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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일본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가 그렸지만 봉인되다시피 한 단편 <긴 땅굴>을 다뤘습니다. 이 만화는 재일조선인 차별문제를 섬세하게 다각도로 바라보는 깊은 성찰이 인상 깊은 작품입니다. 1970년 세상에 첫 선을 보였지만 이후 개정판에 실리지 않아 일본 현지의 오사무 팬들도 이 작품의 줄거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1편과 2편으로 나눠 1편에서는 오사무가 그린 <긴 땅굴>의 줄거리와 의미, 2편 '만화의 수수께끼, 조선인은 왜 봉인됐나?'에서는 만화가 봉인되어야 했던 이유와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내려 합니다.- 기자말

테즈카 오사무를 대표하는 유명작으로 장편만화 <우주소년 아톰>(일본명, 철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일본명, 정글대제ジャングル大帝>, <블랙잭> 등이 즐비하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사실 <긴 땅굴>은 유명하기는커녕 이상하리만치 그 흔적이 거의 봉인되다시피 한 작품이다. 마치 만화의 탄생을 세상에서 깡그리 지워버리려고 한 느낌마저 든다.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 '테즈카오사무매거진'.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우주소년 아톰>,<도로로>, <불새>, <미츠메가 토오루(세 눈이 간다)>, <붓다>, <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한국명 사파이어 왕자)>, <이상한 메루모>, <아돌프에게 고함>
▲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 '테즈카오사무매거진'.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우주소년 아톰>,<도로로>, <불새>, <미츠메가 토오루(세 눈이 간다)>, <붓다>, <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한국명 사파이어 왕자)>, <이상한 메루모>, <아돌프에게 고함>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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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일본어판을 검색해 살펴봤다. 제목만 확인 가능 할 뿐 만화의 줄거리조차 알 수 없었다. 오사무의 전집을 볼 수 있는 공식웹사이트 '테즈카오사무매거진'에서도 역시 검색되지 않는다.

줄거리는 페북을 통해 작품을 읽은 감상이 담긴 몇몇 일본인의 블로그 및 <긴 땅굴>이 실린 단편집 <공기의 밑바닥(하)空気の底(下)>을 중고매물로 내놓은 일본어 웹사이트 등을 종합해 파악할 수 있었다(이 글에서 다루는 만화의 내용은 일본인 독자가 인터넷에 소개한 몇몇 장면들과 줄거리,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숙지한 것이다).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 '테즈카오사무매거진' 첫 화면. 유료회원 가입을 하면 오사무의 여러 인기만화를 볼 수 있지만  <깊은 땅굴>은 없다.
▲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 '테즈카오사무매거진' 첫 화면. 유료회원 가입을 하면 오사무의 여러 인기만화를 볼 수 있지만 <깊은 땅굴>은 없다.
ⓒ 테즈카오사무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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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땅굴>은 만화잡지 <선데이마이니치> 1970년 11월 6일자 증간호 '극화와 만화 제4집'에 딱 한 번 등장, 이후 <공기의 밑바닥(하)> 초판본에 실린 뒤 개정판에서는 자취를 감췄고 전집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양한 일본만화를 평가하며 소개하는 블로그 츠루고어XXX(ツルゴアXXX) 운영자(이 운영자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의 말을 들어보자.

"이만큼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 완전히 봉인되어있는 것은 매우 아깝다...라고 해야 할까 잘못됐다는 기분이 든다"라고 적었다. 또 "이 작품은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라스트신)을 보듯 오히려 직접 차별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작품을 접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호불호는 엇갈릴지언정 이 만화가 '재일조선인의 차별을 다룬 문제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과거사를 반성 않는 극우화 분위기로 치닫는 오늘의 일본을 떠올리면 우리에게도 무척 기념비적인 작품인 것.

<긴 땅굴>의 봉인 이유에 대해서는 작가가 직접 밝힌 바가 없어 온갖 의혹만 무성하다. 재일조선인차별문제를 다뤄서 우익세력에게 압박을 받지 않았을까, 완성도가 낮아 전집에서 제외하지 않았을까, '어떠한 사정'으로 오사무 본인 스스로 봉인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등등 모두 짐작뿐이다. 봉인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봉인되어야 했던 재일조선인 차별문제

현재로선 (추측컨대) 재일조선인 문제를 껄끄러워 한 정관계의 '높으신 분들'이 출판사나 오사무 본인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 <긴 땅굴>을 봉인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마찬가지로 단편집 <공기의 밑바닥>에 실린 밤의 목소리<夜の声>의 경우 이후 전집에 수록됐기는 했지만 권력층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대사가 통째로 교체돼 의문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밤의 목소리>의 초판은 일본의 최하층 천민 출신인 부라쿠민(부락민:部落民)의 차별을 다뤘다. 여주인공 '유리'는 일본을 떠나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후 유리가 전도유망한 일본인 청년 사장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라쿠민임을 밝힌다.

"아하하하하 결혼 같은 걸 할 수 있겠어요!!"
"나는 말이죠. 부라쿠민이에요."
"어때요? 내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알겠죠. 아저씨"
- 유리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거지로 변장한 아저씨(청년 사장)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부라쿠민은 우리네 백정, 망나니, 광대 등에 해당한다. 이들은 보통사람들이 꺼려하는 가축 도살, 가죽을 활용한 신발 제작, 형장의 사형 집행, 예능, 시신 매장 등의 일을 도맡아 했다. 또 정책에 따라 평민들과 구분되는 특정지역(부락)에 모여 살았다. 신분제가 철폐됐지만 부라쿠민의 후손들은 지금도 차별이라는 족쇄에 사로잡혀 있다. 가령 취직,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이 부라쿠 출신임이 알려지면 당장 없던 일로 물리고 손가락질 하는 상황이 버젓이 발생한다.

<밤의 목소리>의 경우 이후 개정판에서는 유리의 신분이 부라쿠민에서 '전과 6범'으로 뒤바뀌어 등장한다. 자세한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츠루고어XXX는 "유리가 실은 부락민이라는 설정은 당시 게재잡지(선데이마이니치)와 이 버전(<공기의 밑바닥>의 1970년 초판본)에서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반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은 어떤 수정도 없이 그대로 실렸다. 차별이라는 주제가 꺼려졌다면 이 역시 수정되거나 삭제됐을 텐데 말이다. 뭔가 수상쩍다.

단편 가운데 흑인을 몹시도 경멸하는 악랄한 인종차별자 남성이 나오는 <죠를 방문한 사나이>를 보자. 베트남 전쟁 참전 당시 중상을 입은 오하라의 몸에 부하였던 흑인병사 '조'의 심장이 이식된다. 이후 오하라가 '자신이 흑인이 돼 더러워졌다'면서 스스로 연인을 멀리하고, 할렘에 거주하는 조의 가족을 찾아 총부리를 겨누는 장면이 실감나게 담겨있다.

이런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출판을 검열하던 권력가들은 일제의 실상과 재일조선인 차별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긴 땅굴>에 유독 노골적인 경계심을 품었음이 분명하다. <밤의 목소리>야 말미에 나오는 대사 한 줄 고치는 정도로 'OK사인'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재일조선인 차별문제를 다루는 <긴 땅굴>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후 '긴 땅굴 봉인 작전'이 암암리에 오사무와 출판사를 옥죄는 방식으로 자행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사무와 재일조선인

이대로 멈춰있을 수 없어 재차 추적에 나섰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오사무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글을 포착했다. 그는 1966년 북한과 가까운 재일동포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에 기고했다.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조선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 일본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희생되고 민족역사를 빼앗기고 짓밟혀 강제노동에 동원당해 오게 된 것입니다. 정말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며 편견과 경멸 속에서 몇 십 년이나 살아내 온 것입니다. 저는 일본인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면목이 없습니다. 조선인이 어째서 자국역사와 문화를 조선인교사에게 조선어로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요. 거꾸로 생각해보지요. 우리는 조선인에게 자행한 과거 일본군국주의의 탄압정책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오히려 우리는 똑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만큼의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사무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둘째 재일조선인의 심정을 공감하고 있다. 이 글이 나오고 4년 뒤인 1970년에 <긴 땅굴>이 발표됐다. 오사무는 만화를 그리기 이전부터 재일조선인의 차별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1960~1970년대 당시 일본 전국에서는 조선학교 출신들이 집단으로 폭행당하는 사건이 연이었다. 1963년에는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출신 유명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 한국명 김신락)마저 칼에 찔려 비명횡사했다. 한편으로는 이에 저항해 조선(조선 초, 중, 고, 대)학교의 정식학교 인가 및 차별철폐 요구에 힘을 싣는 일본인 지식인들도 많았다. 재일조선인 밀집지역과 가까운 오오사카(大阪)에서 나고 자란 오사무 또한 이 저항운동의 물결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퍽 높아 보인다.

벌레를 사랑한 만화광 소년의 어린 시절

오사무의 사상은 '어린아이의 행복'과 '자연과의 공조'로 압축된다(오사무는 자신의 이름(治)에 한자 忠(벌레충)을 덧붙여 '治忠'란 필명을 스스로 지을 만큼 벌레를 사랑했다). 생애 말년의 오사무가 진솔한 이야기를 펼쳐낸 자전적 에세이 <유리의 지구를 구해라(ガラスの地球を救え)>를 좀 더 들여다보자.

기자가 오키나와 요미탄손에 방문했을 때 벼룩시장에서 100엔을 주고 구입한 <유리의 지구를 구해라>. 테즈카 오사무의 생애와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 테즈카 오사무의 자전적 에세이 <유리의 지구를 구해라> 기자가 오키나와 요미탄손에 방문했을 때 벼룩시장에서 100엔을 주고 구입한 <유리의 지구를 구해라>. 테즈카 오사무의 생애와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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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무는 1928년 재일조선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오오사카에서 태어나 성장한다. 이 배경으로 오사무가 재일조선인들에게 친근감을 가지게 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소년 오사무는 스스로를 '괴롭힘 당하는 어린아이'였노라고 고백한다. 학교 교문에 들어서기 60미터 근방부터 오사무가 쓴 특유의 두꺼운 안경을 보며 같은 반 아이들은 '60미터 안경'이라고 놀렸다.

선천적인 악성곱슬머리, 주먹코 등 콤플렉스에 시달린 그의 세계를 확장시켜 준 존재가 어머니였다. 오사무는 어머니에 대해 말수 적고 권위적인 남편에게 순응한 아내라고 평가하는 한편 만화를 자신에게 알려준 소중한 어머니라고 회고한다.

어머니는 유별난 분이었다. 만화 전집의 대사를, 넓디넓은 그 세상을 어린 아들의 귓가에 상냥하고도 들뜬 목소리로 전달해줬다. 당대 분위기로서는 정말 유별난 일이었다고. 만화왕국이라 불리는 오늘날의 일본에서도 이런 일은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아이에게는 구연동화를 들려줘야 한단 인식이 판에 박혀 있지, 만화를 들려준다는 사례는 들려오지 않지 않나.

그런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오면 '가망(我慢, 참아라)'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 가망의 방식은 좀 남달랐다. 어머니는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만화를 소개하고 달달한 케이크를 주며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대했다.

어머니에게 '가망'을 요구받던 아들은 망가(漫画,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학교 전체에 이름을 떨쳤다. 만화가를 선망하던 사람들이 많던 분위기 속에서 오사무의 '낙서'는 교무실을 통해 학교 전체로 전파됐다. 그리고 오사무는 소학교(초등학교)의 유명인사로 거듭났다.

책에서는 어린아이의 행복과 자연과의 공조의 사상을 입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다. 괴롭힘 당하던 어린 시절, 만화를 그리면 체벌을 가한 일제 군국주의를 통과한 청소년 시절의 경험이 차별문제에 눈을 뜬 오사무를 이끌어냈으리라. 고등학생 오사무는 전쟁 시기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영화를 억지로 보여주는 일제의 정책에 치를 떨었다. 학교학생들과 수용소에 강제 동원돼 군수물품을 만드는 일에도 반항하며 으슥한 시간에 철창을 몰래 넘었다.

오사무는 전쟁을 말한다. 미군 전투기의 공습을 받아 피와 몸통, 팔다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끔찍한 참상을 실감나게 묘사하며, 침략전쟁으로 치달아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한 일제의 정책을 드러내 반성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가 <긴 땅굴>에서 재일조선인문제의 본질을 그렇게까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비결인 듯하다.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오사무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정글의 왕자 레오>의 레오도 보통 사자와는 다른 흰 사자. 아무래도 나는 어린 시절 괴롭힘 당하는 아이였던 체험에서 '이물(異物)' 같은 존재에 매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상당한 콤플렉스를 떠안은 인간입니다. 그 콤플렉스에 있을 곳을 주자며 힘내는 것이 이런 만화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 <유리의 지구를 구해라(ガラスの地球を救え)> 66-67쪽.

"글러먹은 아이라든지 나쁜 아이는 한명도 없습니다. 혹시 그런 딱지가 붙여진 어린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어린이를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어른들의 정신이 가난한 것이라고 확실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 같은 책 67쪽.
 
오사무 탄생 90주년을 기리며

나는 이토록 재일조선인 차별문제를 깊게 파고들어 다각도로 성찰에 나선 만화를 지금껏 만난 적이 없다. 덕분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이어지고 있는 오늘의 일본을 지켜보며 씁쓸해하던 마음에 촉촉한 단비가 내려 누그러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위대한 '만화의 신'이 재일조선인의 처절한 삶을 공감하고 일제의 만행을 절절하게 반성하고 성찰하는데 어찌 고맙지 않으리오.

고백하건대 진보오타쿠를 자처하는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기쁘고 반갑다. <긴 땅굴>의 내용과 오사무의 가치관을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했더니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주제로 글을 풀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2018년으로 다가온 테즈카 오사무 탄생 9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여전히 <긴 땅굴>은 찬밥 신세다. 혹시 '사상이 불건전한 만화의 신'의 작품은 공개할 수 없다며 선별작업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여러 작품을 그토록 뜻깊게 추억하면서 유독 '재일조선인 차별 반대'의 메시지가 흠뻑 깃든 작품 하나가 배제되는 상황이 수십 년 째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정상인가.

오사무는 "우리는 똑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만큼의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라며 과거사의 치부를 겨눠 확실하게 겨눠 따져 물었다. 그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에서 <긴 땅굴>의 봉인이 하루빨리 해제되어 탄생 90주년에 당당하게 재등장하기를, 우리말로 번역되기를(중고본을 구할 수 있다면 내가 직접 번역해도 좋겠다), 지구촌의 만화계를 떠들썩하게 수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권방송>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테즈카오사무, #재일조선인, #아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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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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