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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레임이 있다. 동해, 서해, 남해에서도 볼 수 없는 청명한 바다. 에메랄드 빛 투명함 앞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환호에는 가식이 없다. 원시림 곶자왈이 주는 신비로움과 탁 트인 하늘. 맑은 날 제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라산의 이목구비. 나는 제주에 와서야 처음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슴 시림이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천혜의 자연 아래에 묻힌 수 만 개의 세계, 수 만 개의 생명. 제주 4·3(이하 4·3)을 알게 된 후부터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울 수록 더 가슴이 시리다.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기조로 제주도 사회에 밀착한 예술 활동을 지향(전시 서문)"하는 제주비엔날레2017 투어리즘에서 4·3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 70여 년 전 제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가족과 친척, 한 마을 이웃을 한꺼번에 묻은 땅을 딛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삶은 어떤 의미일까. 이주민들의 제주 정착에 가장 큰 장애 요소기도 한 토박이 도민들의 배타성은 '육지것들' 입장에서는 겪을 때마다 당황스럽고, 서운한 일이다.

하지만 제주 사람 입장에서는 일상을 파괴하는 안 좋은 것들은 모두 육지에서 왔다. 자기만 아는 얌체도, 거짓말 잘하는 사기꾼도, 땅 장사하는 투기꾼도, 군인도, '빨갱이'라는 말도. 숨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죽인 가해자와 함께 이룬 가정. 그 가정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 고립된 섬에서 발생한 대규모 국가폭력이 공동체에 미친 영향은 짐작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로 표출된다.

제주비엔날레 2017 투어리즘 <코스 5 제주시 원도심 예술공간 이아>에는 제주 4·3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 두 점 있다. 김태균 작가의 "위와 같이 아래에도(2017, 혼합재료, 가변크기)"와 강현아 작가의 "4박 3일(2017, 혼합재료, 가변크기)"이 그것이다. 올해 예술공간 이아(이하 이아) 레지던시 1기에 선정되어 제주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김태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김태균 작가는 20대 후반부터 10년간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유학 생활은 그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인류사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1, 2차 세계대전을 주도하고 타민족에 대한 학살을 서슴지 않았던 나치정권 그리고 전범 국가로서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사회구조와 집단지성. 민족, 국가, 역사, 폭력, 인류, 미래 등에 대한 고민과 깊이는 더해졌고 이는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

- 한국사회에서 4·3은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한 현재 진행형 역사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엉킨 공동체가 오랜시간 침묵을 지속하며 상처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논쟁적인 4·3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는 것에 부담이 있었을 것 같아요. "위와 같이 아래에도"의 제작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오랜 시간 관심 가져온 예술의 화두는 인류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죠. 독일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세계 각국의 역사가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객관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죠. 제국주의 패권을 쥐고 어리석은 승리의 역사를 경험한 서양에 비해 동양은 강대국들의 식민지배 하에 수탈당한 패배의 역사를 갖고 있죠. 당시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들 또한 연장선에 놓여있어요. 4·3도요. 제주섬에서만 벌어진 우연하고 특수한 사건이 아니지요. 근·현대사의 모순이 집약되어 표출된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작업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이아 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에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4·3을 이야기하는 것에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죠. 하지만 아픈 상처일수록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는 것, 사회적 금기를 넘는 것이 예술의 사명이라 여기며 꾸준히 작업해왔습니다. 독일에서는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 구성원간의 역학관계들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작품을 통해 삶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이슈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제가 정치가는 아니지만. 예술가는 무엇이든 될 수 있잖아요?"

김태균의 “위와 같이 아래에도” 2017, 혼합재료, 가변크기
▲ 김태균의 “위와 같이 아래에도” 2017, 혼합재료, 가변크기
ⓒ 제주비엔날레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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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위와 같이 아래에도"는 조형적으로도 관객들에게 호응이 좋은 작품입니다. 축소 재현한 활주로의 형태가 '총(총)' 같기도 하고 '관(Coffin)'같기도 해서 많은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호기심을 유발해요. 어떻게 해석해도 작품의 의미가 잘 전달되니 흥미롭습니다.

"사건의 현장일 수도 있고, 삶의 현장일 수도 있는. 그러니까 실제 존재하는 구체적인 지역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지리적인 형태를 차용하여 작업해 왔습니다. 특히 공항이라는 소재는 연작으로 다뤘던 적이 있어요. 세계 국제 공항 중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을 모아 이민 문제를 보여주는 "G10(2009, 혼합재료, 5X5m 내 설치)"라는 작품이죠.

형태와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아래에 있는 역사, 제주섬에 축적된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활주로를 음각으로 표현하여 상처를 은유했고요. 분홍색, 보라색의 화려한 LED 조명은 현대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라서 자주 활용하는 재료인데 호텔, 관광, 산업 등에 대한 환영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잊혀져가는 것을 환기시키는 용도로 LED 조명을 사용했어요. 역설적으로요.

배경에 상영되는 영상은 종이로 만든 동굴 모형을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4·3 당시 땅 아래에서 벌어진 일들이 많았어요. 동굴은 지층의 아래에 존재하죠. 퇴적된 이야기를 상징한다고 느껴졌어요. 땅 아래의 빈 틈에서 연명 했던 기억.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어요. 생을 이어가는 생명의 공간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공간이죠. 동굴 안쪽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제작 되었는데  빛도 보이고 소리도 납니다. 4·3 유적지 다랑쉬굴의 자료를 살펴보며 당시를 상상하며 연출한 영상입니다."

김태균 작가의 “G10" 2009, 혼합재료, 5X5m 내 설치
▲ 김태균 작가의 “G10" 2009, 혼합재료, 5X5m 내 설치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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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3미술제를 통해서 제주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제주가 외가인 터라 어린 시절부터 자주 왕래 했는데, 최근에서야 외할머니댁 바로 앞에도 잃어버린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3을 공부할 수록 피해 규모와 비인간적인 만행에 충격을 받는 한편 4·3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예술가들의 존재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개최된 4·3미술제가 그 중심에 있어요. 작가 그룹을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2014년부터 예술 감독제가 도입되었고 그로 인해 제주 작가 뿐만 아니라 국내, 외로 참여 작가의 폭이 확장 되었어요. 덕분에 22회(2015년), 23회(2016년) 4·3미술제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활동의 장단점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입니다.

"일부 제주 작가들이 가진 4·3에 대한 시각에 의문이 있습니다. 4·3을 제주만의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제주 사람만이 다룰 수 있는 주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세월호의 아픔이 단원고등학교 만의 것이 아니듯 4·3은 제주만의 아픔일 수 없습니다. 4·3은 해방 직후 한반도 권력쟁탈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 문제의 폭발임과 동시에 세계 양차대전의 여풍으로 발생한 인류사의 한 장면이기도 해요. 4·3의 성격을 규정하는 이름을 찾기 위해서는 제주 내, 외의 다양한 시선 뿐만아니라 예술, 교육, 행정 등의 다각적인 접근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 이념적인 편견 뿐입니다. '종북', '빨갱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경직된 사회가 만들어낸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합니다."

-4·3에 관심갖고 있는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 역사가, 활동가 등의 좀 더 활발하고 깊이있는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시각을 허심하게 나눌 수 있는 건강한 교류는 창작 활동의 활력이 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4·3 진상 규명 운동에도 더 큰 힘을 실어줄 수 있겠지요.

"저는 유목적인 기질을 타고났어요. 하나의 지역에 뿌리내리지 않고 부유하는 존재죠. 불안정감으로 인해 개인으로서는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지만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공간을 떠다니면서 시야를 확장하고 객관성을 확보해요. "위와 같이 아래에도"가 제주국제공항 활주로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축소 형태로 제작된 이유도 그것입니다. 거리감을 둔 상태에서 전체적인 형태를 인식했을 때, 다른 차원의 시야가 생겨나죠. 한 지역에 정착 했을 때 발생하는 눈치보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발언의 폭이 넓습니다. 어떤 현장에서든 지역 작가들과 더불어 부유하는 작가들의 균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내년은 4·3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만큼 4·3에 대한 올바른 정의가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그 길 위에서 더욱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예술공간 이아
예술공간 이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옛 제주대학교 병원 건물을 개축 공사하여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제주목사가 근무했던 관덕정 북쪽의 관아를 '상아(上衙)', 판관의 근무처 찰미헌이 있었던 두 번째 관아가 '이아(貳衙)'다. 이후 근·현대 100년 간 자혜의원, 도립병원, 제주의료원, 제주대학교병원으로 사용되며 제주도의 의료 중심지로서 도민들의 삶과 죽음, 건강을 살피는 기능을 해 왔다. 이아 터는 제주도민들에게 정치·행정으로서 돌봄, 의료로서 돌봄의 가치를 지닌 곳이다. 예술공간 이아는 그 돌봄의 역사를 계승하여 문화와 예술로 삶의 고단함을 해소하고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160평에 달하는 갤러리와 시각예술 작가 레지던시, 창의교육실과 연습실, 카페, 서점 등의 시설을 갖췄으며, 문화 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공간대관도 가능하다.

제주시 중앙로 14길 21 예술공간 이아
문의: 064)800-9331~7
http://artspaceia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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