세를 당겨서 미리 받는 것이다. 요즈음은 초판도 다 팔리지 않는 책이 대부분이다. 초판을 1천부 정도 밖에 안 찍으니 계약금이 받는 돈의 전부인 경우도 많다.

책을 내는 데 3~4년이 걸리지만 초판이 다 안 팔리면 수익은 100만 원에 불과한 거다. '그런 작가를 뭐 하러 하느냐?'는 소리를 요즘 더 많이 듣는다. 내 둘레에 작가만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글을 쓴다. 책이 안 팔리니 내주려는 출판사도 적어졌다. 어렵게 낸 책을 지역도서관이나 어린이 시설에 기증하는 경우도 많다.

'작가와의 만남'에 초대되어 가보면 내 책을 읽은 독자는 여전히 많다. 그런데 다들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고 한다. 책을 읽은 독자는 많은데 나에게 돈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많이 읽히는 작품을 써도 작가는 굶어죽는다'라는 동료작가들 푸념은 결코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요즘 우리 출판계는 정말 심각하다.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도서관에서 책이 대출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이 예전에는 기쁘기만 한 일이었다. 그런데 도서관이 많아지면서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대출 횟수가 많아지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는 게 대다수 작가들 생각이다.

많은 문화 선진국들이 도서에도 대여저작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저작권법에는, '제21조에 저작자는 판매용 음반이나 판매용 프로그램을 영리를 목적으로 대여할 권리를 가진다'로만 정해놓았다. 음반과 프로그램에 한해서만 대여권을 허락하고 있다. 여기에 판매용 도서도 추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난관이 많다. '노래방 곡과 도서관 책 대출이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다르지 않다'고 하면 '작가이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다'라거나, '책을 빌려 볼 때마다 작가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면 도서관이 망하고 말 것이다'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작가들은 숨이 턱 막힌다고들 한다. 개별 도서관이나 빌려보는 사람이 돈을 내는 것으로 오해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국가 정책의 문제다.

ⓒ pixabay.com

관련사진보기


지난 9월부터 작가연대 작가들이 공공도서관 대출현황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든 실태조사가 우선이니까. 도서관에 직접 방문해서 물어보는 방법, 대출현황을 공개하는 도서관에 접속해서 검색하는 방법, 전화로 물어보는 방법, 도서관 게시판에 게시글로 물어보는 방법, 정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하는 방법 등으로 각자 선택해서 진행해 보았다.

정제광 작가는 살고 있는 지역에 도서관을 방문해서 자기 책이 얼마나 대출되었는지 알아보았다. "대출 업무 처리를 전산으로 하고 있으니 작가가 물어보면 대출내역을 그 자리에서 바로 알려주기는 하지만 도서관마다 물어보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이병승 작가는 집 근처에 있는 광진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대출현황을 검색해 보았다. "모든 도서관에 대출현황 게시판이 있는 것은 아니고, 도서관마다 회원가입을 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시도해보는 작가는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임근희 작가는 도서관 묻고 답하기 게시판에 질문을 남겨서 답글을 받는 방식으로 알아보았다. "게시판 답글로 쉽게 알 수는 있지만 모든 도서관마다 글을 올리고 답글을 챙겨 봐야 하니 너무 번거롭다"고 했다.

김해우 작가는 도서관에 전화를 해서 대출현황을 물어보았다. "바로 알려주기는 하지만 같은 책이라도 여러 권 보유하고 있으면 관리번호가 달라서 각각 물어봐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 방식으로 알아보려면 그 도서관이 어떤 책을 몇 권씩 보유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할 것 같다.

정부 정보공개사이트에 물어본 김리라 작가는 "답변을 하려면 결국 개별 도서관에서 대출 자료를 받아야하니 단계만 복잡해질 것"이라고 했다.

정란희 작가는 어떤 도서관에 대출현황을 물어보았다가 "돈만 밝히는 사람 취급으로 비아냥거리는 반응에 마음이 무척 상했다"고 했다. 그래도 작가가 살고 있는 안양 석수도서관에서 안양시 공공도서관 열 곳에서 대출된 자료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었다고. "공공도서관이 모두 전산 처리를 하고 있으니 전국을 한 네트워크로 연결해 전국 대출 현황을 한 번에 알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먹고 살 수 없으니 아무도 작가가 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박윤우 작가 말에 작가들은 문학이 없어져 버리는 상상도 가능하다고 걱정을 했다.

"공공도서관이란 공공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세운 것이므로 책을 읽어서 공공이 얻는 이익에 대해서는 국가가 작가에게 보상해야 적절한 공공정책"이라는 김소연 작가 말에 모든 작가가 크게 공감했다.

서울에 자리 잡은 어떤 도서관이 분기별로 집계한 대출현황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회가 넘게 대출된 책이 열 권도 넘었다. 분기별 20회를 1년으로 치면 80여회이고, 여기에 전국공공도서관 수를 곱하면 어마어마한 대출 횟수가 나온다. 정란희 작가도 안양지역 도서관에서 자기 책이 5천 번 가까이 대출된 것을 확인했다.

그 수가 서점 판매라면 출판계가 불황이라는 말도, 작가들이 생계를 위협받는다는 말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책 판매 부진이나 작가 수입 감소에 공공도서관이 직접 영향을 준 것은 아니겠지만 전혀 연관이 없다고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공공도서관을 통해서 공공이 책을 읽고 이익을 보았다면 그 이익을 제공한 책을 쓴 작가와 만든 출판사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야 진정 공공을 위한 이익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개별 도서관이 대출되는 책마다 작가를 찾아서 저작료를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국에서 대출된 자료를 하나로 모으는 네트워크를 만든 다음, 국가기관이나 공인된 작가단체가 대리해서 저작자에게 지급하면 못할 것도 없다. 이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저작물에 대한 보상금을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 등을 통해서 대리 지급하는 방식과 같다.

작가가 대출현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권리문제만이 아니다.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도서관은 누구를 초대해야할지 정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작가도 자기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도 모르는 독자 아닌 독자를 만나러 가는 막연함이 있다.

특별히 자기 책이 많이 대출된 도서관을 알게 된다면 초대하지 않아도 가고 싶을 것이다. 독자 또한 읽지도 않은 책을 쓴 작가를 만나는 것과 읽은 책을 쓴 작가를 만나는 것은 공감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작가들이 도서관대출현황을 알아야하는 가장 큰 까닭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작가연대 작가들은 다음 작업으로 책 몇 권을 지정해 전국도서관에서 얼마나 대출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해보려 한다. 정확하게 상황을 알아야 대여저작권을 바로 세우는 범위와 방식을 더 구체화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일을 하면서 '누군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타인이 불행해져야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한 공동체가 아니다'라는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만약 우리 작가들이 앞장선 대여저작권이 공공이 누려야할 이익을 해치는 것이라면, 작가들 행복을 위해서 공공이 불행해지는 일이라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이다.


태그:#대여저작권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 동화도 쓰고, 시, 동시도 쓰고, 역사책도 씁니다. 낮고, 작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 곁에 서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