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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법원의 성법죄 판결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한국 법원의 성법죄 판결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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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꽃뱀론'으로 성폭력을 지지하는 당신에게)에서 이어집니다.

"강간죄에 있어서 폭행 또는 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하고…"

한국에서 강간의 기준을 마련한 2000년 대법원 판례다. 지난 세기 한국 법원의 성인식을 기록한 '사료'라 해도 민망할 이 판례는 21세기 첨단 한국에서 변함없이 '성서'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법원은 '항거'를 강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본다. 다시 말해, 상대가 성관계를 원하지 않아도 저항하지 않으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가 되는 거다. 법원의 눈에는 '합의하는 게 합의'가 아니라, '저항 안 하는 게 합의'인 셈이다.

'항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간이 인정되는 경우는 상대 의지를 좌절시킬 만큼 폭행을 당하거나 협박을 받는 상황에 한정된다. 계약으로 친다면 매우 불평등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당신에게 계약서를 내밀며 '극렬히 항거하지 않으면 동의한 걸로 알겠다'고 말한다고 해 보자.

게다가 '항거'도 법원이 인정하는 방식으로만 해야 한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항거'에서 '항(抗)'은 '가만히 있지 않다', '맞서다'라는 뜻이고, '거(抗拒)'는 '거절하다,' '거부하다,' '막아 지키다'라는 뜻이다. 결국 '항거'는 말로 거절하는 것에서부터 상대에 물리적으로 대항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법원은 '싫다', 또는 '하지 말라'고 거부의사를 표한 것도 '항거'로 간주할까? 법원이 어떤 행위를 '항거'로 보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거절과 거부가 '항거' 아니라는 한국 법원

2015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한 남성이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두 차례 강간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첫 번째 강간 사건에서, 피고는 성관계를 요구했고 원고는 '하지 말라'며 분명한 거절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남성은 무시하고 강압적 태도로 다가갔고, 여성이 밀쳐내는데도 불구하고 성행위를 했다.

두 번째 혐의는 협박과 폭행이 수반된 강간(강간상해)이었다. 피고는 "내가 네게 쓴 돈이 얼마냐, 미친X" 등의 욕설을 퍼붓고 나갔다가 10~20분 뒤 돌아와 성행위를 요구했다. 여성은 남자가 "욕설을 할 당시 얼굴에 담뱃불을 갖다 대려 했고, 주먹으로 벽을 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법원은 1·2심 모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첫 번째 사건에 대해 "의사에 반할 정도의 힘을 행사해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반항을 억압하거나 곤란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강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말로 거절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항거'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협박과 폭행이 수반된 두 번째 사건은 어땠을까? 1심과 항소심 모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폭력 때문에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가 계속됐다면 피고가 돌아왔을 때 방에 들어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10~20분 사이 원고가 심리적으로 안정돼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니까, 욕설을 하고, 벽을 치고, 담뱃불로 협박을 했어도 10~20분이 지난 뒤에 성행위가 일어났으므로 강압에 의한 성폭행이 아니었다는 논리다. 법원이 보기에는 가해자가 어떻게 행동했든, 방에 들어오도록 방치하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가 되는 것이다.

한국 법원의 가해자 중심 시각

요약하면, 법원의 '항거'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물리적으로 맞서야 하고, 그것도 꽤 완강히 맞서야 한다. 그저 '싫다'고 말하거나, 몸을 밀쳐내는 정도로는 곤란하다.

강요로 작성된 계약서에 항의해 무효소송을 한다고 해 보자. 재판부가 "의사에 반할 정도의 힘을 행사해 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고 전제한 뒤, "반항을 억압하거나 곤란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계약을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면 어떨까?

여기서 한국 법원 특유의 남성적 시각이 드러난다. '저항 없으면 합의' 식의 가해자 중심 논리만이 아니다. 앞의 판결에서 보듯, 재판부는 상대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를 '성관계'로 칭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방적으로 행하는 성행위는 '성폭행'이지 '성관계'가 아니다.

성폭행을 '성관계'로 보는 것은 가해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으로,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저 '폭행'일 뿐이다. '성관계(sex)'와 '성폭행'을 구분하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시각이다. 예컨대 미시건대학의 성폭력예방센터는 학생들에게 "성폭행은 폭력 행위이지 섹스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가르친다.

'성폭행'을 '성관계'와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 미시건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폭행'과 '섹스'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기를 이용한 폭력'을 '성관계'로 부르는 것은 범죄를 생존자 입장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가해자 중심으로 보게 되면, 사회구성원들이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보다 피해자를 비난하게 된다."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보다 피해자를 비난하기'. 정확히 한국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 나라의 법원이 그릇된 시각에서 범죄를 판단하고, 이 왜곡된 사고를 재생산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재판부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놀랍다. 두 번째 사건에서 판사는 물리적 위협과 폭행을 당한 여성이 불과 몇 분 만에 '심리적으로 안정돼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시각을 가진 판사가 생존자의 삶과 존엄성이 달린 사건을 판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미시건대학교의 강간예방센터 웹사이트. '성폭행은 섹스가 아니라 폭행'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미시건대학교의 강간예방센터 웹사이트. '성폭행은 섹스가 아니라 폭행'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 미시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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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미성년자도 '저항' 안 해서 무죄?

앞에서 한국 법원이 '항거'를 매우 좁게 정의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판결들을 비교해 살펴보면, 정의만 협소한 게 아니라, 적용 기준 자체가 자의적이고 체계성도 결여되어있다.

예컨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을 보자. 30대 대기업 연구원 남성이 서울의 유흥가에서 술에 취한 미성년자(17·여)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가해자는 미성년자를 친구들에게 데려다주는 척하면서 근처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가해자는 법정에서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그리고 1심 재판부는 "죄가 가볍지 않은데 범행 후에도 합의를 목적으로 연락해 2차 피해까지 줬다"며 징역 3년과 함께 2천만 원을 배상을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생존자 미성년자가 "평소 주량보다 훨씬 적은 술을 마셔 저항할 수 있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생존자가 가해자와 함께 있는 동안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사실과, '두 사람이 밀착돼 모텔에 들어왔다'고 말한 종업원의 진술이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모텔로 들어간 생존자는 친구와 어머니에게 거듭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에게 "살려줘"라고 도움을 요청한 데 이어, 가족에게 "엄마 나 살려줘. 나 강남역이야"라는 문자를 보냈고, 또 다시 친구에게 "제발 살려줘"라며 세 차례에 걸쳐 구조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남성 재판부와 여성 생존자가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지난 7월에 가수 박유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뒤 무고죄로 기소된 여성의 재판이 열렸다. 이 여성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를 기소한 검사의 발언은 매우 놀라웠다.
 

검사는 (남자가 성폭행하려고 할 때) "허리를 돌려 저항하면 성관계가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앞의 미성년자가 보낸 문자가 말해 주듯,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당시 상황을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으로 인식한다. 실제로도 성폭행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법원은 '항거'를 강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본다.
 한국 법원은 '항거'를 강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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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지 말지 판단은 피해자가 해야 한다

2017년에도 많은 여성이 강간범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월에는 50대 택시기사가 잠든 20대 승객을 성폭행하려다가 도망치려고 하자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7월에는 30대 남성이 미용업소 주인을 강간하려다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고, 8월에는 30대 남성이 7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 하다가 소리치며 반항하자 수건으로 얼굴을 눌러 살해했다.

10월에는 한국을 뒤흔든 '어금니 아빠' 여중생 성추행 살인사건이 있었다. 그 역시 피해자가 수면상태에서 깨어나 격렬하게 저항하자 끈으로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11월에도 20대 남성이 노래방 도우미를 성폭행하려 하다가, 그가 저항하자 목 졸라 숨지게 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가 그 잔혹한 범죄를 비난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적잖은 사람들이 성폭행 생존자에 '꽃뱀' 딱지를 붙이고 있을 터이다. 한국에서 여성은 목숨을 잃어야만 '꽃뱀' 누명을 벗을 수 있단 말인가?

경우에 따라 '항거'가 상황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법원은 알아야 한다. 많은 나라들이 '저항' 대신 '거부 의사 표현'을 강간의 기준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느 경우든 피해자의 목숨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거절'을 넘어, '명시적 동의'를 강간을 기준으로 삼는 흐름에 참여해야 한다. 새 기술은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이는 사회가, 왜 낡은 사고는 거적처럼 끌어안고 놓지 못할까. '동의해야 동의한 것이다.' 이 당연한 상식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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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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