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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가 자진 폐업한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전경
 경주시가 자진 폐업한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전경
ⓒ 경주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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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가 지난 2015년 12월 1일 자진 폐업했던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건물을 연내에 신설하는 치매안심센터 업무 공간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 중으로 밝혀졌다.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는 2년 전 경주시가 수많은 비판에도 폐업해 이른바 '셀프 폐업' 논란을 초래한 바 있다. 그동안 멀쩡한 건물을 사실상 방치하다가 치매안심센터 사무공간으로 임시 활용한다는 것이다.

경주시가 신설하는 치매안심센터는 센터장을 비롯 상담등록관리, 조기검진, 쉼터, 가족지원, 인식개선홍보팀 등 총 5개팀으로 구성하고 운영인력은 약 30여명 정도로 잡고 있다. 치매안심센터는 시유지 혹은 사유지 매입을 통한 신축, 보건소 증개축 중에서 하나를 결정해 업무 공간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그때까지 이미 폐쇄된 시립노인간호센터건물을 임시 사무실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소요 예산은 최소 12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2016년 12월말 현재 경주시보건소에 등록된 치매 환자수는 3204명. 보건소로 신고하지 않은 환자까지 더하면 65세 이상 치매 질환자는 4874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65세 이상 경주시 노인 인구 4만8789명의 약 10%에 달한다. 이번에 신설하는 치매안심센터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치매국가책임제'의 하나이다. 따라서 새 정부 시책에 따라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뭐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치매안심센터를 만들기 전에 경주시가 선행할 것이 있다. 2년 전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를 자진 폐업한 데 대한 진솔한 반성과 공개적인 대시민 사과가 있어야 한다.

경주시는 당시 센터 폐업이 힘 없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무리한 행정이자 억지폐업이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향후 치매노인을 돌보는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치매안심센터를 만들겠다는 경주시 행정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경주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폐업, 꼭 해야 했나

2015년 12월10일 공공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 노조원들이 경주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경주시청앞에서 폐업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룰 하고 있다.
 2015년 12월10일 공공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 노조원들이 경주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경주시청앞에서 폐업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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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가? 먼저 설립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주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는 경주시가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저소득 가정의 노인 치료와 재활을 위해 63병상의 규모의 입소 간호 및 재활시설을 갖추고 지난 2006년 12월 개원했다. '2004년 보건복지부 홈너싱 시범사업'으로 선정돼 설립비용 25억원 가운데 국비 12억5000만원, 도비 6억2500원을 지원받았다. 경주시 예산투입은 25%에 불과했다.

사실상 정부 예산이 더 많이 투입된 시설이었고, 한때 정부로부터 최우수 기관으로 인정 받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12월 1일자로 경주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는 문을 닫았다. 일부 요양보호사들이 환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폭행, 성희롱 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 경주시가 내건 이유가 억지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2016년 11월 3일 대구지검경주지청은 요양보호사 8명의 노인학대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또는 기각 처분했다. 일부 요양사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있긴 했지만, 폐업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경주시는 노인장기요양보호법상 폐업이 불가피하다고 강변했다. 그 해 6월 1건의 신체적 학대가 적발돼 10월 1일부터 6개월 업무정지에 들어간 상태에서 성적 수치심 유발 사례가 추가로 나와 요양기관지정 취소처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경주시는 시의 재량권이 거의 없는, 관련법에 따른 사실상 강제적 행정처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중 일부는 사실과 달랐다. 경주시가 법적 근거로 삼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요양기관 지정을 취소해야 하는 강제조항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주시가 폐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당시 경주시가 폐업을 예고하자 부실운영 책임을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경주시의 셀프 폐업'이자 '부당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경주시는 비판에 눈감고 귀를 닫은 채 폐업을 강행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에 근무한 요양보호사등 28명의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치료받던 9명의 초기 치매환자, 입원치료를 받던 저소득층 60여 명의 노환자들은 병든 몸을 의탁할 곳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어야 했다.

폐업 후에는 멀쩡한 건물을 다른 용도로 신속하게 전환하지도 못하고 사실상 2년 동안 방치하다시피 했다. 건물을 활용한 답시고 1650만원이나 들여 외부기관에 용역을 의뢰했지만 이 또한 무용지물이 됐다. 결과적으로 멀쩡한 건물은 방치됐고 예산은 낭비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경주시보건소나 경주시 고위직 공무원 중에서 '책임졌다'는 사람을 기자는 알지 못한다. 최양식 경주시장이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빌어 사과한 것이 전부다.

경주시와 경주시의회 모두 사과해야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종사자들과 공공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 노조원들이2015년 11월10일 경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폐업및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종사자들과 공공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 노조원들이2015년 11월10일 경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폐업및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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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경주시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시행에 따라 치매안심센터를 설치, 운영한다고 한다. 지난날 행정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경주시가 말하는 치매환자를 위한 각종 행정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경주시 행정의 진정성을 믿을 시민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들의 일자리만 늘이고, 그들만의 공간을 하나 더 만들어 줄 것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근본적인 물음, 누구를 위한 행정이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최 시장은 지난 1월 5일 기자간담회에서 폐업에 대해 사과하면서 시의회 책임론을 동시에 제기했다. 최 시장은 "전적으로 시장의 책임이다.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집행부만이 폐쇄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시의회도 조례를 폐지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경주시도 책임이 있지만, 경주시의회도 경주시만큼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과를 하면서 시의회를 끌고 들어간 점이 좀 뭣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경주시의회 역시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폐업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치매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두고, 만성적자라고 비판하면서 폐업을 종용한 주체는 다름 아닌 경주시의회였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으로 일부 요양보호사들의 일탈을 문제삼아, 멀쩡하게 운영하던 치매환자들을 위한 시설을 무리하게 폐업한 경주시나, 경주시에 대해 끊임없이 경영상의 적자를 비판하며 사실상 폐업을 압박했던 시의원들은, 행정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시의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그래야 행정이든 의회든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것마저 어렵다면, 경주시의 셀프 폐업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던 요양보호사들, 졸지에 병상을 잃고 이곳저곳 병든 몸 뉠곳 찾아 헤매야 했던 치매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만이라도 우선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차원에서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경주포커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경주포커스, #시립노인전문간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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