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시스터즈

ⓒ 미미시스터즈


그룹 미미시스터즈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예요>란 책을 내놨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 관심 분야, 둘의 관계는 물론이고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망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그간 미미시스터즈 하면 떠올랐던 아우라와 장벽이 무색해지는 느낌이다. 그간의 논란·소문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해명해 미미시스터즈의 팬이라면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울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앨범이 아닌 책을 기획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0월 20일 서울 홍익대학교 앞 술집 '무탁'에서 미미시스터즈를 만났다. 아래는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일단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내년에 10주년을 맞아 신곡과 함께하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둘 다 생업에 열중하며 동시에 미미 활동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매주 월요일 오후 7시에 라디오 <레트로먼데이>를 진행한다(인디음악 라디오 방송국 앱 '랏도의 밴드뮤직'을 다운 받으면 들을 수 있다-기자 주). 그리고 미미시스터즈 공식 SNS에서 꾸준히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작은 미미는 현재 인도에 거주하며 대본 작업 중이다."

- 책은 어떻게 내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책의 주제 같은 것이 있다면?
"'달 출판사'에서 4년 전쯤 한 인턴이 첫 기획안으로 우리 책을 제안해주셨다. 팬이어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들었다. 그분은 이제 오랜 시간이 흘러 베테랑 편집자가 됐다(웃음). 처음 제안해준 책의 기획은 '미미같이 사는 법'이었다. 미미스타일로 사는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항상 소통에 목말라 있던 미미에게 책 출간 제안은 정말 감사한 기회였다. 태생적으로 가진 한계(말을 하지 않고, 눈이 보이지 않는-기자 주)가 있었고, 그것 덕분에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미미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지 내년이면 10년째다. 그 사이 선배들보다 동생들이 더 많아졌다. 사실 스스로 선배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쑥스럽다. 그냥 시간을 버텨 온 누나, 언니로서 후배나 우리보다 어린 팬들에게 "우리가 조금 먼저 살아보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괜찮더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로 조금이나마 위안 혹은 용기를 얻었으면 했다.

결과적으로 책에서는 선글라스 빼고는 모든 것을 벗었다. 이런 이야기까지 써도 될까 싶은 것들도 일단은 적어 내려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체 검열된 부분도 꽤 있다. '글'이기 때문에 좀 더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미미시스터즈를 둘러싼 각종 논란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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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그게 좀 신기했다. 말을 하지 않는 콘셉트를 가지게 된 이유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데뷔 공연 때 그렇게 시작하게 돼 굳어져 버렸다. '나를 받아주오'란 곡으로 퍼포먼스를 할 때 사랑에 큰 상처를 받아서 심장이 굳어버린, 마네킹 같은 여자를 연기해 달라고 했다. 그 날 공연에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다른 팀의 코러스로도 출연했다. 전혀 다른 콘셉트로 무대에 서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기하와 얼굴들' 순서의 미미시스터즈는 도도하고 시크한 분위기가 되었는데 그 콘셉트가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장기하와 얼굴들에 합류하게 되면서도 계속 그 기조를 유지하게 되었다."

- 지금은 좀 내려놓은 거 같은데, 스타일을 바꿔야겠다고 느낀 계기가 있었는지?
"여러 번 있었다. 앞으로 우리 노래를 해야 하는데 이런 신비주의 콘셉트로 언제까지 활동을 지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인순이 선배님과의 사건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오니시 유카리(Onishi Yukari)였다. 유카리 언니는 일본 가수인데 '오사카의 소울 여제'로 불린다. 하지만 언니는 팬들과 때로는 친구처럼, 이웃처럼 소통하고 있었다. 정말 정말 부러웠다. 우리도 팬들과 그런 관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오랫동안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 '소통'에 관한 고민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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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인순이와의 일은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가 잘못한 일이다. 당시에는 우리가 공인이라는 자각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미미시스터즈'라는 캐릭터에 스스로 매몰돼 있었던 것 같다. 인순이 선배님께서 당연히 우리를 연예계 후배로 보실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말없이 일어나서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 드렸는데 선배님이 선글라스도 벗으라고 하셨다. 그 때 잠시 당황했는데 그냥 우리 스타일을 지켜도 이해해주실 줄 알았다(지금 생각해보면 가서 귓속말로 센스있게 대응하거나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전에 이적 선배님이나 배철수 선배님께서 감사하게도 웃으며 넘어가 주셨던지라…. 그런데 많이 불쾌하셨던 것 같다. 화를 내시며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셔서, 쫓아나가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화를 푸셨고, 그 날 방송이 끝난 후 오해도 다 풀었는데 느닷없이 2주일 뒤에 그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3일간 계속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있더라.

어떤 면에서 보면 순수하고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콘셉트에 빠져서 여기저기 인사를 많이 못 드리고 다닌 게 후회가 되기도 하고, 아쉬움이 남는 시기다. 인순이 선배님과는 이후에 다른 방송에서 두어 차례 만나 뵈었다. 우리의 2집 음반도 전해드리고 KBS 1TV <가요무대> 30주년 기념 방송에서도 만나 김시스터즈 김숙자 선생님과 넷이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 그럼 그 일로 장기하와의 협업도 끝난 것인가?
"그런 말은 없었는데 아마 그 일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겠지(웃음). 장기하와의 관계가 종료된 건 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였다. 한 달 정도 쉬기로 하고 각자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는데, 어느 날 만나서 앞으로의 밴드 활동은 퍼포먼스보다는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도 이해했다. 작은미미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공연에서 눈물을 보였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많이 빠르기는 했지만 우리도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의 퍼포먼스 때문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성이 과소평가 받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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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가 떠서 1집을 내기 위해 장기하를 버렸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다. 근데 절대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우린 잘린 거다(웃음). 장기하와 만나 앞으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다음날 마침 보컬 수업이 있었다. 우리는 수업을 접고 보컬 선생님과 셋이서 펑펑 울며 소주를 마셨다.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느낌,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으로는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게 느껴졌다. 눈이 펑펑 온 날이다. 아마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별을 준비하고 있긴 했는데 너무 빨리 와서 그랬던 것 같다. 근데 보컬 선생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됐다. 선생님이 본인의 프로필을 쓸 때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소속이 아니라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미미시스터즈라고 쓴다고. 자신이 자랑스러워 하고 있으니 힘내라고 말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소속이 아닌, 미미시스터즈의 음악

- 그래도 노래를 계속 해야겠다고 느낀 것 같다
"비록 처음에 취미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도 노래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이전부터 우리 소속사의 곰사장도 우리가 유닛으로 따로 나와 앨범 작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었고, 노래를 배워 놓으면 코러스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독립하기 전에도 보컬 레슨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헤어지고 보니까 우리도 우리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준 곡이 있었다. 신중현님이 만드신 바니걸스의 '우주여행'이란 곡이다. 우리가 1집에서 리메이크 한 곡이기도 한데,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라면 우리도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해줬다.

바니걸스 선배님들께서 일명 '립딜레이', 에코 효과를 입으로 내셨던 표현이 너무나 재미있고 독특하고…. '어떻게 옛날에 이런 노래를 만들었지?' 하는 놀라움을 갖게 하는 곡이다. 신중현 선생님의 우주로 향하는 기타 연주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1집에서 신윤철 오빠께서 너무 멋진 연주를 보여주셔서 장장 15분이 넘어가는 곡이 되기도 했다. 정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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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선배 걸그룹에 대한 관심이 많아 보이던데.
"양평이 형(하세가와 요헤이)덕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말 우리나라 음악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는 뮤지션이다. 음악평론가 최규성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살펴보았는데 100팀이 넘었다. 그 중에 책에서 언급한 김시스터즈, 이시스터즈 선배님들과의 만남은 우리의 활동에 큰 자극이 되었다. 특히 1집을 내고 한국영상자료원의 '가문의 영광'(김해송/이난영/김시스터즈 가문이 출연했거나, 음악이 삽입된 영화를 시리즈로 상영)영화제의 축하공연을 할 때 처음으로 김시스터즈의 영상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멋진 시스터즈 선배님들의 음악이 한낱 지나간 옛 노래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선배님들의 음악을 접하고 영상으로만 뵙다가, 2011년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김시스터즈의 멤버이신 선생님들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김민자 선생님은 우리가 바버렛츠와 함께 준비했던 헌정공연에 함께해 주시기도 하셨고, 김숙자 선생님과는 '이난영 선생님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을 서울과 목포에서 가졌다. KBS 가요무대 30주년 기념 방송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 미미시스터즈 1집이 장기하 2집보다 먼저 나왔다.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독립 후 거의 바로 1집 준비에 들어갔다. 마음이 급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2집보다 먼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중에게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해고된 느낌을 주기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우리 앨범이 먼저 나오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의 도도한 이미지와 정리해고는 너무 안 맞는 느낌이라서. 우리가 먼저 앨범을 내면 자연스럽게 합의 하에 독립한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장기하와 얼굴들, 미미시스터즈가 같은 소속사에 속해 있었기에, 회사 입장에서도 우리가 빨리 나와야 독립하는 걸로 보이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 회사에선 잘 밀어줬는지?
얼마나 많이 밀어줬는지, 아직까지도 회수가 되지 않고 있다. (웃음) 붕가붕가레코드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제작비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곰사장에게 고맙다. 곰사장이 판을 더 키운 것도 있다. 우리 첫 앨범은 볼륨감이 있어야 한다며. 너무 밀어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그랬더니 "살면서 아무 이유 없이 한 번쯤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라고 아주 멋있게 말해줬다. 그런 면에서 곰사장에게 굉장히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꾸준히 1집이 팔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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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면?
"사실 우린 그 때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다. 가이드 녹음만 한 달이나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앨범은 내고 싶었다. 당시 싸이월드 팬클럽도 몇만 명 있었고. 그래서 장기하 얼굴들 활동을 하며 친하게 된 선배님들께 구원의 요청을 보내 우리 앨범에 끌어들였다. 양평이형이 옛날 우리나라 그룹들의 음악들을 소개해주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주었다. 양평이형의 첫 프로듀서 작품이기도 하다. 근데 작업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앨범으로는 우리가 너무 일을 크게 벌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끝났을 때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숙제를 끝낸 느낌? 하지만 혹평도 많이 듣고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 한동안은 스스로 다시 듣기 힘든 앨범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우연히 다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게 최악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대중은 냉정하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 2집은 완전 다른 분위기로 갔는데? 기획사도 바뀌고.
"2집은 대중적으로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했다. 1집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2집의 대부분은 우리가 직접 곡과 가사를 썼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은근히 히트곡도 기대하고 그랬다(웃음).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팬층도 생기고 평단에서도 나쁘지 않게 봐주었다. 거기에 1집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이 더해져서 재미있었다.

시작은 당시 큰미미가 일하던 제작사에서 먼저 미미 2집 제의를 해주셔서 응하게 되었다(붕가붕가와 정리한 이후 계약). 1집처럼 너무 매니악하게 제작하는 것보다 미미시스터즈의 캐릭터를 유지하되 좀 더 친근한 미미의 이미지를 부각해야 대중의 공감과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다(웃음). 양평이형이 1집 작업을 할 땐 단독 프로듀싱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어떤 면에서 '실험'이라고 생각한다고 곧잘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병훈 프로듀서도 양평이형처럼 우릴 좀 더 다른 식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했다. 제작자로서 우리의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어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 2집 반응은? 제작비는 건졌는지?
"이번에 '주름파티'를 발표하면서 우리가 처음으로 음원부터 프로필 사진 촬영과 뮤직비디오, 홍보까지 모두 직접 스태프를 꾸리고 제작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팀이다.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써야 본전이라도 건지는 팀이다. 그래서 2집도 마찬가지로 제작비를 제대로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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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주름파티'를 들으면서 느낀 점인데, 혹시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는지?
"실제로 여성 아티스트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이 있다. 팔자 주름이라든지, 더 이상 밤새 놀기 힘들어지는 체력저하의 문제라든지, 하루 하루 희비를 오가는 마음의 변화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이라는 의미의, 좀 더 긍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 '늙어서 어떡하지?' '나이 들어서 힘들다' 보다는 나이 따위는 신나게 극복하면서 잘 살아 나가보자는 의미다. 또한 내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라면, 나이 들어가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일 것이라는 낙관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 미미시스터즈에게 선글라스란?
"미미에게 '선글라스'는 미미의 정체성 그 자체이자, 동시에 팬들과 관객들에게는 '익명게시판' 같은 매개다.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미미의 눈을, '마음의 눈'을 봐주셨으면, 그리고 당신들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들려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미미시스터즈의 선글라스'가 가진 큰 장점은, 관객과 소통하는 매개라는 것이다. 보통은 눈을 가리는 것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단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표정이 보이지 않기에 관객은 우리에게 더욱 집중하고, 우리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하곤 한다. 미미시스터즈의 팬이라면 선글라스 너머 우리의 따뜻한 눈빛을 읽어낸 적이 있을 것이다."

미미시스터즈 미미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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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 중에서.
-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든데, 그럼에도 계속 음악에 매달리는 이유 같은 게 있는지?
음악으로만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일부 선택 받은 자들 만의 삶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전업 뮤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음악을,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미가 시도하는 여러가지 소통의 창구 중 제일 커다랗고 의미 있는 것이 음악이다.

- 3집 계획은?
내년 상반기에 인도에서 작업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부유하는 데모들을 곡의 꼴을 갖춘 형태로 정리 중이다. 발리우드 스타일의 음악과 비주얼, 그리고 미미가 만난다면 신선하지 않을까? 그리고 책에 이어 조금 더 진솔한,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노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년에 10주년을 맞아 정규 3집을 발매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꼭 3집이 아니더라도, 신작과 더불어 팬들과 함께하는 재미난 자리를 준비하려고 한다.

- 이제 음악을 하려는 후배 뮤지션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우리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심지어 출중한 보컬 역량이나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우연한 기회에 가수가 되었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전히 음악적인 역량은 떨어진다. 지금도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데모를 만들 때조차 테크닉적으로 버벅거리곤 한다. 앨범 작업에는 편곡자나 프로듀서의 힘을 빌어야 하고. 중요한 건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색깔',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곧 '나만의 무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걸 알아주고 매력으로 여겨주는 이가 단 한 명의 팬이더라도, 그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계속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뮤지션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인 것 같다. 때때로 좌절의 순간이 닥쳐올 때마다 우리는 시스터즈 선배님들의 노래를 듣곤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내며 잘 살아오신, 또 지금도 멋지게 살아내고 계신 언니들의 인생을 생각하며 술 한 잔 한다. 그리고 다시 발성 연습을 시작한다.

- 팬들에게 한 마디.
미미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팔할이 팬들의 힘이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힘을 얻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보며 항상 감탄하고 힘을 받는다. 최근에는 매주 라디오에서 만난 팬들과 일상적인 소식, 고민을 실시간으로 주고 받으며 더욱 친밀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책으로 많은 이야기를 내보여서 인지, 독자분들이 스스럼없이 친밀하게 다가와 주시는 것 같다. 앞으로는 더 깊은 소통이 가능할 것 같아 무척 기대가 된다. 때때로 오래된 팬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중학교 때 우리를 처음 알고 좋아했던 친구가 이제 군에서 제대를 한다고 연락이 오는가 하면, 1집 때 만났던 팬이 결혼 소식을 전해오기도 하고, 오래 전부터 미미와 함께한 친구들이 결혼 후 태교음악으로 우리 콘서트를 보여주었던 아이가 태어나 함께 출간 파티에 놀러 오기도 했다.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 또래, 혹은 우리보다 조금 어린 여성 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싶다. 우리의 창작물을 접한 팬 여러분과의 긴밀한 소통, 피드백을 통해 서로에게 때로는 언니, 때로는 친구, 때로는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관계의 진화'를 이어가고 싶다. 그렇게 앞으로도 지금처럼 팬들과 함께 유쾌하게 늙어가는 미미가 되고 싶다. 우리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같이 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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